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일부내용이 포함되어 있음)

1951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담은 사진 한 장에서 출발한 영화, 스윙키즈에서 두 가지 메시지가 느껴진다. ‘사람은 원래 춤추고 노래하기 위해 태어났구나’ 또 하나는 ‘더 이상 이런 미친 전쟁은 없어야 하겠다.’

이 영화 상영시간 흘러나오는 음악에 손가락이 까딱이고 발이 저절로 움직였다. 특히, 영화 중반 박혜수 배우가 연기한 씩씩하게 아름다운 양판례 양이 자유롭게 춤을 추는 장면, 그에 대비해 험악해진 ‘미제타도’ 분위기에 몰래 강당에서 춤을 추던 도경수(로기수 역)가 탭댄스를 통해 너무나 가슴 터질듯 자유로움을 갈구했지만, 강당 문 앞에서 멈춰야 했던 장면이 인상적이다.

뛰어난 춤실력을 갖춘 북한인민군 로기수(도경수 분, 왼쪽)와 동생과 생계를 위해 양공주로 나선 양판례(박혜수 분)가 보여준 자유를 향한 춤사위. [사진=안나푸르나 필름]
뛰어난 춤실력을 갖춘 북한인민군 로기수(도경수 분, 왼쪽)와 동생과 생계를 위해 양공주로 나선 양판례(박혜수 분)가 보여준 자유를 향한 춤사위. [사진=안나푸르나 필름]

이 영화에 나오는 다섯 명의 댄스팀은 각자의 아픔이 있다.

북한의 인민 영웅이라 불리는 로기진의 동생으로 천재적인 춤 실력을 가진 도경수(로기수 역). 거제포로수용소에서 골치를 썩이는 영웅으로 공산주의로 무장된 도경수가 잠자다 코고는 소리, 이 가는 소리 등 모든 소리가 탭댄스 리듬으로 들리는 춤의 마력에 빠져버렸다. 인민영웅의 동생이어서 모범을 보여야 하기에 극구 부인하지만, ‘네가 우리 중 춤 대장 아니냐?’는 말에 돌아서서 못나게 찌그리며 웃는 그의 미소가 오히려 싱그럽게 다가왔다.

브로드웨이에서 뛰어난 탭 댄서였지만 인종차별에 쫓겨난 잭슨 소위. 그는 일본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아이를 낳았지만, 내쫓기듯 한국 거제도에 떨어졌다. 영화 내내 그는 ‘작슨’이라고만 불릴 뿐 풀 네임을 알지 못했다. 그의 명찰에 씌여진 ‘m. Jachson’은 ‘마이클 잭슨’에 대한 오마쥬가 아닐까 했다. 흑인으로 태어나 1990년대 전 세계인을 사로잡은 천재 아티스트. 흑인에게 흔히 나타나는 백반을 감추기보다 그를 드러내 백인화 되었던 그에게 피부색은 어떤 의미였을까?

영화 '스윙키즈'에서 춤을 가르쳐주는 미군 소위 잭슨(자레드 그라임스 분)과 북한 인민군 로기수(도경수 분). [사진=안나푸르나필름]
영화 '스윙키즈'에서 춤을 가르쳐주는 미군 소위 잭슨(자레드 그라임스 분)과 북한 인민군 로기수(도경수 분). [사진=안나푸르나필름]

전쟁 통에 잃어버린 부모님 대신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양공주로 나선 박혜수배우를 통해 전쟁 중 여성이 어떤 입장인지 잭슨과의 대화에서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일본강점기를 거쳐 일본어를 할 줄 알고, 만주에 살아 중국어를, 그리고 미국주둔군에게서 생계꺼리를 찾아야 해서 영어와 한국어까지 총 4개 국어를 하는 당찬 아가씨이다. 결코 비루하지 않다. 자기 몸집의 3~4배나 큰 지게를 짊어 맨 박혜수 배우가 나타났을 때 웃음이 터졌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느꼈다.

