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은 우리나라에 관련된 학문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로서, 다른 나라의 학문과 구별되는 정체성과 독창성을 존립기반으로 한다.

국학과 사실상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1930년대에 사용되었던 ‘조선학’이란 용어가 있는데, 이는 광의적으로 ‘온갖 방면으로 조선을 연구 탐색하는 것’으로, 협의적으로는 ‘조선의 고유한 것, 조선 문화의 특색, 조선의 독자적인 전통을 천명하여 학문적으로 체계화하자는 것’ 또는 ‘유불학과 대립하는 조선 고유의 것’ 등으로 당시의 여러 학자에 의해 정의되었던 바 있다.

김광린 국제뇌교육대학원대학교 교수
김광린 국제뇌교육대학원대학교 교수

사전적인 의미로 국학은 외국문화에 대한 자국의 고유한 역사, 언어, 풍속, 종교, 문학, 제도 등 민족문화 전반을 연구하는 학문분야이다. 국학과 한국학을 동일한 뜻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일부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국학이란 엄밀히 말하자면 외래문화가 전해지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우리의 민족문화를 연구하는 것을 가리키는 데 반해서, 한국학이란 엄밀한 의미의 국학을 포함하여 외국으로부터 전해져서 우리나라의 것으로 화한 것까지를 모두 포함하여 연구하는 학문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엄정한 의미에서 국학의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 단군왕검의 고조선 및 그 이전의 시대인 상고의 역사, 그리고 한민족 고유의 선도 문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학의 근간을 이루는 단군과 상고시대, 그리고 선도와 관련된 자료와 문헌이 대부분 훼손 또는 유실되었다. 그나마 전해지고 있는 일정한 문헌 자료들은 서지학적인 이유로 이른바 주류학계로부터 홀대받고 있다. 하지만 서지학적 논쟁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헌은 국학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로서 가치를 지님은 물론이다.

한편 언어는 상대적으로 소멸 또는 말살되기 어려운 것이고, 따라서 우리 민족 고유의 언어인 한국어와 문자인 한글은 국학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 수 있다. 해방 전후의 시기 주요 정치지도자들 중 국학자로서 언어를 활용한 국학연구에 특출 난 위상을 지녔던 이가 민세 안재홍이다.

민세 안재홍은 연구방법에서 당시로서는 최신 인류학 이론이었던 모건(Morgan)의 고대사회이론을 활용하고, 또 비교언어학 및 문헌고증의 방법을 활용하여 단군, 단군의 건국과정, 그리고 한민족의 형성 등 한국 고대사는 물론 외래문화가 들어오기 이전의 한국 고유사상의 정립을 시도하였다.

국학자로서 민세는, 우리 고유의 말과 글인 한글을 중시하면서, 특유의 언어고증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선인들의 생활문화로부터 한민족 고유의 역사와 철학을 탐구, 이를 ‘조선정치철학’으로 정리해 냄은 물론, 이를 자신의 정치사상의 토대로 삼았다.

그의 연구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것 중의 하나는 숫자에 관한 우리말로부터 자신의 사상을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일(一)은 「한/하나」, 곧 「한울」로서 숫자의 으뜸 되는 시작이며, 큰 세계로서의 하늘(天)이며, 최대 곧 무궁대(無窮大)이다. 하나는 진리이고 따라서 두 개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니 유일함을 함축하며, 모든 것이 이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숫자를 셀 때 하나부터 시작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것이다.

이(二)는 「둘」, 즉 「들」로서, 현대어로는 벌판의 뜻이지만 옛적에는 들을 대지(大地)라 했다. 또한 현대어에서는 대지를「땋/땅」이라 하는데, 이는 아사달(阿斯達) 이래 달(達)에서 연원하였다는 것이다. 만물이 「닿」아서 존재하는 곳이 대지이고, 또 「들」이란 말은 들어옴의 뜻도 포함하고 있는데, 온갖 종(種)들이 대지에 깃들어 있음을 뜻한다.

삼(三)은 「세」 혹은 「셋」으로 씨 혹은 씨앗, 즉 종자이다. 한민족의 철학과 언어가 이와 같이 첫 번째에 하늘(천), 두 번째에 땅(지), 그리고 세 번째에 씨앗을 배치한 것은 논리적인 것으로서, 천지가 비록 장엄하다 해도 씨앗이 있어야 비로소 작용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씨앗 중에서도 특히 사람이 있음에 천지의 주인이 있게 되는 것인 바, ‘사람’은, 국가가 생기기 이전의 존재로 ‘사랑’이라는 유친어(類親語)가 존재하고 있듯이, 인류 대동의 세계주의적 이념을 내포하는 존재이다. 그에 따르면 일과 이와 삼, 이 세 가지는 우주 생성의 삼원(三元)이다.

사(四)는 「네」 혹은 「넷」이니, 「나」 또는 「나엇」, 즉 남 혹은 출생을 의미한다. 모든 존재의 출생은 나 자신의 의지, 곧 자아실현의 생명의욕과 더불어 시작되는 것이고, 집단적 자아로서의 「나라」는 「나」의 생활의식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한 민족의 생활협동체로서의 정신적 집결체이다. 집단적 자아로서의 「나라」 또한 자유를 지니며, 따라서 여러 「나라」들로 이뤄지는 세계는 국민자존의 세계라는 것이다.

오(五)는 「다섯」이니, 이는 「다사리」로서 섭리와 통치의 원리(치리, 治理)이다. 일(一)·이(二)·삼(三)의 우주생성의 삼원, 사(四)의 「나」와 「나라」의 출생 다음에, 오(五)의 「다사리」 이념이 오는 것은 순리에 부합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 그리고 나라가 구비되면 당연히 조화롭게 다스려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민족 고유의 풍류사상을 의미하는 「부루」의 접화군생이나 단군 건국시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대도(大道)를 선포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다사리」 이념의 표출이었고, 그 이후에도 제가회의나 화백 등 우리나라 역사에서 홍익을 바탕에 둔 여러 모습으로 표출되었다. 다사리라는 용어는 두 개의 의미를 포함하는데, 즉 만백성이 ‘다 사뢰다’, 즉 자유로이 의견을 개진한다는 의미, 그리고 그야말로 다스리다는 것이 그것이다.

육(六)은 「여섯」, 곧 「여어서」로, 이는 지속과 존속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여어서」는 시작도 끝도 없고, 위와 아래, 그리고 안과 밖이 없이 영원하고 무한히 창조하고 변화해 나가는 모습을 나타낸다. 오(五)의 「다사리」 이념 다음에 영원하고 무궁한 창조와 발전과 변화의 세계가 그 뒤를 잇고 있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이다.

육(六) 이후의 숫자 설명들은 생략한다. 이상의 소개만으로도 한글이 지닌 소중한 가치를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고유한 사상과 문화가 깃들어 있는 한글을 사랑하고 잘 가꾸는 일이 국학사랑 여러 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