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의 도하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또 다시 8시간을 날아간다. 일행이지만 초면인 옆 좌석 미대 학생들이 나를 어르신이라고 호칭하며 어려워한다. 할 수 없이 독주를 청해 마시고 깨다 자다를 반복한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나니, 악전고투끝에 드디어 파리의 CDG공항에 도착한다. 파리의 공항은 역시 세련되어 에스컬레이터도 곡선으로 여유 있고 보기 편하게 디자인 되어 있다. 현지 가이드를 만나 대형버스에 타고 곧바로 노르망디 루앙시청의 전시장을 향한다. 이번에는 2시간 30분을 땅 위로 달려간다.

버스는 13번 고속도로 진입하기 위해 잠시 파리를 통과한다. 왼쪽으로 눈에 익은 뾰족한 철탑이 보인다. 파리 시내 어디서나 보이는 '에펠탑'이다. 그 밑을 개울보다는 좀 더 넓고, 그러나 결코 강이랄 수 없는 푸른 물이 흐른다. 폭이 100m 정도에 불과한데 '세느강'이란다. "에게게, 요게ㅡ 그 오랜 동안 상상해온 낭만과 자유와 사랑이 젓처럼, 꿀처럼 흐르는 세느강이란 말인가! 실망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본다. 그런데 웬걸! 파리의 명물 수상가옥들, 천명을 거뜬히 태울 수 있다는 각종 유람선, 화물선, 쾌속 순찰선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살아있는 강이다. 파리지앵들이 왜 그렇게도 세느강을 예찬하는지 감이 온다.

세느 강변의 고색창연한 다리들. [사진=장영주]
세느 강변의 고색창연한 다리들. [사진=장영주]

"미라보 다리 아래로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른다. 나는 기억해야 하는가. 기쁨은 괴로움 뒤에 온다는 것을. 밤은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기욤 아폴리네르, 1886~1919)

노르망디로 향할수록 아름다운 녹색의 미라보 다리도 퐁네프의 다리도 멀어져 간다. 농업국인 프랑스의 농촌은 마을마다 중심에 성당이 있고, 그 앞에 시청 등 공회당, 그 옆에는 높은 취수탑이 있다. 노르망디가 가까워질수록 포도보다는 사과와 치즈가 유명하다. 프랑스에는 '들판에 동물이 없는 농촌은 농촌이 아니다.'라는 속담이 있다. 곳곳마다 소는 누워 있고 말들은 서 있어 평화롭다. 차창으로 고만고만한 마을들이 인상파 화가인 '알 프레드 시슬리(1839~1899)'의 목가적인 풍경화처럼 정겹게 다가오고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