전쟁 통 피난길에 트럭 하나 잘못 얻어 탄 죄로 거제포로수용소에 끌려온 오정세(강병삼 역)는 아내를 찾기 위해 유명해지고자 댄스팀에 합류했다. 초반 오디션에서 상모돌리기 춤을 추는 모습이 가히 기예에 가깝고 짠하다. 오정세 배우는 영화를 통해 가끔씩 만났을 때 결코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아내가 어떤 밑바닥 생활을 해도 살아만 있어 주길 바라는 그가 비참한 전쟁 여인으로 살아있는 아내를 지켜보면서도 그저 ‘다행’이라고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가슴이 먹먹했다.

중공군으로 내려왔다 잡힌 샤오팡 역의 김민호 배우는 마치 옛 국어책에 나오는 철수, 영희처럼 순진한 얼굴로 내내 웃음을 주었다. 본인은 ‘뼈가 클 뿐 영양실조’라는 다소 뚱뚱한 몸집에 놀라운 안무실력을 갖췄으나, 심장병으로 1분만 춤을 출 수 있는 비운의(?) 댄서이다. 마지막까지 오정세와 맞추는 환상의 케미가 극 전반을 흥미롭게 했다.

거제포로수용소에 잘못 끌려간 민간인 강병삼 역의 오정세(왼쪽)배우와 코믹한 순진한 중공군 샤오팡 역의 김민호 배우. [사진=안나푸르나필름]
거제포로수용소에 잘못 끌려간 민간인 강병삼 역의 오정세(왼쪽)배우와 코믹한 순진한 중공군 샤오팡 역의 김민호 배우. [사진=안나푸르나필름]

혹자는 흑인 인종차별, 전쟁 중 비참한 여성과 어린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등 많은 소재를 잡다하게 다뤘다고 했으나, 우리가 사는 세상 자체가 수많은 모순 속에 얽혀있다. 영화 중반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결말이 불행할 것이라는 전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름다운 바로 그 순간이 슬프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탭 댄스 슈즈 위에 떨어지는 오정세의 눈물, 마지막 무대에서 독무를 추며 막으서는 잭슨에게 가만히 손바닥을 보이며 거부하는 도경수의 눈빛, 인민영웅이라 불리지만 동생을 사랑한 김동건 배우(로기진 역)의 소리없는 휘파람 소리.

이념이라는 괴물을 안고 상대가 한 사람, 한 사람 인격과 삶을 가진 개인으로 보이지 않고, 나를 위협하는 무리로 보일 때 인간은 서슴없이 잔인함을 드러낸다. 끊임없이 애국심과 사명을 들먹이면서도 도대체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인지 답하지 못하는 전쟁의 모순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tvN 예능 ‘알쓸신잡 3’에서 “6·25는 첫 1년만 전쟁이 있었고, 나머지는 계속 소강상태로 휴전을 미루며, 수많은 민간인과 시설을 파괴한 전쟁”이었고, “그 누구도 실익이 없는 전쟁”이었다고 했다. 심지어 휴전협정에 조인하면서도 유예를 두어 영화 ‘고지전’에서 보듯 고지 하나를 더 차지하고자 그 산을 양쪽 군인의 시신으로 뒤덮었다. 미친 전쟁이었고, 그 고통이 현재를 흐르고 있다.

강형철 감독은 아픈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영화 ‘스윙키즈’를 통해 아프게 조명했다. 기자는 주말 조조영화로 ‘스윙키즈’를 선택했다. 주말 조조영화는 한가하기도 하고 끝나자마자 일어서는 관객들의 어수선함을 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스윙키즈의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하얀 스크린이 나올 때까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흐르는 경쾌한 음악과 영화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이 영화에 대한 여러 긍정과 부정적인 의견, 평론들이 올라와 있지만, 영화가 소통의 산물이라고 할 때, 분명히 통하는 점이 있다. 누군가 ‘이 영화 어때?’라고 묻는다면 추천하겠다. 재즈나 탭댄스에 대한 호감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이 영화를 통해 배워보고 싶어졌다. 탭댄스에 관심 있다는 지인은 아마 이 영화를 보면 당장 댄스학원을 끊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