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를 창조하는 젊은이, ‘따뜻함’끌어내는 아트디렉터의 길을 간다
기회를 창조하는 젊은이, ‘따뜻함’끌어내는 아트디렉터의 길을 간다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18.09.13 2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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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교1년 이후 자유학년제로 세상을 멘토로 삼은 청년 김민주 양

아파트 앞 낙엽 길을 쓰는 경비원 아저씨, 바다 위에서 보트를 운전하는 할아버지의 여유, 한가로운 고양이의 일상, 책가방을 던져놓고 철봉을 하는 아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아트디렉터가 되기 위해 김민주 양이 미국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에 제출한 포트폴리오 사진. 사진의 주제는 '일상의 따뜻함'이다. [사진=본인 제공]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아트디렉터가 되기 위해 김민주 양이 미국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에 제출한 포트폴리오 사진. 사진의 주제는 '일상의 따뜻함'이다. [사진=본인 제공]

이 사진들은 22살 김민주 양이 ‘일상에서 느끼는 따뜻함’을 주제로 평소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이다. 김 양은 지난 3월 미국 뉴욕 맨하튼에 있는 ‘스쿨 오브 비주얼아트(SVA)'에 편입하기 위해 이 사진들을 포트폴리오로 제출했다. SVA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각 디자인, 광고 명문대학으로 ’비주얼 아트 분야의 정상頂上‘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광고천재‘ 이제석 씨가 나온 학교로 유명하다.

이곳에 진학하기 위해 포트폴리오 학원비만 2,000만 원이라고 했다. 민주 양의 방법은 조금 달랐다. 포털 사이트에 ‘SVA에 진학하려는데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질문을 올렸고, 조언에 따라 자신만의 스토리를 담은 에세이와 사진을 준비했다.

SVA의 첫 번째 결과는 탈락이었다. 영어자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주 양은 오랫동안 소망한 꿈이었기에 ‘영어 자격을 갖출 테니 기회를 달라’고 메일로 요구했다. SVA는 “당신은 이미 우리 학교가 학위를 따기 위한 곳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열정을 함께 키우기 위한 커뮤니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영어성적을 기다려주겠다”고 답변 메일을 보내왔다. 민주 양은 여름방학에 한국에 와서 토플성적을 제출하여 최종합격했다.

김민주 양이 자신의 인생에서 기회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은 18살 때부터이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우리나라에서 첫 자유학년제 학생이 되면서 세상 속에서 경험을 쌓아오고 있다.

“진심을 다해 선택하면 이루어진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도전한다.”는 것을 인생 모토로 삼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고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아트디렉터가 되겠다.”는 김민주 양을 출국 전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올해 22살 김민주 양은 사진과 영상을 통해 사람의 마음속에서 따뜻함을 끌어내는 좋은 스토리의 콘텐츠를 만드는 아트디렉터의 꿈을 가지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올해 22살 김민주 양은 사진과 영상을 통해 사람의 마음속에서 따뜻함을 끌어내는 좋은 스토리의 콘텐츠를 만드는 아트디렉터의 꿈을 가지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SVA 편입을 축하합니다. 위스콘신 대학에서 장학생으로 다녔는데 이번에 편입한 계기는 무엇인지요.

- 감사합니다. 사진과 영상을 통해 사람의 마음속에서 따뜻함을 끌어내는 아트디렉터를 꿈꾸면서 SVA 편입은 원래 유학계획에 있었어요. 2015년 12월 글로벌리더십 과정으로 미국에 갔을 때, 제 꿈을 알고 현지에 계신 분이 소개했고, 미국 대학에서 편입할 것을 권하셨어요. 제가 유학을 결심했을 때 부모님은 유학을 가서 무엇을 배우고 무얼 하고 싶은지 PPT로 만들어 프레젠테이션을 하라고 하셨죠. 뭔가를 결정할 때 스스로 정리해서 정확한 목표가 세워졌으면 지원하겠다는 것이죠. 이번에 첫 학기는 부모님이 지원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제 스스로 해결할 예정입니다.

