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과 9일 열린 제6회 서울국제 생활체육 국학기공대회에는 러시아 사할린동포로 안산 고향마을에 거주하는 어르신팀과 결혼이민으로 정착한 서울 다문화팀이 출전해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제6회 서울국제 생활체육 국학기공대회에서 해외부 금상을 받은 러시아 사할린 동포팀의 경연 모습. [사진=김경아 기자]
제6회 서울국제 생활체육 국학기공대회에서 해외부 금상을 받은 러시아 사할린 동포팀의 경연 모습. [사진=김경아 기자]

러시아 사할린 고향마을팀은 대부분 70~80대 고령의 어르신들로 구성된 팀이지만, 동작 하나, 호흡 하나도 일치하는 단합된 모습으로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이 팀에는 독립운동가의 딸인 전상옥(79) 선수도 있다.

강원도 양양이 고향인 아버지 전창열 씨는 땅과 소를 팔아 학교를 세우고 출판사를 운영하며 독립운동을 하셨다. 그러나 1939년 일제에 의해 러시아 사할린 탄광으로 강제징용을 당했고, 이듬해 한 살인 전상옥 씨도 어머니, 6형제자매와 함께 사할린으로 떠났다고 했다.

러시아 사할린동포 고향마을팀 전상옥 선수는 독립운동을 한 아버지 전창열 씨가 강제징용으로 러시아 탄광에서 일하게 되면서 러시아에서 살았다고 한다. 기공으로 병 걱정은 없다는 전상옥 선수. [사진=강나리 기자]
러시아 사할린동포 고향마을팀 전상옥 선수는 독립운동을 한 아버지 전창열 씨가 강제징용으로 러시아 탄광에서 일하게 되면서 러시아에서 살았다고 한다. 기공으로 병 걱정은 없다는 전상옥 선수. [사진=강나리 기자]

 전 씨는 “해방이 되어도 러시아(구 소련)와 우리나라 간에 국교가 성립되지 않아 귀국을 할 수 없었다. 탄광이 폐광되고 난 후 고생이 말도 못했다. 너무 궁핍해서 어머니는 46세 때 굶어 돌아가셨고, 동생 둘도 그렇게 잃었다. 아버지도 1972년 돌아가셔서 러시아 땅에 묻혔다.”고 했다. 이후 작은 오빠가 아버지의 독립운동 행적을 찾고 고향 어르신들이 아버지의 활동을 기억하고 기꺼이 증인이 되어주어 2010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고 건국훈장을 받았다.

전상옥 선수는 2000년 3월 한국으로 돌아와 경기도 안산 고향마을에 정착했다. “자식을 데려 올 수 없다고 해서 혼자 한국에 왔다. 언니와 오빠들도 다들 러시아에서 돌아가셔서 이제는 기댈 데가 없다.”는 전상옥 어르신은 청소 일을 해서 생활을 했다. 건강한 편이 아니었던 전상옥 씨는 “복지관에서 국학기공 수련을 하면서 병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외국선수들과 한 무대에 올라간 것만으로도 영광이고 눈물이 났다. 아마 러시아에 계속 있었으면 벌써 예전에 죽었을 텐데 한국에 와서 이런 기회도 생기고 이렇게 잘 지내는 게 축복”이라고 했다.

다문화강사과정에서 국학기공 강사자격을 갖춘 후나 씨는 국학기공 강사로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다문화강사과정에서 국학기공 강사자격을 갖춘 후나 씨는 국학기공 강사로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서울 다문화팀에는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 등에서 결혼 이민으로 한국에 온 선수들이 많았다. 후나(중국 심양) 씨도 10년 전 결혼 이민으로 왔다.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서울 다문화강사 과정 중 국학기공강사 과정을 이수해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홀시아버지를 모시면서 알게 모르게 힘든 점이 있었고 위장이 많이 안 좋았다.”는 후나 씨는 “기공수련을 하면서 위도 좋아지고 활력을 찾았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다섯 살인 아들 홍석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재능기부로 국학기공을 지도 한다. 그는 “지난 7월 우연한 기회에 유치원 원장님을 만났는데, 매주 1시간 의무적으로 아이들에게 신체활동 시간이 배정되어서 강사를 구한다는 말은 듣고 국학기공수련을 제안했다.”며 “아이들이 많이 어려도 잘 따라하고 재미있어 한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에 맞게 노래와 율동을 넣어 지도하고 있다.  유치원 외에도 결혼이민자 모임에서도 국학기공을 전하고 있다. 그는 “매주 월요일 2시간씩 국학기공 수련을 하고 집에서도 연습을 했는데 13개국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