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건설부 광주국토관리사무소 행정서기보로 시작한 여성공무원 박금해는 현재 부산지방국토관리청 영주국토관리사무소장이다. 금년말 정년퇴직을 하게 되는 그는 41년 4개월 동안 국토교통부에서 장기 근무하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본부에서 20년, 지방국토청·국토관리사무소에서 21년을 근무한 국토부의 산증인이자 역사이다. 그가 오랫동안 걸어온 길은 ‘없는 길’을 만들어온 험난한 노정이었다. ‘유리천장’과 ‘금녀의 벽’이라는 난공불락과 같은 장애물이 늘 있었다.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고 9급공무원에서 최초 여성기관장까지 공직 41년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털어놓았다. 퇴직을 앞두고 펴낸 자서전 ‘국토우먼 박금해 길이 되다’(그린북아시아)를 펴낸 것부터가 새로운 도전이다.

‘국토우먼 박금해 길이 되다’에는 박금해 소장이 19세에 시작한 공직 생활 가운데 처녀 가장, 아내, 며느리, 어머니로 살아오며 남성 우위의 사회에서 제약과 편견에 시달리면서 성공적으로 직장생활을 해온 인생 역정이 담겨 있다. “41년의 기록은 비단 내 개인사이기도 하지만 공직의 역사이기도 하다.”

박금해 지음, '국토우먼 박금해 길이 되다', [사진=그린북아시아]
박금해 지음, '국토우먼 박금해 길이 되다', [사진=그린북아시아]

열 명의 대통령과 함께한 세월 속에 숱하게 맞이한 시련과 도전을 극복해간 이야기를 눈에 보이듯이 그려놓은 솜씨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하지만 ‘여성공무원 호칭의 변천사’ 같은 대목에서는 호칭 문제로 겪었던 여성공무원들의 애환을 추억거리로 가볍게 넘길 수만은 없다. 가정과 일,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고 박 소장은 이제는 용감하게 이야기하지만, 첫 아이를 낳고 27일 만에 출근하고, 정상업무를 시작하고, 아이 맡길 곳이 없어 아이를 등에 업고 울면서 거리를 배회하기도 했다. 이런 사정이 지금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자녀의 출산과 양육이 결코 부부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가 담아낸 공직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업무처리와 지혜가 그대로 사장하기에는 매우 귀한 것들이다. 2002년 5월과 8월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물류가 멈추자 화물연대와 소통하여 해결하는 과정, 갈등관리 담당자로서 갈등관리 시스템을 만든 일, 교통전문재활병원 위탁운영자 선정 과정 등은 성실하고 창의적인 공무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9급부터 시작했던 내 공직생활이, 현장 속에서 체득한 경험과 지혜가 누군가에게는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는 박 소장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박금해 소장은 차별 받고 여성을 환영하지 않은 사회에서도 불평불만보다는 인내와 열정, 긍정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사회를 바꾸어왔다. 그 밑바탕에는 오랜 세월 해온 기체조와 명상이 있다. 이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 건강을 유지하고 평화를 체험했다. 2015년에는 뇌활용 전문가인 국가공인브레인트레이너 자격을 취득했다. 이러한 지혜를 주위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15년 가까이 정부 과천청사, 세종청사에서 직원 대상으로 건강 기체조 수련지도를 하였다.

박금해 소장은 국토교통부는 인생의 무대, 삶 자체였다. 국토부를 떠나도 박 소장의 삶은 계속된다. 국토부를 떠나도 국토부에 ‘영양가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게’ 박 소장의 소망이다. “지금까지 한반도 국토 전체를 풍요롭고 아름답게 잘 관리하는 일을 했다면, 앞으로는 홍익정신이 살아 숨 쉬는 정신대국, 행복한 통일한국을 위해 일조하고 싶은 생각이다.” 그래서 박 소장은 제2기 인생을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통일대사’를 꿈꾼다. “우리 베이비붐 세대들이 평화통일을 위해 ‘통일대사’ ‘평화대사’ ‘홍익대사’ 등등 각각 분야에서 명예대사로 일할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고, 통일이라는 민족 과업을 훌륭하게 추진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또 다른 새로운 길/ 나는 그 길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는다” 박금해 소장의 발걸음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박금해 지음/그린북아시아 펴냄/1만 5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