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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창이 전한 선도 제천문화와 일본 고신도의 정립[국학 학술 기획]일본으로 건너간 연오랑·세오녀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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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30  09:46:18
정경희 국제뇌교육대학원 대학교 교수  |  k-spirit@naver.com

 

   
▲ 정경희 국제뇌교육대학원대학교 교수

앞서 『일본서기』·『고사기』 중의 천일창 관련 기사를 살펴 보았는데, 이중에서도 그가 도래할 때 가지고 온 신보들을 모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고사기』에 나타난 신보 8종은 ‘다마쓰타카라(玉津寶)’ 또는 ‘이즈시야마에대신(伊豆志八前大神)’으로 이름되고 있는데, 『일본서기』에 나타난 3종의 기록이 보다 통일성이 있어 필자는『일본서기』의 기록을 기준으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일본서기』에 나타난 신보들의 유형을 정리해보자면, 한국계 선도 제천의 신물들인 삼종신기(옥·칼·거울) 및 삼신 신주로 요약될 수 있다.
먼저 삼종신기의 경우이다. 삼종신기는 단군조선 이래 한반도의 지배세력들이  제천의례시에 사용하던 제천용 의례 용품으로서 하늘로부터 내려받은 통치권 또는 신권을 상징하는 신물(神物)이었다.  단군조선의 삼종신기는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갔는데, 단군조선 말기 즈음에는 대체로 거울·옥·검으로 고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표> 천일창이 도래하면서 가지고 온 신기.

 삼종신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선도 기철학(氣學)의 기반 이론인 ‘일·삼론(一·三論)’을 이해해야 한다.  ‘일·삼론’이란 ‘일기(一氣)의 세 차원인 천·인·지 삼기(三氣)’에 대한 이론이다. 한국사 전통 속에서 ‘일·삼, 일기·삼기’는  좀 더 친근하고 인격적인 표현법으로 ‘하느님·삼신’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천·인·지 삼기는 기에너지의 3대 요소인데, 현대적으로 설명하면 빛·소리·파동으로 풀이될 수 있다. 


선도문화에서는 사람 또한 기에너지의 결집체로 바라보기에, ‘천·인·지 삼기, 빛·소리·파동’은 사람의 내면, 그중에서도 특히 상·중·하 삼단전에 자리하고 있다고 바라본다.  상단전은 머리 안쪽에 자리한 기에너지의 결집체, 중단전은 가슴 안쪽에 자리한 기에너지의 결집체, 하단전은 배 안쪽에 자리한 기에너지의 결집체를 가리킨다. 선도수행(대표적인 선도수행이 곧 제천수행)은 이러한 상·중·하 삼단전속의 천·지·인 삼기를 개발·회복하는 과정이다. 


삼종신기는 이러한 선도수행(제천수행)의 상징물이다. 곧 거울은 빛을 의미하기에 머리 상단전(의식)이 밝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옥(곡옥)은 태아와 같은 생명과 탄생의 의미이기에 가슴 중단전(마음)의 생명력을 깨우는 의미이다. 검은 욕망을 통제하여 배 하단전(몸)의 생명력을 깨운다는 의미이다.
단군조선의 멸망을 즈음한 시기 단군조선 유민들은 한반도·일본열도로 물밀 듯이 밀려들었고 이러한 유민세력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였던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는 거울·옥(곡옥)·검의 세트를 갖춘 삼종신기가 여러 차례 출토되었다. 이러한 삼종신기가 단군조선 유민들의 일본열도로의 도래 과정에 관한 기록인 기·기 신화에 등장하게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기(記)·기(紀) 신화 중에는 일본의 국조신 아마테라스가 천손 니니기를 지상의 통치자로 내려 보내면서 신권의 상징으로 거울·곡옥·검 삼종신기를 하사하는 내용이 나온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는 일본 천황가 대대의 보물이 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귀하게 전수되어오고 있다.
수많은 단군조선 유민세력들이 일본 열도로 이주해간 사실로써 바라볼 때 이러한 삼종신기는 딱히 아마테라스 계열만 독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며 한반도내에서 유력한 지위를 가졌던 도래인들 내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던 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한반도 여러 지역, 또 일본 열도내 여러 지역에서 출토되는 삼종신기들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천일창 또한 한반도의 유력자로서 일본으로 건너갈 때 자신의 신분을 드러낼 수 있는 표상물로서 삼종신기를 지니고 갔던 것이다.

