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던 제주, 올레길이 생기며 건강의 섬이 되었다. 여기에 명상을 더하여 힐링의 섬, 평화의 섬이 되고 있다. 지난 10일과 11일 제주에서 명상여행을 하며 제주가 지닌 힐링의 힘을 온 몸으로 체험했다.

제주에 도착하여 10일 오후 먼저 간 곳은 애월읍 애월리, 속칭 한담마을에서 곽지해수욕장 1,200미터 구간 해안선을 따라 만든 산책로였다. 이 지역은 해안경치가 뛰어나고 특히 일몰시 해안선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날 명상여행은 제주무병장수테마파크의 명상전문가가 안내해주었다.

한담마을 쪽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사람들이 카약을 탔는 게 눈에 들어왔다. 구명조끼를 입고 많은 사람이 7개의 카약에 나눠 타고 물을 저어 앞으로 나갔다. 파도는 높게 일지 않았다. 카약을 보니 뉴질랜드 하루루폭포에서의 카약명상이 생각났다. 물과 하나가 되어 자연을 온전히 느끼는 명상.  하루루폭포 카약명상은 얼마 전 KBS1 ‘세계건강기행’ 뉴질랜드 편에 소개된 바 있다. 뉴질랜드 카약명상을 생각하니, 몸과 마음이 명상 상태에 바로 들어가 놀랐다. 아마 바다에서 카약을 타는 사람들은 명상한다는 생각을 못 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바닷물의 움직임에 따라 바닷물과 함께 움직이는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물아일체가 된 느낌이 들었다. 애월리 한담동에서 곽지과물해변의 산책로를 따라 간다.

애월읍 애월리  한담마을에서 곽지해수욕장까지 해안선을 따라 만든 산책로는 해안경치가 뛰어나고 특히 일몰시 해안선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또한 명상하기 좋은 여건을 잘 갖춘 곳이다. [사진=정유철 기자]
애월읍 애월리 한담마을에서 곽지해수욕장까지 해안선을 따라 만든 산책로는 해안경치가 뛰어나고 특히 일몰시 해안선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또한 명상하기 좋은 여건을 잘 갖춘 곳이다. [사진=정유철 기자]

 산책로에 들어서니 바다 냄새가 뇌를 강하게 자극했다. 그 냄새가 생각과 감정을 싹 씻어, 일순 머리가 시원해졌다. 밀려와 바위에 부딪치면서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포말로 사라지는 하얀 파도를 바라보니 뇌 속이 씻어지는 듯했다.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 여기에 바다에서 오는 수기(水氣)에 싸여 그 기운을 느끼고 호흡하였다. 숲에서 걸음명상을 할 때와는 또 다른 명상이었다. 이 해변 산책길의 명상은 오감 중에서도 시각과 후각, 촉각을 강하게 자극한다. 수평선이 아득한 바다는 의식을 확장하였고, 후각은 생각과 감정을 사라지게 했다. 따뜻한 봄기운은 추위에 떨던 몸과 마음을 녹여주었다. 이로써 몸과 마음이 일상에서 벗어났고, 무념무상의 상태에 젖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늘과 바다, 땅과 하나가 되었다. 자연과 나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였다. 그것이 나의 실체였다. 자연.

해변산책로를 따라 걸는 동안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부서지는 하얀 파도를 바라보면  내 안에 있는 것을 비워내게 된다. [사진=정유철 기자]
해변산책로를 따라 걸는 동안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부서지는 하얀 파도를 바라보면 내 안에 있는 것을 비워내게 된다. [사진=정유철 기자]

 

“우리의 생명은 하늘에서 왔고 땅에서 왔다. 우리는 숨을 통해서 하늘의 공기를 마시고, 음식을 통해서 땅의 영양분을 먹는다. 하늘과 땅은 이 지구의 모든 생명을 키우는 천지 부모이다. 우리는 하늘과 땅에 뿌리를 박고 피어난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다. 마치 음극과 양극이 만나 밝은 불빛을 만들어내듯이 우리의 생명은 천지간의 합작으로 환히 피어나 있다. 내가 나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천지가 함께 창조한 생명이 나를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다.”

