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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리어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누구인가?"정유철 기자의 뉴질랜드 명상여행<11>소멸 위기에서 뉴질랜드 공용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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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6  00:18:24
정유철 기자  |  k-spirit@naver.com

 오클랜드 공항에서부터 뉴질랜드는 영어와 함께 다른 언어 표기가 눈에 띈다. 공공건물이나 장소에는 두 개의 문자를 볼 수 있다. 공용어인 영어와 마오리어이다.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에게는 문자가 없다. 대신 구전(口傳)에 의지하였다. 마오리는 뉴질랜드에 처음 온 쿠페(KUPE)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조상의 족보를 입에서 입으로 전하였다. 유럽인이 온 뒤에 마오리족 추장이 부족의 토지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하여 뉴질랜드 토지 위원회 앞에서 3일 동안 자신의 34명의 직계 조상들과 그 조상들의 방계 친척과 배우자들까지 합해 1400여 명에 이르는 조상들의 이름을 완벽하게 암송하였다는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19세기 초 뉴질랜드에 온 유럽의 선교사들은 알파벳을 이용하여 마오리어를 기록하였다. 1814년 첫 시도를 하였고 다음해에 토마스 켄달의 'A korao(korero) no New Zealand'라는 마오어로 된 첫 책이 발간되었다. 마오리어는 다섯 개의 모음과 여덟 개의 자음, 두 개의 별개 자음을 포함하여 열다섯 개의 글자로 표기한다. 마오리어를  테레오 마오리(Te reo Māori)라고 한다. 

 

 케리케리의 거리에서 마주치는 마오리어를 소리 내어 읽어보며 그 역사를 살폈다. 마오리가 식민지로 전락하여 고통을 당하던 시기는 마오리어의 수난기였다. 와이탕이 조약에서 마오리는 ‘마오리는 모두 영국 시민과 같은 권리와 특혜를 받는다’고 하였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와이탕이조약 체결 이전인 1816년 뉴질랜드에 최초의 마오리 어린이를 대상으로 설립된 미션스쿨은 마오리를 기독교로 개종하고 문명화를 목표로 하였다. 즉 마오리를 이교도인 야만족으로 간주하였다. 선교사들은 유럽 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유럽식 교육을 강제하였다.

 

1814년 뉴질랜드에 온 유럽 선교사들은 문화침략의 선발대였다. 마오리를 미개상태에서 문명 세계로 바꾸려는 선교사들의 사명은 인종과 문화의 우월성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들은 마오리의 문화를 유럽문화로 바꾸고 자신들이 세계관을 강제할 신성한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 영어와 마오리어로 새긴 와이탕이조약 체결지의 방문자센터 명판. <사진=정유철 기자>

마오리는 마오리 교육제도인 화레 와난가(whare wananga)가 있었지만, 미션스쿨에 자녀를 보내려고 하였다. 큰 배와 강력한 무기, 놀라운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유럽인들의 지식을 배우기를 원했다. 그러나 미션스쿨의 수업은 성서뿐이었고, 마오리어로 읽고 쓰는 것만 배웠다. 영어를 가르치지 않았는데, 선교사들은 마오리가 비기독교의 영향에 오염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1847년 교육법 제정이 계기가 되었다. 그레이(Grey) 총독은 좋지 않는 영향을 미치는 마오리 마을에서 마오리 아이들을 격리하는 미션스쿨에 보조금을 지원했다. 이는 마오리를 되도록 신속하게 유럽 방식으로 동화하려는 것이었다. 그레이 총독은 수업을 영어로 하는 조건으로 미션스쿨에 보조금을 주었다. 마오리어는 수업에서 제외되었다. 이 제도는 1858년 원주민학교법(the Native School Act)에 의해 강화되었고 영어로 수업을 하는 학교에는 보조금으로 연간 7천 파운드을 지원했다.

