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지나버린 쓸쓸한 바닷가에 언제나 부서지는 파도만이 ~ 아직도 내 가슴엔 아프게 출렁이고 있는 지나간 여름날의 추억 ♬” 나도 모르게 이정석 씨의 ‘여름날의 추억’ 이라는 노래 첫 소절을 따라 부르게 된다. 이것은 이미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는 증거다. 요즈음 자고 일어나면 하늘이 1m씩 높아지는 것 같다. 이것은 가을의 증거다. 그러니까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지난 여름, 무척 뜨거웠다. 이열치열이라고 했나. 더울수록 더 움직여야 된다. 움직이지 않으면 여름에 지고 만다. 여름의 한 정점에서 오래 동안 기다려 왔던 중국 내 고조선 및 고구려 유적지를 답사하기 위한 여행길에 올랐다. 단순 여행이 아니라 학술연구를 목적으로 한 답사여행이었다.

민성욱 박사
민성욱 박사

답사란 현장을 방문하여 직접보고 조사하는 것을 말한다. 답사도 넓은 의미로 보면 관광이나 여행의 범주에 들어간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시작되는 요즈음 여행하기에 좋은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언젠가부터 우리 삶 속에 관광이나 여행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관광산업 또한 국가의 중요한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고 국가경쟁력의 주요 지표로도 활용되고 있다. 그래서 관광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관광과 여행은 어떻게 다른지 아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

관광은 말 뜻 그대로 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고, 여행은 다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물론 보기 위해서는 다녀야 되고, 다니다 보면 보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비슷한 뜻으로 혼용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구분을 한다면 관광은 어떤 목적을 갖고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떠나는 것이고, 여행은 떠나는 것은 같지만 목적 없이 무작정 떠나는 것도 여행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답사라는 특정한 목적을 갖고 있다면 관광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관광의 최초 기록은 사서삼경 중 하나인 중국 주나라 때 『주역(역경)』이다. 『주역』에는 관광을 ‘관국지광(觀國之光), 이용빈우왕(利用賓于王)’이라고 설명한다.  직역하면 나라의 빛을 보는 것은 왕에게 빈객이 활용되는 것처럼 이롭다는 뜻이 된다. 당시만 해도 오늘날처럼 한 나라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손님이 오면 그 나라의 사정을 들을 수 있었고 새로운 문물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다른 나라의 새로운 문물을 통해 얻은 지혜를 왕은 국가를 통치하는 데 활용했다. 여기서 빛이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역사적ㆍ문화적 가치를 말한다. 이때 관광의 의미는 ‘나라의 빛을 본다’는 뜻이 된다.

그 다음 기록으로는 고려시대 『고려사절요』에 나온다. 원래 ‘절요’란 기존 사서를 필요에 따라 요약한 관찬사서의 일종을 말한다. 그런데 『고려사절요』는 단순 요약서는 아니다. 『고려사』에 없는 내용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고려사』가 ‘본기(세가)’와 ‘열전’ 등으로 구성된 기전체라면 『고려사절요』는 발생일자별로 기록한 편년체이다. 원래 조선 세종은 전대 역사서인 『고려사』를 편년체로 하라고 하였으나 김종서 등이 세종을 설득하여 먼저 『고려사』는 기전체로 하고, 추후 『고려사절요』를 편년체로 기록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편년체가 왕 중심의 기록이라면 기전체는 신하들의 활약상이 열전에 기록되므로 신하들이 선호하는 역사서술 방식이다. 이러한 『고려사절요』에서는 관광의 의미를 ‘선진국의 문물을 시찰한다’ 라고 보았다. 즉 빛을 본다는 것은 뇌가 밝게 깨어나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보는 것의 차원이 아니라 선진국의 우수한 문물을 통해 지혜가 열리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어서 조선시대에는 『중종실록』,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등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관광을 “상국의 문물, 제도 등을 보고 배우거나 명승지와 자연경관을 구경한다” 라는 의미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상국은 명나라 혹은 청나라를 의미한다.

