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리역사바로알기는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호국역사탐방’으로 4월 21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독립공원을 다녀왔다. 서울지방보훈처 후원 2018현충시설활성화사업의 일환으로 시작한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한 호국역사탐방'의  첫 방문지였다.

대일항쟁기 독립운동의 처절한 현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장소로 학생과 학부모 199명이 참가하여 어느 때보다 열기가 뜨거웠다. 자녀와 함께 온 학부모도 독립운동의 역사를 열심히 배웠다. 학부모와 학생을 별도로 하여 해설을 하고, 학생들도 학년별로 조를 편성하여 눈높이에 맞는 해설을 진행하였다.

(사)우리역사바로알기 프로그램에 참석해 학생들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대해 진지하게 해설을 듣고 있다.
(사)우리역사바로알기의 호국역사탐방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들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진지하게 해설을 듣고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참가자들은 나라를 빼앗기게 된 과정과 당시 세계정세를 보고 들으며 울분을 느꼈고,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나라를 지키고자 일어섰던 의병들의 이야기에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누구보다 먼저 일어난 우리 민족의 힘과 주인의식을 배울 수 있었다.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고자 하셨던 많은 의사들.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용기와 나라사랑하는 마음에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특히 서대문형무소에서 최고령으로 순국하신 강우규 의사. 그 분이 아들에게 전한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애비 죽었다고 슬퍼하지 마라. 이 나이 먹도록 나라를 위해서 한 일이 없음이 오히려 부끄럽다. 조선의 청년들이 나의 모습을 보고 조금이라도 깨어나기를 바란다.”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4월 21일 시행한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호국역사탐방’ 참가자들이 서대문형무소 옥사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4월 21일 시행한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호국역사탐방’ 참가자들이 서대문형무소 옥사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넓은 방을 가득 매운 수형기록표. 유관순, 한용운 등의 아는 분도 계셨지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이 고통스러운 형무소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셨다니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수감 전 사진과 수감 후 사진을 보면서 몇 년 사이에 몰라볼 정도로 야윈 모습에서 수형 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교수형틀을 재현하여 전시한 곳에는 들어가기가 꺼려질 정도로 끔찍했다.

지하 고문실에서는 물고문, 손톱 찌르기 고문, 못 상자 고문, 벽관 고문 등 상상하기도 싫은 각종 고문실들이 있어 일제의 만행에 치를 떨게 했다. 조선시대 명문가였던 우당 이회영 일가. 지금 돈으로 800억 원에 달하는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쳤던 이회영의 아들 이규창 선생이 고문 받던 이야기를 들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는지 존경스럽다.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4월 21일 시행한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호국역사탐방’ 참가자들이 서대문형무소 옥사의 좁은 감방에서 해설을 듣고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4월 21일 시행한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호국역사탐방’ 참가자들이 서대문형무소 옥사의 좁은 감방에서 해설을 듣고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감옥이 있는 중앙사로 향하여 감방 안에 학생들이 다 들어가 보았다. 20명이 되지 않는 학생들이 빙 둘러섰더니 꽉 찬 방. 이 작은 방에 40명이 갇혀 있었다는 이야기에 아이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했다. 누울 자리가 없어서 쪼그려 앉아서 잠을 잤고 동지들의 체온과 몸에서 나는 냄새에 고통스러워했다는 설명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고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체험하고 해설을 들은 후 바깥으로 나오니 커다란 태극기가 벽에 걸려있다. 이전에 보던 태극기와는 달리 가슴에 뜨거운 무언가가 솟아오르는 느낌이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던 독립운동가들의 한 서린 모습을 지켜봤을 통곡의 미루나무를 지나 사적 제324호로 지정된 사형장에 들어섰다.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 으스스한 기운이 머리를 쭈뼛 서게 만들었다. 산으로 나 있는 시구문을 보면서 온 몸이 고문으로 상한 독립운동가의 시신, 사랑하는 가족에게 인도되지 못한 그 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고 울분이 치솟는다.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4월 21일 시행한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호국역사탐방’ 에참가한 학부모들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해설을 듣고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4월 21일 시행한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호국역사탐방’ 에 참가한 학부모들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해설을 듣고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나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들른 여옥사는 더욱 좁은 감방이었다. 유관순 열사가 갇혀 있었던 지하 감방은 도저히 인간이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어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밖에는 독립공원에는 현충시설인 3·1독립선언 기념탑과 독립관이 있다. 3·1독립선언기념탑에서 세계사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3·1독립운동을 알아보고 독립관에 모신 위패 앞에서 묵념을 올렸다.

탐방을 마치고 소감문을 썼다. 학생들뿐 아니라 학부모들의 정성어린 소감문에 모두 다시 한 번 감동했다. 초등학교 자녀와 함께 참석한 학부모 이병훈 씨는 소감문에서 “독립운동가를 가두고 고문하던 현장을 보면서 현재의 풍요를 그 분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있을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전향을 하면 쉽게 풀려날 수 있었지만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분들에게 정말 경외심과 존경심이 진심으로 들었다.” 라고 심정을 밝혔다.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4월 21일 개최한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호국역사탐방’에  학생과 학부모 199명이 참가하여 어느 때보다 열기가 뜨거웠다.[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4월 21일 개최한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호국역사탐방’에 학생과 학부모 199명이 참가하여 어느 때보다 열기가 뜨거웠다.[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초등학교 1학년 조민경 학생은 “저는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정말 존경합니다. 일본인들은 잊고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그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도 커서 꼭꼭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소감문을 남겼다.

이런 다짐이 모여 더욱 좋은 나라, 다시는 아픔이 없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