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외국 여행이 늘어남에 따라 관광의 질과 모습도 여러 형태로 분화되고 있다. 혼자, 또는 두세 명의 배낭여행, 최소한의 경비로 하는 가족 여행, 모르는 사람들과 섞여 가는 소위 패키지여행이 있다. 또 여럿이 특수한 목적으로 손수 디자인 하는 여행, 이번 여행이 그 경우로 주로 전문가의 연구에 적합하다. 가장 자유롭고 배울 점이 많기로는 나 홀로 배낭여행이 좋지만, 그만큼 우여곡절이 많고 체력이 많이 소요된다. 일행 중에 대학생 한 명이 이미 20여 개 국을 배낭여행한 경험이 있어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았다.

외국에서 가이드는 그 여행의 성패를 가를 정도로 중요하기도 하다. 이번 우리 화가들의 여행을 안내해준 분은 파리에 거주하는 정병주님이다. 만족하고 감사드린다. 한국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대학교 강단에서 가르침을 전한 분으로 내내 지식과 몸을 아끼지 않고 퍼 주었다. '발레리'의 시처럼 지성의 고뇌가 석류알처럼 알알이 배어 있는 모습이 세속에서도 초연하다. 자신의 아호를 매사를 넓게 보자고 '널리봄'으로 지었다. 결혼 20주년을 축하드리며 따님도 마냥 행복할 것을 기원한다.

외국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면 대게 알게 모르게 실수를 하게 된다. 방에 소지품을 놓고 온다든지, 출발시간을 크게 지연시킨다든지, 엉뚱한 짓도 한다. 나오는 현지식마다 트집을 잡고, 무좀약을 치약으로 알고 거품이 안 난다고 불평하는 해프닝도 벌어진다. 서로가 서로의 가이드가 될 때 아름답고 성공적인 여행이 될 것이다. 여행, 그것은 또 하나의 창조이다.

'널리봄' 초상, 수채화,  장영주 작. [사진=장영주]
'널리봄' 초상, 수채화, 장영주 작. [사진=장영주]

'순교자의 언덕'인 '몽마르트르'는 전 세계 화가들에게는 성지와도 같다. 순례하듯 꼭 한 번은 다녀와야 하는 곳으로 치부된다. 덩달아 관광객들도 붐비는 코스가 되었다. 젊은 날의 피카소, 로트레크, 모딜리아니, 유트릴로 등 미술사에 남은 거장들의 애환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당시 집세가 저렴했기에 가난한 화가들이 몽마르트르 언덕에 깃들어 살 수 있었다. 홍등가도 있고 지금도 캉캉춤으로 유명한 '무랑루주'(빨간풍차)라는 낭만적인 사교장이 있어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화가들의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곳이다. 지금의 디스코텍이라고나 할까? 특히 이곳에 지정석까지 두고 무희, 코미디언, 화가, 친구들을 그린 '뚤루즈 로트레크'(1864~1901)가 뒤뚱뒤뚱 나타날 것만 같다. 남프랑스의 귀족 출신으로 어려서 하체골절로 성장이 멈추어 난장이가 된다. 탁월한 순간적 묘사와 대담한 화면구성은 일본판화 '우키요에'와 '에드가 드가'의 영향을 받고 피카소에게 영감을 준다. 술과 여자에 탐닉한 그는 정신착란까지 가는 방만한 생활로 37세에 요절한다. 그러나 방대한 양의 작품을 남기고 특히 석판화를 대중화했다. 그는 술집여성들과 같이 생활하고 술집의 포스터도 제작하는 등 신분 고하가 없는 자유인이었다.

'몽 블랑'이 하얀 산이듯 프랑스어로 '몽'은 산이다. 따라서 '몽마르트르'는 '마르트르 산'이다. 서울의 북한산, 남산처럼 높은 산을 볼 수 없는 파리지앵들이 언덕을 짐짓 산으로 격상시킨 것이 아닐까? 산다운 산을 가려면 스위스까지 가야 한다고 하니 말이다. 산이 아닌 '몽 마르뜨 언덕'이라고 한 의역은 센스 만점이다. 철학자같이 엄격한 산보다는 얕트막한 언덕이 나사 하나 풀린 듯 한 화가처럼 만만하고 친근하지 않은가? 언덕을 오르면 정상에 '대성심 성당'이 우뚝 서 있다. 그러나 그곳으로 올라가는 5m 폭의 번화가에는 거의 열 발자국 간격으로 서너 개 팀의 야바위꾼들이 주사위를 돌리며 과객들을 등쳐먹고 있었다. 우리 일행 한 분도 그들에게 걸려 순식간에 40불을 뜯겼다. 교묘하고도 죄의식이라고는 없는 뻔뻔함이 그들의 주특기이다. 성당을 지나면 이젤을 세워 놓고 그림을 그리고 파는 화가들이 나타난다. 전혀 작품으로써는 가치가 없는 상품들이니 주의하여야 한다. 전성기가 지난 몽마르트르 언덕은 말 그대로 '악화가 양화를 쫒아내는 현장'일 뿐이다.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 곳을 찾는 코리아의 과객들이여. 차라리 한국의 무명작가의 작품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힘주어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