 

와이탕이 조약 체결 후 식민지당국은 새로운 동화시스템으로 1877년부터 ‘원주민학교(Native School)’를 설립하였다. 1867년에 제정된 원주민학교법에 의거하여 설립된 원주민학교에서는 교육 중심에 영어를 두고 마오리를 유럽문화에 동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 원주민학교법은 마오리 자녀의 교육에 영어만을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1917년 영어교육법 시행으로 마오리어로 하는 교육을 더욱 규제하였고, 1903년 이후 원주민학교에서는 마오리어 사용이 금지되었고, 1930년에서 1940년에는 학교에서 교실이나 교정에서 마오리어를 사용하면 체벌하기까지 하였다.

   
▲ 영어와 마오리어로 적은 안내판. 마오리어는 1987년 영어와 함께 뉴질랜드의 공용어가 되었다. <사진=정유철 기자>

 

원주민학교는 마오리 자녀를 대상으로 하였고 유럽계 자녀를 위한 공교육과 공립학교는 별도로 있었다. 유럽계 자녀를 대상으로 한 의무교육이 1877년 교육법에 의거하여 시작되었으나, 마오리 자녀를 위한 의무교육은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늦은 1894년에 시작되었다. 마오리의 유럽문화로 동화를 목적으로 한 교육이 마오리와 유럽계를 차별하는 교육제도 아래서 진행되었다.

영어만으로 교육을 하게 됨에 따라 마오리이면서 마오리어를 이해할 수 없는 세대가 등장하기 시작하고, 마오리가 마오리문화를 ‘열등한 문화’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1931년 신원주민학교 관련법에 의해 마오리의 예술, 공예를 교과과정에 도입하였으나 마오리의 열등감은 불식되지 않았다.

 

마오리가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된 것은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마오리의 활약이 인정받은 점이었다. 뉴질랜드 정부도 마오리의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네이티브스쿨(원주민학교)은 ‘마오리학교’ 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 마오리학교는 1969년 일반학교와 통합되어 사라졌지만, 1981년 마오리어로 교육하는 유아교육기관 ‘코한가 레오’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그 후 코한가 레오의 설립이 늘어 마오리 어린이 약 45퍼센트가 이곳에 다니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노력으로 1987년 마오리어법이 제정되어 마오리어는 영어와 함께 뉴질랜드 공용어가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마오리는 피눈물 나는 투쟁을 하였다.

 

마오리어가 뉴질랜드의 공용어가 된 지금 마오리는 마오리어를 모두 잘할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2013년 뉴질랜드의 조사를 보면 마오리 인구의 21.3퍼센트인 12만5352명이 마오리어로 일상 대화를 할 수 있다. 연령별로 보면 15세 이하는 26.3퍼센트, 15세에서 29세는 23.3퍼센트이다. 30세에서 64세가 40.6퍼센트가 가장 비율이 높다. 65세 이상은 9.8퍼센트만이 마오리어로 일상 대화를 할 수 있다.

반면 하나 이상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마오리는 21.3퍼센트인 12만5,388명이다. 그 가운데 93.4퍼센트가 두 개의 언어로 말할 수 있고 6.6퍼센트를 3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한다.

이 같은 상황을 인식한 마오리는 마오리어를 보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마오리가 마오리어를 생활언어로 쓰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니엘 네틀과 잔 메인은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김정화 옮김. 이제이북스, 2003.)에서 이렇게 말했다.

 

언어들이 근본적으로 사용자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게 된다.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가 바로 당신이다. 1989년에 타계한 마오리족의 지도자 제임스 히네어 경은 마오리어에 대한 그러한 정서를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마오리 언어는 마오리문화와 마나(힘)를 창조하는 생명력이다. 일부에서 예견하듯이 마오리어가 사라진다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는다는 말인가? 그러면 나는 우리 부족 사람들에게 우리가 누구냐고 묻겠다.”

 

마오리이지만 마오리어를 말할 수 없는 나. 나는 마오리인가 아닌가. 언어를 잃으면 나를 잃게 된다. 제임스히네어 경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뉴질랜드의 거리를 오가며 마오리어 표기를 유심히 본 것은 바로 이런 연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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