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23대 순조의 셋째 딸로 태어난 조선의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가 한글로 쓴 ‘자경전기慈慶殿記’와 ‘규훈閨訓’을 비롯해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자료’ 68점이 고국의 품에 안긴다.

이 한글 자료는 조선 왕실 여성들의 생활 속에서 한글이 의사소통수단으로 매우 중요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뿐 아니라, 왕실에서 사용하던 아름다운 궁체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자료 중 '자경전기'. 덕온공주가 아름다운 한글 궁체로 번역한 자료로 덕온공주가 쓴 것으로는 이번에 처음발견되어 희소가치가 높다. [사진=문화재청]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자료 중 '자경전기'. 덕온공주가 아름다운 한글 궁체로 번역한 자료로 덕온공주가 쓴 것으로는 이번에 처음발견되어 희소가치가 높다. [사진=문화재청]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자료’는 문화재청 산하 국립한글박물관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전문성을 살려 공조한 문화재 환수의 모범 사례이다. 국립한글박물관이 유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수집하여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제공하고, 재단은 소장자와 접촉해 매입협상을 통해 지난해 11월 문화재청이 미국에서 매입해 국내로 들여왔다.

이번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자료’는 조선왕실의 한글문화를 보여주는 주요자료이다. 윤씨 집안으로 하가(下嫁)한 덕온공주(1822~1844)와 양자인 윤용구, 손녀 윤백영 등 왕실 후손이 3대에 걸쳐 작성한 한글책과 편지 및 서예작품이다.

특히 덕온공주가 아름다운 한글 궁체로 손수 쓴 ‘자경전기’와 ‘규훈’은 본래 한문으로 쓰여 있던 것을 덕온공주가 한글로 번역해 작성한 것으로, 덕온공주가 쓴 것으로는 처음 발견되어 희소성이 높다.

환수자료에는 왕실에서 작성한 한글편지도 다수 있다. 덕온공주의 어머니인 순원왕후가 사위 윤의선(1823~1887)에게 딸의 근황을 묻는 편지를 비롯해 명성황후(고종 비)와 신정왕후(추존왕 익종 비), 명헌왕후(헌종 계비), 철인왕후(철종 비) 등이 직접 쓰거나 상궁이 대필해 덕온공주 집안에 보낸 것이다. 이 중에는 조선 최고의 한글 명필로 알려진 궁중여성 서기 이씨가 대필한 편지도 포함되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위) 덕온공주의 양아들 윤용구가 당시 12세이던 딸 윤백영을 위해 여성과 관련된 역사를 발췌해 쓴 역사서 '여사초략' (아래) 윤용구가 고종의 명을 받아 왕실여성을 위해 쓴 역사서 '정사기람'. [사진=문화재청]
(위) 덕온공주의 양아들 윤용구가 당시 12세이던 딸 윤백영을 위해 여성과 관련된 역사를 발췌해 쓴 역사서 '여사초략' (아래) 윤용구가 고종의 명을 받아 왕실여성을 위해 쓴 역사서 '정사기람'. [사진=문화재청]

또한, 왕실 여성들을 위한 역사서도 다수 포함되었다. ‘정사기람正史記覽’은 덕온공주의 양아들 윤용구가 고종의 명을 받아 왕실 여성들을 위해 쓴 역사서이고, ‘여사초략女史抄略’은 윤영구가 당시 12세인 딸 윤백영을 위해 여성과 관련된 역사를 발췌한 역사서이다.

이외에도 덕온공주의 손녀 윤백영 씨의 서예작품은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한글 궁체로 쓴 서예작품으로는 첫 입선을 했다. 윤백영 씨는 전통적인 한글 궁체를 현대적인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을 역임한 국어학자 이종덕 박사는 “환수된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자료’는 기존에 소개된 단편적인 왕실 편지나 소설과는 차원이 다르다. 왕실 부마 집안의 일괄 자료라는 점과 왕실인물의 개인적인 삶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환수의 의의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