이번 입학 면접에서 에세이가 합격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 에세이에는 좋은 대학이라는 목표 대신 자유학년제 1년을 보내면서 끊임없이 도전하며 멘토들을 만나고 스스로 멘토가 되는 과정에서 성장했다는 이야기, 사진전 개최와 단편영화를 제작한 경험을 적었어요. 작품에 담고자 하는 의도와 함께 ‘전문적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나는 일상에서 따뜻함을 잡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SVA에서 전문적 기술을 배우고 유명교수님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인맥을 얻고 싶다’고 했어요. 보통 이 정도 쓰면 된다는 분량이 있는데, 그것보다 많이 썼죠. 간절하니까요. 그리고 자신감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자유학년제 고교 대안학교에 1기생으로 입학했는데.

-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2013년 겨울방학 때,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가 생긴다는 말을 듣고 꼭 가겠다고 마음먹었죠. 교사인 엄마는 혁신적인 교육에 찬성하는 입장이고, 아빠는 그래도 공교육을 받는 게 낫다는 입장이셨어요. 할아버지가 S대에서 일하셨고 집안에 S대 교수도 많이 계셔서 저나 동생 가운데 한 사람은 그 대학에 갈 것이라 기대하셨어요.

벤자민학교의 입학면접은 부모님과 함께 해야 하는데, 면접관 앞에서 제가 1년의 도전 과정을 통해 꼭 꿈과 목표를 찾고 싶다고 발표하다가 울컥 눈물이 나왔어요. 아빠는 늘 의욕도 없이 귀찮아만 하던 사춘기 딸이 간절하게 원하는 게 놀라왔다고 하셨죠. ‘소심하고 자존감이 낮은 아이인데, 하고 싶은 게 저렇게 간절하면 아이가 바뀌겠구나.’생각했다고 편지를 써주셨어요.

입학 과제로 천안의 흑성산을 10번이나 올랐다는데, 왜 그렇게 하고 싶었는지.

- 우리나라에서 첫 시도되는 자유학년제이다 보니 지원자에게 그만큼 의지가 있는지 미션이 주어졌어요. 하루 동안 흑성산(517.7m)을 계속 오르내리다보니 운동화가 헤졌는데 그걸 보고 아빠가 마침내 허락해주셨죠.

중학교 때부터 명확한 꿈이 없어서 마음이 복잡했어요.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건 많지만 딱히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고민이었죠. 고1때 내신 성적에 따라 선생님은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지망하라는 진로상담을 해주셨어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게 우선 인데’라는 생각에 뭔가 꽉 막힌 느낌이었어요. 쉬고 싶은 마음도 사실 조금 있었고요. 벤자민 1년 과정을 마치고 수능 준비하는 친구들을 만났는데, 정작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고 아프고 힘겨워하는 친구들을 보는 게 안타까웠어요.

벤자민인성영재학교 1기 김민주 양은 2014년 말 사진전을 열고, 2015년에는 단편영화 '종이비행기'를 제작했다. [사진=코리안스피릿 자료]
벤자민인성영재학교 1기 김민주 양은 2014년 말 사진전을 열고, 2015년에는 단편영화 '종이비행기'를 제작했다. [사진=코리안스피릿 자료]

벤자민학교 생활과 1기생들과 지낸 이야기를 부탁합니다.

- 스스로 계획하고 도전해야 하니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제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후배들이 수백 명이지만, 1기는 27명이었죠. 각자 자기 인생을 설계하는데 관심이 많았고 열정이 넘쳐 배울 점이 많았어요. 고등학교 친구들하고는 먹고 즐기는 일상적인 대화만 했지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진 않았어요.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여겼죠. 그런데 벤자민학교 친구들하고 서로의 꿈을 들어주고 응원하면서 오그라드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걸 알았어요.