 

삼종신기도 그렇지만, 천일창의 경우 특이하게도 구마노히모로기(웅신리(熊神籬))라는 제천의 신주를 지니고 도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다른 도래인들에게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천일창 세력이 일반 도래세력들과는 분명히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매우 중요한 기록이다.  

 

구마노히모로기의 의미는 무엇이며, 용도는 무엇인가? 먼저 ‘구마(熊)’의 의미부터 살펴보겠다.  ‘구마(곰·고마·가미·가무, 웅熊)’은 ‘신(神) 또는 천(天)’의 의미이다.  한국사의 첫머리는 환웅시대 배달국(倍達國)에서 시작한다. 배달국을 개창한 환웅족은 천손족(天孫族)으로서 천손문화(선도문화, 제천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지손족(地孫族)인 웅족(熊族)과 혼인동맹으로 결합하였다.  천손족인 웅족의 제일 동맹세력으로 천손문화를 전수받은 웅족은 서서히 천손족으로 화하였고 웅족은 천손족(신족)의 상징이 되었다.  천손족 웅족은 배달국을 거쳐 단군조선에 이르기까지 천손문화를 널리 보급하고 뿌리내려, ‘홍익인간·재세이화’의 방식으로 세상을 다스려갔다. 동아시아 상고문화에서 환웅이나 치우, 또 단군과 같은 천손족 통치자들은 주로 용이나 곰으로 표상화되는 경우가 많았으니, 곰이나 용은 대표적인 천손족 표상이었다.


이처럼 배달국, 단군조선을 거치면서 웅족이 천손족의 상징이 되어가면서 곰(웅, 고마, 가미)는 신이나 천을 상징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한반도 도래인들을 통해 곰(웅, 고마, 가미)은 일본 열도로도 널리 전파되었으니 대표적인 경우가 이즈모나 기나이 지역의 구마노(熊野), 큐슈의 구마소(熊襲)나 구마모토(熊本) 등과 같이 곰(熊)이 들어간 지명이다. 이외에 신사에서 의례를 담당했던 씨족의 성인 ‘가무(加茂)’씨 등으로 그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다음은 ‘히모로기(神籬)’의 의미이다. 히모로기는 고대 한국어로 ‘히’는 ‘흰(白), 밝은’의 의미이고, ‘모로’는 ‘머리, 꼭대기’라는 의미이니 ‘(하늘의) 밝고 높음’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하므로 ‘구마+히+모로’는 ‘신+밝음+높음’이라는 뜻으로 한민족의 선도 제천의 신격인 하늘,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늘의 선도 기철학적 의미인 ‘일·삼, 하느님·삼신’을 의미한다. 
다음 ‘기(籬)’는 ‘담는 용기’라는 의미이다. 곧 ‘구마노히모로’를 담아 모시는 신단 내지 신주라는 의미이다.  정리하자면, 구마노히모로기는 한국 선도 제천의 신격인 일·삼(하느님·삼신)을 담아 모시는 신단이나 신주의 의미였다. 

 

천일창 왕자가 이러한 ‘일·삼(하느님·삼신)의 신주’를 가지고 도래하였다면, 이를 배달국·단군조선 이래의 선도문화 전통으로 바라보아 대단히 주목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곧 제천의 신주가 움직인다는 것은 개인 차원의 움직임이 아니라 최소한 왕실 차원의 움직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천일창은 일본열도로 밀려든 많은 도래세력들과 차별화되는 좀 더 특별한 인물로 이해되는데, 단순 무장이나 정복자 정도가 아니라 선도 제천을 주관하는 사제적 통치자, 곧 국왕급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천일창은 비상한 인물로서 강한 군사력은 물론이고 제천의 신물로 상징되는 바 국왕급 지도자로서의 정통성까지도 지닌 채 도래해왔던 것이다. 


