사람들을 서로 처음 만나면 선입견이라는 것을 갖게 된다. 저 사람은 왠지 무서울 것 같다. 저 사람은 나하고 어울리지 못 할 것 같다, 등등. 이렇게 나 나름대로 판단하고 사람들을 평가한다. 그 사람을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람을 보는 순간 판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또한, 판단을 하더라도 맞지 않고 위험한 일이다.

서호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서호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우리나라 사람은 처음 만났을 경우 어느 부류에 들어가는지 만나는 사람의 신상부터 캔다. 나이가 몇 살인지, 고향이 어디인지, 학교는 어디 나왔는지. 이 정도에서도 일치하는 분류가 없으면 더 물어보곤 한다. 이렇게 분류하다 보니까 사람을 처음 보았을 때도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을 분류하게 된다. 또 이렇게 하는 것이 나에게 편하고 일찌감치 나하고 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뒤로 미루고 나하고 맞는 사람들끼리 어울려서 일을 하는 것이 편하다. 분류의 기준이 생기게 된다. 이것은 나의 기준이 아닌 사회가 만든 기준이 생긴다. 유명한 학교, 그것도 일류와 이류로 나누게 된다. 집안의 재력에 따라 나눈다. 그 기준이 모호하지만 나눈 그룹에 들어가게 되면 안도의 숨을 쉬고 이곳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애를 많이 쓴다.

나는 사람의 표정을 보고 판단하여 낭패를 본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별로 재미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 사람을 보고 성격이 좋고 남들하고도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한다. 나만 장벽을 치고 그 사람과 교류가 되지 않았다. 무의식적인 판단으로 교류가 끊기고 말았다.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게 되면 나에게도 이득이 될 수 있는 터인데 내 판단이 오류를 만들었다.

상대방이 나에게 감정을 일으키는 순간도 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입장에서는 나에게 욕도 할 수 있고 화를 낼 수도 있다. 나와는 다른 생활을 가지고 살아 왔던 터에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하고 다른 생활을 하고 살아온 패턴도 당연히 다르기 때문에 나하고 얘기를 할 때 부딪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감정은 그가 나에게 준 것은 아니다. 그 때문에 내가 화가 나는 것은 그가 나에게 화나는 근거를 준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감정이 일어난 것이다. 내 안에 잠재해 있던 무엇이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 드러나서 감정이 올라온 것이다. 감정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내가 이 감정을 어떻게 조절 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은 내 무의식에서 정화가 일어나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하루를 생활하면서 마냥 행복하고 아무 일이 없이 그럭저럭 지나가는 것을 행복이라 생각한다. 남과 부딪히고 그 관계에서 장애가 만들어지면 불행한 일이라 여긴다. 물론 매일같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짜증만 일어나게 되면 힘이 들 것이다.

그러나 감정을 정화하는 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감정을 일으키는 사람이 내게 나쁜 일을 한 것 같지만 그로 인해 일어나는 내 감정을 내가 바라보면서 컨트롤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감정을 잘 바라보고 내려놓고 다시 한 번 올라오면 바라보고 내려놓고 자꾸 녹이는 이 과정에서 나는 점점 확대되면서 커져 가고 점차 빛처럼 환하게 된다. 이처럼 커지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녹일 수 있고 품에 안을 수가 있는 것이다.

나와 만나는 사람들은 내게 축복을 주는 사람들이다.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의 감정을 녹이고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사람이다. 또한 상대방을 보았을 때 이해의 폭이 점점 커지게 된다. 역지사지로 상대방 입장을 바꾸어서 살피게 되고 상대방이 나의 거울이 되는 셈이다. 그 상대방을 통해 나를 볼 수 있고 또한 그 상대방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내가 창조해 냈는지도 모른다. 나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선물로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