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태평양 전쟁 개전과 같은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것은 ‘공기’이다. 정치·경제·사회·군사·문화 심지어 이불 속까지 파고들고 있는 강력하고 절대적인 공기의 지배·구속력이 일본을 조종하고 있다. 일본 사회의 이성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힘인 ‘공기’란 무엇인가?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의 《공기의 연구》(박용민 옮김, 헤이북스)는 이 ‘공기’를 파헤친다.

▲ '공기의 연구' 표지. <사진=헤이북스>

 

일본인론으로 이어령 전 장관이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일본인의 문화적 유전인자를 ‘집약’과 ‘축소’라는 주제어로 설명한 책이다. 일본론을 연구한 세계적인 고전이라 불리는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은 일본인의 양면성을 ‘손에는 아름다운 국화, 허리에는 차가운 칼을 찬 일본인’으로 규정하였다. 전자는 역사의 질곡을 함께해 온 가깝고도 먼 나라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있고, 후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국무부의 의뢰로 적국인 일본인의 국민성을 일본 답사도 없이 논문과 문헌만으로 조사했기에 두 책 모두 연구의 한계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일본론의 대가인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1977년에 집필한 이 책 《공기의 연구》는 일본 지식인 이 스스로를 들여다본 일본인론이자 일본 사회문화론이다. 4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일본론의 교과서로 사랑받는 명저이다. 세계적인 기업인 헤이Hay 컨설팅 그룹의 디렉터이자 비즈니스스쿨 교수로 활약하는 야마구치 슈 컨설턴트는 《읽는 대로 일이 된다 비즈니스맨을 위한 특화된 독서법》에서 비즈니스서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책 71권 가운데 한 권으로 《공기의 연구》를 꼽았다.

 

저자는 일본인들이 무형의 분위기에 집단적으로 지배당하는 일본 특유의 이유를 ‘공기’와 ‘물’이라는 수사적 표현으로 설명했다. 말하자면, 일본 사회와 조직은 논리적 이론이나 합리적 근거가 아닌 ‘공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지금도 일본 사회에서 일상용어로 자주 등장하는 ‘KY(구키 요메나이, 즉 공기를 못 읽는다)=눈치가 없다’라고 할 때의 ‘공기’를 최초로 명명한 사람이 바로 저자다.

 

저자는 일본인이 종종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비난은 있지만, 당시 회의 공기로는……”, “당시 회의장의 공기로 말하자면……”, “그 무렵 사회 전반의 공기를 모르면서 비판하면……”, “그 자리의 공기도 모르면서 잘난 체하지 마라”, “그 자리의 공기는 내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달랐다” 등등 온갖 경우에 뭔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공기’라고 말한다.

 

저자는 공기의 구속력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뤄진 국가적, 군사적 차원의 이슈들을 대상으로 설명한다. 전함 야마토의 출격 결정에 관여한 전문가들이 모두 무모하고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반대하지 못했던 모습이 ‘공기’의 지배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저자는 천황을 앞세운 공기가 정치·경제·사회·군사·문화 심지어 이불 속까지 파고들고 있음을 책 전반에 걸쳐 증명한다.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말하는 ‘공기’의 지배는 일본의 독특한 현상인가? 꼭 그런 건 아니다. 일본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모든 곳에서 분위기와 흐름 속에서 의사가 결정되고 집행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왜 일본을 공기론으로 설명하는가? 공기에 대한 일본인만이 가진 예민하고도 신속한 반응과 적응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강력하고 절대적인 공기의 지배·구속력 때문이다. 즉 일본인의 의사 결정은 뭔지 모를 ‘공기’에 지배당하고 있는데, 사람이 진짜 공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일본인들은 ‘공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공기’는 일본 사회에서의 대화와 논의에서는 누구나 그렇다고 느끼거나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것, 나아가 부정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에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굴레다. 때때로 그런 ‘공기’의 존재를 드러내면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견해도 나오기는 하지만, 저자가 이른바 ‘물을 끼얹는다’고 표현한 그와 같은 발언은 알맞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 오히려 그 자리의 ‘공기’을 강화하는 데 이용되는 경우가 많고, 모두 그러한 규탄이 두려워 그 자리의 공기에 속박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일본인은 통상의 논리적 판단의 기준과 공기적 판단의 기준이라는 일종의 이중 기준double standard에 근거하여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고 말한다. 보통 때는 논리적 판단의 기준에 따라 말하지만, 진정한 결단의 기초로 삼는 것은 ‘공기가 허락하지 않는다’는 공기적 판단 기준이다.

 

 "'공기'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매우 강력하고 거의 절대적인 지배력을 가진 '판단의 기준'으로, 저항하는 사람을 이단시하고 '공기거역죄'로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정도의 힘을 가진 초능력임이 분명하다."

 

저자가 정의한 일본인은 ‘상황을 임재감적으로 파악하여 역으로 상황에 지배됨으로써 움직이고, 이런 현상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런 상황이 닥쳐오리라는 것을 논리적, 체계적으로 논증하더라도 그 때문에 움직이지는 않지만, 순간적으로 상황에 대응할 줄 안다는 점에서는 천재적’이다. 마오쩌둥의 ‘대약진’이나 오일 쇼크로 인한 세제 소동 등을 예로 들면서 일본인은 ‘공기’의 지배를 받고 있는 동안 논리적 설득으로도 심적 태도를 바꾸지 않고, 말을 통한 과학적 논증이 무력하게 됨도 지적했다.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결정적 상대화의 세계, 모든 것을 대립 개념으로 파악하는 세계의 기본적 행동 방식을 조사한 다음 '공기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우선 공기를 대립 개념으로 파악하는 '공기pneuma의 상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공기’의 연구]에서는 임재감적 파악, 공기의 조성 등을 여러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물=통상성’의 연구]에서는 공기의 지배에 저항하는 ‘물을 끼얹는다’라는 방법, 즉 통상성과, 공기와 물의 관계를 보완하는 일본적 상황 논리와 상황 윤리에 관해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일본적 근본주의에 관하여]에서는 ‘현인신과 진화론이 공존하는 일본 사회의 모순’을 일본적 근본주의로 설명한다.

 

 

한국어판인 이 책에는 옮긴이가 192개나 되는 주석을 달아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저자가 자신만의 개념을 만들어 보통의 어휘에 그 독특한 의미를 덮어씌우면서 그에 관한 설명이 인색한 대목이 종종 나오고, 일본인이 아니면 잘 알 수 없는 인물·사건 등이 적지 않다. 옮긴이가 옮긴이가 일일이 자료를 조사하고 자문을 받아 한국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충실한 설명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