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노트 구매하기
공항에서 노트 구매하기
  •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
  • npns@naver.com
  • 승인 2018.08.14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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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지구경영연구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한국명 이만열) 원장

인천 국제공항에서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에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었기에 나는 책 원고에 사용할 몇 가지 아이디어를 기록할 수 있도록 노트와 펜을 사기 위해 돌아다녔다. 그러나 노트와 펜을 판매하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직면한 것은 유명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고가의 옷이나 번드르르한 핸드백을 판매하는 매장들이었는데, 그곳 여성들은 불편한 옷을 입은 채 지루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또한, 나는 주류 판매점과 고가의 손목시계, 향수, 로션 및 전자 기기 매장을 발견했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서점의 구석에 숨겨져 있는 내가 찾던 물건들을 발견했다.

국제뇌교육종합대원대학교 지구경영연구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원장.
국제뇌교육종합대원대학교 지구경영연구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원장.

 

이러한 광경은 내가 이곳에 살기 전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기억하고 있던 공항의 모습이 아니었다. 당시에 이곳은 사치품을 소비하는 성전이 아니었다. 무언가 아주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분명했다.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 공항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것만 생각한다면 그러한 시스템은 전적으로 타당할 것이다. 때로는 지루해 보이는 부유한 고객이 고가의 시계나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옷을 구매함으로 인해 얻게 될 이윤은 노트나 과일 또는 자외선 차단제를 일반인에게 판매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익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체적인 공항의 문화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되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강요되어 가치관을 왜곡하는 방종과 게으름의 성지가 되었다.

한 번은 서울의 박물관에 있는 한 카페에 책을 읽으려고 들어간 나는 제공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잡지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부유한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세련된 사진들로 레이아웃이 두드러진 패션 잡지였다. 그 잡지는 당대의 디자이너들이 전통 한복을 현대적으로 변형한 고가의 여성용 한복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모델들이 취하고 있는 포즈에서 충격을 받았다. 정교한 한복 드레스를 입고 호화로운 가구에 기대어 있는 여성들은 도발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들의 나른한 표현에서는 극단적인 방종과 권태감이 줄줄 흘렀다. 그들은 루이 16세의 베르사유 궁전에 대한 찬사로만 해석될 수 있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궁전에서 어떤 특별한 점 없이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원래 한복의 특징은 단아함과 미묘함의 이상적인 조화에 있으며 퇴폐와 따분함의 향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한정된 중국인 부자 관광객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전반적인 한국의 전통이 바뀐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단지 우리 문화의 건강성만을 잊을 수 있다면, 그 잡지는 큰 의미가 있다. 부유한 중국인 관광객 한 명을 설득해 이 유명 디자이너들이 만든 한복을 구매하게 할 수 있다면 서울역사에 관한 수백 권의 책이나 전통 판소리 공연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TV를 켤 때마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결코 발을 들여놓지 않는 아주 호화로운 집을 배경으로 제작된 TV드라마를 보아야 한다. 고급 커피숍에서 이루어지는 비극적 사랑에 대한 대화는 한국인의 일상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50세 이상이라면 TV 드라마와 광고가 평범한 중산층 가정을 배경으로 설정했던 시기를 기억할 것이다. 당시에는 충동적으로 부를 과시하는 것이 불쾌한 행위로 간주되곤 했었다. 그러한 일들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한국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편의점에 서서 일하며 피곤한 하루를 보내는 어린 소녀들이 최신 유행을 따르려면 따분하고, 부유해져야 한다는 이미지에 의해 설득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비극인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부의 집중과 그에 따른 위험한 문화 왜곡 현상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평생 보지 못했던 규모의 정치적 급진주의를 싹트게 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프랑스 혁명이나 파리 코뮌과 같이 인위적인 수단을 통해 좀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려고 했던 극단적인 사례에서 어떤 식으로 이 문제를 다루었는가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 단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사례들에서 사용했던 극단적인 접근 방식이 다음 세대에서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그러한 시도가 도움보다는 파괴적인 측면이 더욱 강했다는 점이다.

유교에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세련된 방식으로 사회적, 경제적 평등 문제를 다루고 있다. 비록 조선 왕조의 억압적인 '봉건적' 계급 체제가 직면해야 하는 현실이었지만 우리는 왕실과 양반 가정에서 검소한 생활양식이 요구되었고 18세기와 19세기에 유럽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방종과 낭비 행위가 자제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공자(孔子)는 불평등에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患不均)한다고 말했으며 세종과 같이 공자의 사상을 추종했던 이들은 불평등 문제를 중점으로 다루어 장기적인 해결책을 모색했다.

유교적 관점에서 본 기회의 균등 문제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명시되어 있다. 다음에 나와 있는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그러한 부의 집중에서 비롯한 사회의 왜곡은 처음부터 본질적인 위헌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각자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정함으로써 이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좀 더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폭력적인 대결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러한 빈부격차를 야기하는 우리 문화와 사회의 왜곡 현상을 다루지 않고, 특정 그룹에만 수시로 지원금을 나누어주는 것은 심리적으로 건강에 좋지 않은 의존성을 부추길 뿐이며 안정된 사회를 만드는 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진정한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는 건강한 문화를 수립해야 한다. 우리는 그러한 과정에 관한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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