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압적인 역사의 그늘아래 참담한 기억을 안고 평생 고통 받던 위안부피해 할머니들이 당당하게 세상에 나선 기록을 담은 영화 ‘허스토리’. 급격하게 줄어든 상영관과 관람이 쉽지 않은 시간대의 상영으로, 꼭 봐야할 영화가 묻혀버린다는 우려 속에 개봉 3주를 맞았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허스토리' [사진=수필름 공식페이스북]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허스토리' 민규동 감독/ 김희애 김해숙 주연 [사진=수필름 공식페이스북]

민규동 감독의 ‘허스토리’는 1992년 12월 25일부터 1998년 4월 27일까지 야마구치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지부에 제기된 관부(關釜)재판을 다뤘다. 관부는 일본 시모노세키(關)와 한국의 부산(釜)을 일컫는다.

6년간 23번의 공판동안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위안부 피해자 세분과 근로정신대 피해자 일곱 분 총 열 분의 할머니가 쏟아낸 증언과 당시상황을 조명했다.

일본정부는 일본 극우단체 시민들의 목소리 뒤에 숨어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듯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가운데, 할머니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가슴에 파묻었던 고통의 기억을 아프게 깨워냈다. 베테랑 연기자들의 활약으로 생생하게 조명했다. 배정길 할머니 역의 배우 김해숙을 비롯해 박순녀, 서귀순, 이옥주 할머니 역을 맡은 배우 예수정, 문숙, 이용녀는 10대 여린 소녀들이 어떻게 유린되었는지 신랄하게 보여주었다.

6년간 끈질기게 재판을 이끈 부산의 여행사 사장 문정숙 역을 맡은 김희애는 ‘왜 그렇게 위안부 문제에 매달리느냐’고 캐묻는 지인에게 “부끄러워서 그러지. 그런 것도 모르고 나 혼자 잘 먹고 잘산 게 너무너무 쪽팔려서 그런다.”고 외친다.

실제 1991년 8월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이름을 밝히고 위안부 피해를 증언하기 전까지 우리 사회에서 위안부 피해사실은 공론화되지 못했다. 할머니들은 인간의 존엄성이 말살된 지옥에서 살아서 돌아왔으나 가족이나 친척, 이웃에게 부끄러운 얼룩처럼 숨겨지고 외면되었다.

영화에서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이후 끓는 냄비처럼 ‘위안부 피해 신고센터’를 세우고 앞장섰던 사업가들도 일본 관광과 일본 무역에 의존하던 현실에 쫓기자 그만하자고 요구한다. 또 “할머니들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어디 나서느냐”며 막말하는 택시기사는 그 시대의 비틀린 차별의식을 대변한다.

이런 일이 우리 역사에 그 전에도 있었다. 병자호란 당시 나라의 힘이 없어 포로로 끌려가 청나라에서 능욕을 당하고 돌아온 여인들에게 환향녀(還鄕女)라는 굴레를 씌우고 이에 검은 칠을 하여 사회에서 분리시켰다. 마치 스스로 지은 죄인 듯 환향녀는 성적으로 문란한 여인을 가리키는 욕설로 변질되었다.

영화 초반 할머니들도 아픈 기억을 혼자 감당하고 주변의 멸시가 두려워 그 고통이 마치 자신의 잘못인양 숨긴다. 그러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굴레를 벗고 당당하게 일본정부에 죄를 물으면서 먼저 자기 자신과 화해를 한다. 그리고 세상에 설 용기를 갖는 모습은 이 영화가 주는 또 하나의 감동이다.

영화 '허스토리'는 연대와 공감, 지지를 통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세상에 당당하게 서게된 관부재판을 다뤘다. [사진=제작사 수필름 공식 페이스북]
영화 '허스토리'는 연대와 공감, 지지를 통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세상에 당당하게 서게된 관부재판 과정을 다뤘다. [사진=제작사 수필름 공식 페이스북]

영화가 다룬 관부재판은 매우 의미 있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일본 사법부가 사상 최초로 위안부에 대한 성적 강제로 인한 피해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원폭관련 재판을 제외한 전후보상 재판 중 최초의 승소판결이다.

다만 재판부는 여성차별, 민족차별로 피해를 방치하는 것이 일본 헌정질서에 허용하기 어려운 방치상황임을 인정하면서도 피해자에 대해 각 30만 엔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데 그쳤다. 그리고 사죄와 보상에 대한 일본정부의 입법의무의 존재는 명백하지 않다며 일부승소판결을 내렸다.

이후 판결은 1998년 5월 원고와 피고가 모두 히로시마 고등재판소에 항소하여 2001년 3월 29일 원고인 위안부피해 할머니와 근로정신대 할머니 측의 역전 패소라는 부당한 판결이 나왔고, 2001년 4월 최고재판소에 상고한 결과, 일본 사법재판소에서 다루어질 만한 문제가 아니라며 사법부 의견으로 2003년 3월 25일 확정하였다.

할머니들은 아직 진정한 사죄와 정당한 배상이라는 승리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나 반인륜범죄에 대해 눈 감지 않는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의 연대와 젊은 세대의 공감과 지지를 통해 잊히지 않는 역사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