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북도 독도재단 김수희 연구협력부장.

전라남도 최남단 섬 중의 하나인 거문도 부근의 해류는 북쪽의 고흥과 여수가 아니라 동북쪽의 거제와 부산 방향으로 흐른다. 이 때문에 거문도의 어민들은 경상도의 남동 해안을 거쳐 동해의 울릉도와 독도로 가는데 유리하였다.  경상북도 독도재단 김수희 연구협력부장은 1800년대와 1900년대 초 거문도의 많은 어민들이 울릉도와 독도를 왕래했던 이면에는 바로 이러한 해류의 흐름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국립중앙도서관(관장 박주환)은 9월 22일 금요일 오후 2시 디지털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전라도 고흥과 거문도의 어민, 독도에 가다’라는 주제로 영토영해강연을 개최한다. 강연을 맡은 경상북도 독도재단 김수희 연구협력부장은  한국 어업 문화의 전문가로서 전라도의 고흥과 거문도의 어민들이 울릉도와 독도에 가게 된 과정을 지속적으로 연구해 왔다.
이번 강연에서는 조선시대 우리나라 어업 문화 전체의 특성을 살펴본다. 이어서 개항기에 일본어민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어업협정을 맺어가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우리나라 어업이 침탈당해 가는 과정을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라도의 고흥과 거문도의 어민들이 울릉도와 독도를 왕래하면서 독섬이란 이름을 붙이게 된 경로 및 증언을 제시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주변 수역은 세계 3대 어장의 하나로 수많은 물고기들이 서식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조상은 바다를 활용하였고 배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닷가 섬에서 많이 발견되는 선사 시대의 유물인 조개더미나 물고기 잡이에 쓰인 작살, 그물, 낚시 등에서 우리 조상들이 식생활을 해결하기 위해 물고기나 조개, 바다풀 등을 채취한 흔적을 보면 어업기술이 상당히 뛰어났고 활발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 정책적으로 바다에 나가는 것을 금한 때도 있었지만 우리 조상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이용해 왔다. 바다는 중국이나 일본 등 주변 여러 나라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식생활을 향상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서 우리민족처럼 소, 돼지 등의 육류와 생선 해초류 등의 수산물을 골고루 섭취하는 민족도 드물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의 바다는 식민의 바다로 변모하였다. 일본인들이 우리의 바다를 독점하고 어족을 남획하였다. 일본은 조선인은 조기나 명태를 좋아할 뿐 풍부한 어족자원을 방치한 열등 민족이라고 치부하였고 바다를 좋아하고 진취적 기상을 가진 일본인이 조선으로 진출해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일본 연구자들은 일본의 통치 결과 어민층이 형성되었고 일본식 어선이 보급되어 한국수산업이 성립되었다는 근대화론을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일본은 무주지 선점을 내세우며 독도를 ‘실효적지배’ 하였기 때문에 일본영토로 편입되었고 한국은 독도로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독도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국의 주장을 부정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정책상으로 동해상의 울릉도 독도도항을 금지했지만 어민들의 활동은 활발하였고 울릉도(독도) 진출은 끊이지 않았다. 우리 민족의 해양관은 일본과 다른 방향에서 발달하였고 바다를 삶의 일부로 생각하고 바다를 개척한 사실들을 살펴보면 결코 바다를 등한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한국어업 문화의 특성을 살펴보고 한국 어업 문화의 특성과 어민들의 활동을 통해 우리에게 투영된 바다의 모습을 살펴보기로 한다.

 

영토영해강연 참가는 13일 수요일부터 국립중앙도서관 누리집(http://www.nl.go.kr/)의 ‘공지사항’[행사안내]에서 직접 신청할 수 있다.

전화 문의: 02-590-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