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이 되면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최근 이러한 기념일들은 다양한 볼거리와 문화공연, 이벤트성 행사, 선물 등으로 채워지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성 상품으로 변질되어 가는 듯하다. 어쩌면 일 년에 한 번 이렇게라도 선물과 행사를 통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가족애를 생각하라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사실 가족은 외식과 선물, 일회성 또는 단발성 행사로만 치르기에는 그 속내가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다. 따라서 기념일 또는 이벤트성 단순행사만 강조한다면 가족이라는 틀, 말하자면 겉으로 드러난 형식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여 그 내용은 간과할 오류를 낳을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평온하고 조용한 가족일지라도 막상 뚜껑을 열고 보면 결코 편안한 가족이 없는 게 현실이다.

오화영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오화영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한동안 ‘자녀의 성공을 위한 세 가지 조건’이 회자한 적이 있다. 첫째, 엄마의 정보력, 둘째, 아빠의 무관심, 셋째, 할아버지의 재력이라는 웃지 못 할 이 조건은 우리 사회 가족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할아버지의 재력’은 여기서 굳이 논하지 않겠다. 가장 중요한 부모의 역할, 자녀의 역할은 우리 사회 부부관계, 부모-자녀 관계가 심각하게 파편화되어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비영리단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최근 전국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 학생 571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생들이 하루 중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13분(0.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 자식 간 또는 형제, 자매간 일상에서 대화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비정상적으로 과열된 교육열은 자녀에게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한국 어린이와 청소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 가장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발표한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국제비교 연구’(2016년) 보고서를 보면 한국 어린이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82점으로 조사 대상인 OECD 회원국 22개국 중 가장 낮았다. 문제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도 기회도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자녀 입장에서 볼 때 공부하라고 등 떠미는 부모는 있되 자신의 고민을 함께 나눌 부모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라 하겠다.

부부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5년 가족 실태 조사에 따르면 하루 평균 부부 간 의사소통 시간 ‘1시간미만’이 전체 응답자의 65.4%로 나타났다. 지난 2010년 조사와 비교했을 때 부부 관계 만족비율은 낮아지고 불만족 비율이 높아진 것으로 조사되었다. 의사소통 만족도가 높을 수 록 전반적인 부부관계 만족도가 높게 나타난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제 가족 간의 소통을 스마트폰이 대신하는 듯싶다. 얼마 전 한 식당 모임에서였다. 옆 테이블에는 한 가족이 앉았는데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자신들만의 네트워크에 빠져있었다. 함께 살지만 매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과 대화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하면서도 막상 시간이 주어졌을 때조차 각자의 세계에 몰두한다는 건 그만큼 평소 가족 간 소통하는 연습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원래 친밀한 사이에서는 이야기꺼리가 무궁무진하기 마련이다. 어쩌면 가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친밀한 관계는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소한 수다를 떨기에는 형식적인 관계에 머무르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정반대로 사소한 수다 대신 깊은 주제를 놓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가족 간에 가슴을 터놓고 속 깊은 대화를 하는 게 얼마나 가능할까?

가족은 낯선 환경에서 성장한 남녀 성인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게다가 한국사회에서 가족은 단순히 일대일 개인의 만남이 아니다. 가족과 가족의 만남이다. 따라서 현재 부부 간의 소통 상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혹시라도 얽혀 있는 매듭이 있는지 확인하고 화합하여 매듭을 풀어야 할 것이다. 또한 가족구성원이 특히 부부가 서로의 성장을 위한 토대가 되고 거름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는지 현재 그렇게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는 부부 자신을 위해서 뿐 아니라 자녀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녀입장에서 볼 때 부모는 생애에서 처음 마주하는 스승이자 인생 선배이다. 자녀는 부모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인생의 중심 가치로 삼아야 할지 은연중에 배우게 된다. 그 때문에 부모는 현재 가정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보다 앞서 자신이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인생철학을 깊이 고민하고 성찰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가령 부모가 자신의 삶에서 몸소 타인을 배려하고 홍익을 실천하는 ‘성숙한 어른’으로서의 모습을 보인다면 자녀 역시 극단적인 이기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홍익의 삶을 은연중에 실천할 것이다.

정부는 현재 가족이 안고 있는 여러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안으로 지난 2005년 ‘건강가정기본법’을 제정하고 5년 단위로 ‘건강가정기본계획’을 수립해 왔다.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 정의에 따르면 "건강가정"이라 함은 가족구성원의 욕구가 충족되고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가정을 말한다.

이에 덧붙여 필자는 건강 가정이야말로 가족 간에 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이 있는 가정이라 생각된다. 사회의 기본단위를 가족이라고 한다면 가족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느냐에 따라 사회의 모습은 달라질 것이다. 결국, 어떤 가정을 만드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관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