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리역사바로알기는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호국역사탐방’으로 5월 12일(토) 서울 탑골공원과 월남 이상재 선생 동상이 있는 종묘 공원을 다녀왔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도 인원이 많이 참석하여 호국역사탐방의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호국역사탐방은 서울지방보훈처 후원 2018현충시설활성화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호국역사탐방은 탑골공원에서 시작했다.

(사)우리역사바로알기는 12일 호국역사탐방으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답사했다. 탑골공원에는 삼일운동기념 부조가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사)우리역사바로알기는 12일 호국역사탐방으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답사했다. 탑골공원에는 삼일운동기념 부조가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우리나라 최초의 공원인 탑골공원은 삼일운동 당시 만세 함성이 처음 시작된 곳으로 그 역사적 의의가 크다. 시민과 학생들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팔각정이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탑골공원내의 3.1운동 기념탑에는 독립선언문을 새겼고, 양 옆 석판에는 당시 독립선언문을 읽는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탑골공원에 들어서면 정면에 독립운동가이자 동학과 천도교 지도자인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이 서있다. 손병희 선생은 민족종교인 동학의 3대 교주로 취임하여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발전시켜 동학을 천도교로 개명하였다. 그 후 출판사인 보성사를 세우고 보성학원을 인수하여 교육문화사업을 통해 민족의식을 향상하는 데 힘썼다. 이러한 지속적인 활동을 바탕으로 천도교는 3.1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고 기독교계와 학생들과 협력하고 불교계 인사와 함께 대규모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손병희 선생은 1919년 3월 1일 종로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한 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감옥에서 병을 얻은 선생은 1920년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922년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12일 시행한 호국역사탐방 참가자들이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12일 시행한 호국역사탐방 참가자들이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여러분, 여기를 왜 탑골이라 한 줄 알아요?" "잘 몰라요." 우리역사바로알기 강사가 현장 설명을 한다.
탑골공원은 고려시대 흥복사가 있던 곳으로 조선 세조 때 중건하여 원각사라 하였다. 원각사가 있던 자리에는 원각사지 10층 석탑과 원각사비만 남아 이때부터 이 지역을 ‘탑골’로 부르게 되었다.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국보 제2호로 지정되었다. 이 석탑은 1467년(세조 13년)에 세웠는데,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가 화강암인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탑 구석구석에 표현된 화려한 조각이 대리석의 회백색과 잘 어울려 더욱 아름다우며 표현장식이 풍부해 훌륭한 걸작으로 손꼽힌다.

종묘 앞 공원에 세운 월남 이상재 선생의 동상이 현충시설로 지정되어 있다. 이상재 선생은 1896년 서재필 등과 독립협회를 창립하고, 만민공동회를 이끌었다. 1907년 고종의 부탁으로 네덜란드 헤이그 특사 파견을 준비하다가 구속되기도 하였다. 이후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 회장과 조선교육협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항일 독립 운동에 헌신했다. 몇 차례나 계속된 투옥에도 일제에 맞서 민족교육운동을 폈다. 1927년에는 이념을 초월해 민족 단결을 목표로 한 신간회 회장에 고령이었으나 취임하여 민중을 위한 사회운동가로 마지막 직임을 다하였다. 그의 장례는 처음으로 ‘사회장’이라는 이름하에 서울에서 치러졌고 추모객 10만이 운집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종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인류무형유산, 기록유산에 등재되어 3대 그랜드슬램의 쾌거를 이루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종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인류무형유산, 기록유산에 등재되어 3대 그랜드슬램의 쾌거를 이루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빗속에 방문한 종묘는 평소보다 더욱 장엄함이 느껴졌다. 종묘의 중심 건물인 정전은 그 길이가 101미터로 우리나라 단일 목조건물로는 가장 길고, 반복적인 구조에서 오는 웅장함이 압권이다. 특히 처마에서 아래의 월대와 박석으로 떨어져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빗줄기가 장관을 이루었다.

종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으로 그곳에서 치렀던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 또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2017년에는 종묘 신실에 봉안된 어보와 어책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면서 종묘는 건물, 제례, 소장품이 유네스코 3대 세계유산 목록에 모두 오르며 역사상 처음으로 3대 세계유산 그랜드슬램의 쾌거를 이루었다. 이토록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을 전 세계와 함께 보존하고 그 속에 담긴 정신을 알려야 할 것이다.

종묘 정전. 월대에 떨어지는 빗줄기가 고요함을 더욱 느끼게 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종묘 정전. 월대에 떨어지는 빗줄기가 고요함을 더욱 느끼게 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세계사적으로 제국주의에 대항한 최초의 범민족적, 범종교적, 평화 운동인 3.1운동.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독립만세의 첫 함성이 울려 퍼진 탑골공원! 그날 이후 1년여 넘게 전국방방곡곡, 해외까지 우리 민족의 독립만세운동이 펼쳐졌고 민중의 뜻을 확인한 지도자들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게 되었다.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호국역사탐방’으로  12일 탑골공원과 월남 이상재 선생 동상이 있는 종묘공원을 답사했다. 참가자들이 이상재 선생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호국역사탐방’으로 12일 탑골공원과 월남 이상재 선생 동상이 있는 종묘공원을 답사했다. 참가자들이 이상재 선생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내년 2019년이면 3.1운동이 100주년을 맞게 된다. 우리 민족 한명 한명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내 나라를 찾고자 했던 노력과 나라사랑의 마음을 잊지 말고 우리나라를 시작으로 한 평화정신이 남북한 통일로 이어지고 세계평화에 기여하여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뜻이 펼쳐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