벤자민학교에서 경제수업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 자신이 원하는 걸 하기 위해 스스로 3개월 이상 아르바이트하는 게 과정 중 하나였어요. 부모님도 입학을 허락하는 대신 학비는 스스로 준비해보라고 하셨죠. 처음에는 음식점 서빙이었고, 나중에는 콘서트 스태프 등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제가 콘서트 산업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당시에 치아교정 중이어서 콤플렉스가 심해 잘 웃지 않았고 낯선 사람을 대하는 걸 몹시 어려워했어요. 3~4일 만에 그만두라거나 ‘좀 웃어라’라고 지적도 많이 받았죠. 거울을 보고 연습을 하기도 했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람을 대하는 게 편안해졌어요.

사진과 영상 분야에서 꿈을 찾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 평소에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마음에 들 때까지 보정하는 게 틈날 때마다 하는 취미였어요. 다른 사람들이 사진 부탁도 많이 하고요. 그렇다고 딱히 꿈은 아니었죠. 그런데 벤자민학교 특강에 온 알렉스 킴 멘토를 만나고 달라졌어요. 아이들의 꿈을 찍는 포토그래퍼 인데, 파키스탄 아이들의 밝은 미소를 찍은 사진전을 열어 그곳에 학교와 집을 짓는 일을 하셨죠. 자신이 좋아하는 걸 갖고 세상에 멋진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그해 12월에 1년간 활동을 담은 벤자민인성영재페스티벌에서 저는 ‘CHANGE’라는 주제로 사진전을 열었어요. 따뜻함을 기본으로 제가 마음을 열고 세상을 만나게 된 이야기를 담았죠. 첫 전시회였는데 많은 분들이 격려해주셨어요.

졸업 후에는 단편영화를 제작해서 대한극장에서 상영했다고.

- 대한민국청소년미디어대전(KYMF)이라고 청소년들이 영상제작을 할 수 있도록 서울시립미디어재단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찾아내서 면접을 보고 합격했어요. 벤자민학교를 다니면서 해야겠다고 결심하면 찾아내서 기회를 만들고 도전하는 것이 익숙해졌죠. 청소년들이 쓴 시나리오를 현직 감독님과 작자님이 검토해주고 선발해서 카메라 등 장비를 대여해주었죠. 그리고 청소년들이 서로가 서로의 스태프가 돼주었죠. 제가 쓴 시나리오를 보고 작가께서 칭찬을 해주었어요. 단번에 자신감이 솟았죠.(웃음) 제작하면서 ‘전문적인 기술이 없어도 하나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구나’하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종이비행기’라는 5분 정도의 단편이었는데, 특별 상영을 하는 기회가 주어졌어요.

단편영화 ‘종이비행기’에는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 제가 다닌 검정고시 학원에는 60~70대 할머니 할아버지가 함께 공부했어요. 잘 소통이 안 될 거라고 짐작했는데, 한 할아버지가 과학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시면서 달라졌죠. 초등학교 교실 같은 데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제 시나리오에는 검정고시 학원에서 첫사랑이 생긴 소년이 할아버지의 소년시절 첫사랑 이야기를 듣고 소통하며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내용으로 구성했어요. 종이비행기는 젊은 세대와 노인세대의 교감을 나타내는 매개체인 셈이죠.

2015년 12월 글로벌리더십 과정에서는 무엇을 배웠는지.

- 벤자민학교 1기생들 중 6명이 참여했어요. 현지인들을 만날 기회도 많았고 뉴욕 맨해튼에서 우리 문화를 알리는 아리랑 프로젝트도 했어요. 그리고 미국 교육현장을 가보고 제 경험을 발표할 기회도 있었어요. 그동안 미국은 교육환경이 잘된 나라라고만 생각했는데 우리나라 보다 더 심각한 면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아이들이 꿈이 없이 살거나 마약을 하는 아이도 있었죠. 한번은 뉴욕 브롱스지역의 한 초등학교를 갔을 때 학교 인근에서 총기사건이 났다고 나가지 말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어요. 그런데 방문한 초등학교에서 우리나라 뇌교육 수업을 받고 아이들이 변화한 사례를 알게 되었죠. 수업에 참여도 했고요. 저도 한국에서 뇌교육을 받았는데, 그 아이들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경험이 된 것 같았어요. 자랑스러웠죠.

