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수천 년 동안 지혜를 갈망해왔다. 고대의 작가들은 격언집과 우화집 속에 지혜를 담아두려고 애썼고, 현대의 학자들은 그 속에 담긴 지혜의 정수를 밝혀내려고 애쓴다. 장소와 방법은 달라도 인류는 줄곧 지혜를 추구해왔다.

영국 컴브리아 대학의 철학교수이자 세계적인 지혜연구의 권위자인 트레버 커노가 쓴 ‘지혜의 역사’(정연우 옮김, 한문화)는 지혜의 세계로 들어가는 안내서로서, 인류의 역사 속에 드러난 다채로운 형태의 지혜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런데 문제는 지혜가 무엇인지 합의된 정의가 없다는 것이다. 무엇이 지혜인가. 그래서 저자는 지혜는 ‘사람’에 관한 것으로 본다. 지혜는 지혜로운 사람에게 발현되고 비롯한다. 지혜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평가받은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저자가 이 책에 많은 사람을 등장시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신성함 속에 지혜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신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것을 감안하여 저자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고 지혜를 대하는 태도를 중심으로 다루기도 하고,  때로는 두 가지를 모두 논하기도 한다.

1장에서 저자는 신과 관련하여 지혜를 살핀다. 힌두교의 사라스바티와 가네샤, 고대 이집트의 토트와 이시스, 고대 그리스의 아폴로, 메티스, 아테나, 북유럽의 오딘과 오그마, 불교의 문수보살과 도교의 후코로쿠주, 조로아스터교의 오르마즈드, 유대교와 기독교의 사람으로 묘사된 지혜를 두루 살핀다. 지혜라는 관점으로 지혜의 신을 보면 새로운 모습이 드러난다.

다음으로 신화와 전설 속의 지혜에서는 신들의 세계가 끝나고 인간의 세상이 되면서 지혜가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발현하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는 고대 중국의 팔선과 오제, 로마의 일곱 현인, 성경에 나오는 동방박사 세 사람,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문화영웅과 트릭스터, 인도의 현자 리시, 지혜의 요소를 모두 갖춘 에녹, 삼대에 걸친 지혜 티레시아스, 만토, 몹소스를 소개한다.

3장 역사 속의 지혜에는 솔로몬, 고대 그리스의 일곱 현자, 유럽의 열 명의 지혜로운 통치자, 중국의 죽림칠현, 수피즘의 다섯 현자, 현대 인도의 위대한 두 현자 등이 등장한다.

지혜는 문학의 형태로 발현된다. 우파니샤드, 반야경, 교훈문학, 성경 그리고 우화와 동화와 비유담은 지혜를 담고 있다. 저자는 또 점술을 지혜와 관련하여 살핀다. 점술은 지혜와 연관이 있는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신성한 존재에게서 받은 메시지를 고민하거나,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작동하는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려 하는 모든 자는 지혜의 세계에 들어 있는 것이다.”

트레버 커노 지음, 지혜의 역사.[사진=한문화]
트레버 커노 지음, 지혜의 역사.[사진=한문화]

 

철학과 지혜(6장)에서는 여러 시대와 문화권의 철학을 살펴봄으로써 지혜를 보는 관점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보여준다. 신비주의, 마법과 지혜를 다룬 장(7장)에 오면 지혜라는 것이 얼마나 방대한 영역에 걸쳐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저자는 속담과 지혜를 살펴보고 오늘날의 지혜를 다룬다.

오늘날 지혜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현대에 이르러서는 지혜 연구 프로젝트인 ‘베를린 위즈덤 패러다임’에서 내린 지혜에 관한 정의가 가장 영향력이 있다. 이 패러다임은 지혜의 핵심 요소로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삶에 관한 풍부한 사실적 지식, 삶에 관한 풍부한 절차적 지식, 인생 여정에 관한 맥락주의, 삶의 가치와 우선순위에 관한 상대주의, 불확실성에 관한 인식과 관리’가 그것이다. 이것은 ‘지혜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이자 ‘어떻게 지혜를 판별하는가?’에 관한 지침도 된다. 이 정의에 맞는 지혜로운 자라고 하면 ‘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잘 알고 있거나 불확실한 일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며,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행동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베를린 위즈덤 패러다임의 결론은 주로 감정적 측면이 결여되었다는 이유로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그 중 모니카 아델트는 지혜를 인지적, 반성적, 정서적 차원의 세 가지로 재단하는 ‘3차원 지혜 측정법’을 제시했다. 인지적 차원은 베를린 위즈덤 패러다임에서 제시한 정의와 거의 비슷하고, 반성적 차원은 자기반성과 자각 능력을 뜻하며, 정서적 차원에는 타인을 향한 감정이 포함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지혜를 측정하는 도구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캐롤린 알드윈은 ‘지혜는 자기인식, 집착 버리기, 동화, 자기초월, 자기중심에서 벗어나는 과정 등에서 획득되는 사고력이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는데, 과학보다는 철학, 심리학, 신비주의적 전통에 좀더 많은 영향을 받은 연구였다. 2008년, 알드윈과 아델트를 위시한 여러 학자들이 지혜에 관한 다양한 사상적 줄기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정의를 도출하고자 했는데, 그 결과물은 이러하다.

“지혜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인 동시에 개인이 자기인식과, 자아통합과, 집착 버리기와, 자기초월과, 타인에 대한 연민을 증가시켜가는 발전적 과정에 있음을 드러내는 실천이다. 이 실천에는 좀 더 향상된 자기관리와 바람직한 윤리적 선택이 수반되며, 결과적으로도 자신과 타인에게 훨씬 이롭다.”

물론 이 정의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말한 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등장하여 지혜가 무엇인지, 지혜로운 사람이 누구인지 설명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책은 지혜의 역사를 마치 만화경으로 들여다보듯이 탐구했다. 신화와 전설, 역사, 문학, 점술, 철학, 신비주의, 마법, 속담 등 지혜와 연관된 여러 장르를 고찰하고 고대 이집트, 중세 유럽, 현대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와 문화권의 지혜를 탐사했다. 지혜의 여러 가지 측면을 수많은 역사적 관점과 주제에 따라 탐색하고 조사한 역작이다. 덕분에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쉽게 읽으며 질리지 않는다.

특히 시대를 초월해 지혜를 전달하는 수단인 속담과 격언에 큰 관심을 보인 저자는, 일상생활 속에서 지혜를 찾는 독자를 위해 유익한 속담 100선을 책의 말미에 제공한다. 이 속담들은 지혜로운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모습을 알기 쉽게 보여준다. 또한 ‘지혜란 무엇이며, 어떻게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결코 포착하기 쉽지 않은 지혜라는 대상을 인류는 어떻게 탐구해왔을까?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