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의 일(一)은 진리를 뜻한다. 진리란 말이 왜 나온 것일까?   헛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성현들께서는 헛된 것을 추구하면서 살면 고통만이 일어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에, 오랜 세월에 걸쳐 후세 인류를 위해서 ‘진리는 이런 것이다’라고 정의를 해 두었다.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 해 놓은 것, 이것이 바로 헛된 것이 아닌 진리다.


먼저 수천 년 내려온 경전들에 기록된 헛된 것은 무엇인가?


1. 반야심경 :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 모두 텅 빈 헛것
2. 금강경 : 범소유상(凡所有相)이 개시허망(皆是虛忘)하며 여몽(夢), 환(幻), 포(泡), 영(影)이라
3. 성경 : 부귀, 영화, 권세, 명예가 헛되다. 살리는 것은 영(靈)이요, 육(肉)은 무익 하니라. 육신(肉身)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4. 유가(儒家)의 대학 : 물유본말(物有本末)하고 사유종시(事有終始)하니 지소선후(知所先後)면 즉근도의(卽近道矣) 라.
5. 불경 : 제고(諸苦) 무명고(無明苦)
6. 도덕경 : 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


 위에서 살펴본 바 진리를 찾고 공부하는 이유는 인생의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다. 무릇 모습 있는 것은 다 헛되고 망령된 것이라 하였고, 육신의 생각 즉, 마음 역시 절대적 대 본체와 원수가 되며 죽음의 고통을 주는 주범임을 알 수 있다. 남은 것은 ‘마음 너머의 세계’ 즉, 성경에서 말하는 ‘영의 생각’만이 생명과 평안을 주는 진리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면 이 ‘영의 생각’은 어떻게 체득할 수 있는가? 그것은 성현들께서 말한 ‘육체와 마음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는 생각’으로 깨어 있는 것이다. 깨어 있으면서 현존하는 상태의 의식으로 앞에 오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기(비파싸나) 수행을 통해서 체득할 수 있게 된다.
 핵심, 중심, 근본을 먼저 파악해야 만이 자유로울 수 있고 말단에서는 고통을 벗어날 수가 없다고 대학에서는 말하고 있다. 핵심, 중심, 근본은 바로 마음 너머의 세계, 영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고통을 주는 무명은 육체와 마음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을 말한다. 풀 한 포기,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천지 만물 진리 아닌 것이 없다고 혹자는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근본이 아닌 말단의 현상, 꿈같고 물거품 같다고 금강경과 반야심경, 성경과 유가의 경전에서 말한 헛된 것이다, 즉 보이는 현상을 진리라고 잘 못 본 것임이 명백하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니 이는 색즉색(色卽色)이 된다’라고 해설하여 진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본질이 아닌 현상계의 말단을 이르는 말로써 인간을 고통과 재난으로부터 결코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없다. 그저 자연현상일 뿐이다. 어떻게 풀 한 포기, 돌 하나가 그대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겠는가?
반야심경에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오온(生滅·변화하는 모든 것을 구성하는 다섯 요소)인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 개공(皆空) 즉, 모두 텅 빈 헛것임을 알아차려 자신에게 체득(體得) 되었을 때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 질 수 있다고 분명히 설파해 놓고 있다.
 진리란 바로 이 자유로워지는 지점을 말한다.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 줄을 알아야 도(道) 즉, 진리에 가깝다고 대학에서 말하고 있는 바, 먼저 근본을 파악하여 공(空)을 체득한 연후라야 말단의 천지 만물이 축제의 소품이 될 수 있다. 그러니 공부하는 학형들께서는 혼란이 없길 바란다.    


국학원천부경연구소 좌불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