“관광은 관국지광(觀國之光)에서 비롯된 말”

‘관광’의 글자를 앞 자인 ‘관(觀)’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보다’ 라는 뜻을 가진 말에는 볼 견(見), 볼 시(視), 볼 관(觀)이 있다. 이것을 두고 견시관의 차이라고 한다. 우선은 ‘見’은 견해를 갖고 보는 것이고, ‘視’는 시각을 갖고 보는 것이다. 견해와 시각을 갖고 보게 되면 견해와 시각의 차이에 따라 똑같은 대상(사람과 사물)을 보더라도 달리 보이거나 왜곡될 여지가 많다. 하지만 ‘觀’은 견해와 시각에 구애받지 않고 전체를 볼 수 있는 ‘통찰’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핵심이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고 보면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통한 올바른 역사의식이 중요한 것이다. 觀이 중요하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에는 관이 다 들어간다. 가치관, 인생관, 역사관, 국가관 등

다음은 광(光)이다. 광은 밝고 아름다운 것으로 그 지역이나 그 나라가 갖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의미한다. 세상의 빛, 그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스피릿인 홍익의 빛을 말한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홍익이 발현된 역사이고, 그 역사를 통해 창조된 문화가 우리 전통문화이다. 어느 민족이든 어느 나라든 고유한 정신과 문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교류되고 함께 발전한다. 그것이 바로 역사의 발전이다. 관광의 원래 의미는 역사발전의 주요한 원동력이 된다.

다른 나라나 지역을 관광할 때 처음에는 다른 것이 눈에 띄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같은 점을 찾을 수 있다. 진정한 관광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지, 그래서 다른 것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같은 것은 무엇이 어떻게 같은 것인지를 찾아내는 것, 이것이 진정한 교류이고 본래 관광의 의미이다.

관광이라는 문자는 ‘빛나는 업적을 쌓은 이를 찾아가 그걸 살피고 배우는 것’으로 피상만 보는 시(視)가 아니라 “꿰뚫을 만큼 세밀하게 살피고 속을 깊게 들여다 본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즉, 통찰력을 갖고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 자국 국민의 삶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 바로 관(觀)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관광은 국가발전과 백성의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만드는 치국대도(治國大道)의 설계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역이 관광지이고, 국토 전역이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

다른 지역이나 나라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발견하여 자기 지역이나 나라를 이롭게 하는 것이 진정한 관광의 의미이자 목적으로 이것 또한 홍익인간의 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고조선시대 때 국자랑(천지화랑)들이 전국에 있는 명산대천을 유람하며 학문과 무예를 닦았고, 이러한 전통은 부여의 천왕랑,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무절, 신라의 화랑으로 이어졌다. 신라 진흥왕 때에 정벌한 영토를 확인하기 위한 순행이 있었다. 이러한 순행의 증거가 진흥왕 순수비로 북한산 순수비, 황초령 및 마운령비, 창녕비가 있다. 그런가 하면 고구려 왕들은 전국을 다니며 사냥터에서 사냥한 사냥감들을 백성들에게 베풀어 배불리 먹도록 했다.(국중행사)

이렇듯 고려시대까지 교역, 공무, 교육 등을 위한 여행의 형태가 나타나는 초기여행의 시기였다. 조선시대에는 유람이라는 형태의 여행이 나타나는 여행의 시기였으며, 근대 이후에 기차, 증기선 등의 교통기술이 도입되고 근대식 호텔이 등장하는 초기 관광의 시기가 나타났다. 현대시대에 들어 급속한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관광행정기반이 만들어지면서 대중 관광의 시기 및 새로운 관광의 시기로 진입하는 압축적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관광은 사회현상으로 역사적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다. 이렇게 관광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관광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관점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관광은 오랜 기간을 통해 이루어진 역사적인 형성물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