유학은 어떻게 준비하게 되었고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 벤자민학교 학생들의 성장스토리에 관심이 많은 교수님이 유학준비 프로그램을 설계하면서 지원자로 참여해보겠냐는 제안을 하셨죠. 제가 마음을 먹으면 도와줄 분이 생기는 것 같아요. 유학준비하면서 제일 힘든 건 시간 관리였어요. 매일 6시에 안양  집에서 출발해서 안암동에 있는 대학에서 8시에 첫 수업을 했는데 힘들었죠. 자유학년제를 하면서 자기주도적으로 시간을 계획하지 못했다면 예전처럼 힘들고 귀찮으면 빠지곤 했을 거예요.

전에는 큰 목표만 목표인줄 알았는데, 큰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 있는 작은 것도 목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계속 목표를 이루는 제 모습을 상상했죠. 확실한 목표가 생기니까 해야 하는 일도 명확해져서 힘들어도 참을 수 있었어요.

위스콘신 대학 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

- 엔터테인먼트 디자인학과에 진학했어요. 첫해는 국제학생을 위한 영어수업인 ESL프로그램만 했고 다음해부터는 미술 등 전공수업과 병행했어요. 영어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공부해야 했는데, 제가 숙제로 에세이를 쓰면 첨삭을 도와주는 학생이 있었어요. 국제학생을 위한 학교 측의 배려였죠. 미술수업은 그림을 통해서 서로 비평해주며 소통하다보니 친구들과 더 친해질 수 있었어요. 제가 미술학원을 다닌 적이 없었지만 배우는 게 어렵진 않았어요.

교수님도 굉장히 열정적이셨는데 학생들에게 꿈에 관한 TED영상도 많이 보여주고 제가 국제학생이라고 더 많은 관심과 기회를 주려 하셨어요. 마지막 드로잉 수업 때는 회사 면접상황을 연출해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가지고 왜 자신을 뽑아야 하는지 프레젠테이션 하라고 하셨어요. 굉장히 두려운 자리였는데 “이번 기회가 네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셨어요. 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인정받을 수 있었어요.

김민주 양은
김민주 양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뭔가 시작을 해야 합니다. 지금 뭔가 하는 일은 점을 찍는 것과 같아요. 일단 부딪히고 계속 점을 찍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사진=김경아 기자]

벤자민학교 멘토를 통해 성장했고 자신이 멘토가 되어 다시 성장했다고 했는데.

- 맞아요. 벤자민학교에서는 멘토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그분들은 공통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뭔가를 시작해야한다. 가만히 있지 말고, 생각만 하지 말고!”라고 했어요. 저보다 먼저 자기 인생을 개척하고 도전했던 분들의 강연을 들으면 가슴이 뛰고 의욕이 생겼어요.

저도 청소년들 앞에서 제 경험을 강연할 기회가 많았어요. 제가 아직 대단한 결과를 이루어낸 건 아니어서 떨리기도 하지만, ‘평범한 언니, 누나도 자기가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구나’라고 용기를 준 것 같습니다.(웃음)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키우세요. 지금 뭔가 하는 일은 점을 찍는 것과 같은 거예요. 일단 부딪히고 계속 점을 찍는 것이 중요해요. 시작하고 기회를 만드세요. 자기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게 필요하고 자기가 자신을 아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앞으로 어떤 꿈을 이루고자 하는지.

-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그리고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좋은 스토리의 콘텐츠를 만들어 좋은 사회를 만드는 아트디렉터가 되고 싶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데 음악 산업에도 관심이 있어요.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에게 쉽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음악이죠. 그래서 스토리와 메시지가 있는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보고도 싶습니다.

꿈을 한가득 품은 김민주 양은 이번 9월 새로운 도전의 날개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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