오기 전 읽었던 《타오, 나를 찾아가는 깨달음의 여행》(일지 이승헌 지음, 한문화)의 이 구절을 제주에서 실감했다. 글로 알았던 천지 부모를 해변길을 걸으며 체험했다. 해변에 이어진 기암괴석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수년 동안 우리를 기다려준 듯했다. 사람들은 바위 모양에 따라 이름을 붙여주었다. 고양이바위, 창문바위, 아기공룡……. 왼쪽 언덕으로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나온 새싹이 그렇게 반갑고 기쁠 수가 없었다. 아아! 여기에도 생명이 피어나는구나!

명상을 하며 걷는 동안 해변에 이어진 기암괴석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수년 동안 우리를 기다려준 듯했다. [사진=정유철 기자]
명상을 하며 걷는 동안 해변에 이어진 기암괴석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수년 동안 우리를 기다려준 듯했다. [사진=정유철 기자]

중간에 걸음걸이가 지체되자 저 건너편 곽지해수욕장 쪽이 모래톱도 좋고 더 아름답다고 안내하는 이는 재촉한다. 더 아름답고 덜 아름다운 곳이 어디 있으랴! 모두 다 아름다운 것을.

‘신선명상지’라는 푯말이 눈길을 끌었다. “이 언덕에 앉아 차디찬 이슬 구르는 천연의 소리를 유유하게 들을 수 있는 당신 또한 신선이라. 사진·글 명광윤” 차디찬 이슬 구르는 천연의 소리. 차디찬 이슬은 없지만 제주의 하늘과 땅, 바다와 바람이 내는 소리를 듣는다. 거울 바위에서는 마음을 본다. “네 발자국 물러서서 거울을 보시면 내 안의 마음을 비춰 볼 수 있으니-” (사진·글 명광윤) 명상여행이 아니라면 예사로 보아 넘길 글이 마음 깊이 와 닿는다. 명상은 비워내는 것이다. 비워내고 또 비워낸 후 거울에 비춰보면 무엇이 보일까. 거울에 비칠 내 마음을 상상하며 다시 걷는다.

곽지해수욕장 모래톱은 제법 넓었고 봄을 맞은 모래톱은 눈이 부셨다. 사람들은 모래밭을 걸으며 바닷물에 손을 담근다. 어린애들처럼 펄쩍 뛰며 사진을 찍는다. 모두 얼굴에 웃음이 활짝 피었다. 안내하는 이는 발길을 재촉하지만, 쉽게 떠나려 하지 않는다.

봄을 맞은 제주 곽지해수욕장에서 명상단이 모래톱을 거닐고 있다. [사진=정유철 기자]
봄을 맞은 제주 곽지해수욕장에서 명상단이 모래톱을 거닐고 있다. [사진=정유철 기자]

 

그동안 제주에 수차례 왔고, 올레길도 걸었지만, 이렇게 명상을 한 적은 없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이곳 해안 산책로가 완벽한 명상로라는 느낌이 강해졌다. 나만 그런 느낌인가 했더니, 명상단으로 함께 온 이들도 나중에 같은 느낌을 이야기했다.

곽지과물해변의 산책로에서 같은 길을 걸어도 어떤 목적으로 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데이트 코스로 보면 데이트 코스, 건강 산책로로 보면 건강 산책로, 풍광을 구경하는 길로 보면 풍광 구경길이 될 것이다. 명상코스로 선택하여 걸으니, 걷는 순간순간이 모두 명상이었다. 몸과 마음에 욕망이 쌓일 때 제주를 찾을 일이다. 모든 것을 비워내고 하늘과 땅과 하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