야마토조정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천일창세력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고 실제로도 그러한 류의 기록이 나타난다. 곧 천일창이 가져온 구마노히모로기를 위시한 여러 신보들은 천일창의 사후 천황의 요구에 의해 천황가로 들어가고 말았던 것인데, 이른 바 ‘신보 탈취’ 또는 ‘신보 헌상’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일본서기』스이닌천황 88년 7월조를 살펴 보면, “스이닌천황이 천일창의 증손 기요히코(清彦)에게 사자를 보내 천일창이 가져왔던 다지마국의 신보를 헌상하도록 명하였다. 헌상된 신보는 羽太玉 1개, 足高玉 1개, 鵜鹿鹿 赤石玉 1개, 해거울日鏡 1면, 구마노히모로기熊神籬 1구 총5종이었다. 기요히코는 상기 5종 외에 ‘出石小刀’ 1개를 헌상하지 않기 위해 도포자락 속에 숨겼다. 천황과 기요히코가 술을 나누는 도중에 소도가 옷 밖으로 나오자 기요히코는 단념하고 이 소도가 신보 중에서도 최고라고 말하였다. 천황이 이를 다른 신보와 함께 神府(나라지역 이소노카미신궁(石上神宮)내 신부)에 수납하도록 했다. 후에 천황이 신부를 열어보니 소도가 없어 기요히코에게 사람을 보내 물어보았다. 기요히코가 답하길, 소도가 자연히 집으로 왔지만 다시 없어졌다고 했다. 두려워진 천황은 더 이상 소도를 구하지 않았는데, 후에 아와지섬(淡路島, 효고현 남쪽의 섬)에서 발견되어 그 지역 사람들이 제사하였다”고 했다.


이상의 기록은 천일창의 신보가 갖는 비상한 의미를 잘 보여준다. 천황가에 회수된 신보들 중에서도 특히 구마노히모로기가 가장 중요한 신물이었는데, 천황가 역시 이러한 의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곧 당시 야마토조정이 자리한 기나이 일대의 신산(神山), 곧 나라의 중심 제천산은 미와산(三輪山, 미모로산(御諸山))이었는데 여기에 구마노히모로기를 모셨기 때문이다. 

 

일인 학자들은 ‘미모로’라는 호칭 중의 ‘모로’가 구마노히모로기의 ‘모로’와 같은 의미로 본다. 한국에서는 흔히 제천산을 ‘머리산’이라고 하는데, 흰머리산(백두산)을 필두로 마리산(마니산, 두악(頭岳): 강화도 소재), ‘말이산(함안 지역)’ 등이 같은 계통이다. 이러할 때 미모로산은 한민족 최고의 성산이자 제천산(삼신산)인 백두산 계열의 제천산을 일본에 그대로 옮겨 재현해내고자 했던 도래인들의 소망을 담은 산이 된다.


이러한 미모로산의 위상을 정립한 인물은 다름아닌 야마토조정의 신기원을 연 스진천황이다. 스진천황은 미모로산 산록의 시키노미즈카키노미야(磯城瑞籠宮)을 도읍으로 삼았다고 하며 특히 신을 숭경하여 황거(皇居)에 모신 아마테라스를 별도의 신사(현 히바라(檜原)신사)로 모신 것을 시작으로 신사제도를 정비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스진 스진천황이 가장 중시하였던 제천산(삼신산)이 바로 미모로산으로 지금도 산꼭대기에는 제천단의 역할을 하던 큰 바위 제단(이와쿠라磐座)가 남아 있고 산 아래에는 스진천황을 모신 작은 신사인 ‘천황신사(天皇神社)’도 남아 있다. 스진천황은 자신의 치세에 역병이 돌고 민심이 불안해지자 미와산에서 대물주신을 모시면서 제천하여 민심을 가라앉히고자 노력하였다고 한다.  현재에도 미와산 아래에는 대물주신을 모신 오미와신사(大神神社)가 남아 있는데, 한국 선도 제천의 방식에 따르면 대물주신을 모셨다고 함은 대물주신을 매개로 하여 삼신하느님을 모셨던 것이 된다. 가령 삼성(환인·환웅·단군)을 매개로 하여 제천하되 실제적으로는 삼신하느님에게 제천하는 것과 같은 방식인 것이다.

 

이처럼 한국선도 제천문화에서 일본 신도문화가 발원하였기에 애초 신도는 제천의례로서의 출발점을 갖게 되고, 신도의 신격 또한 한결같이 삼신하느님의 출발점을 갖게 됨을 알게 된다. 선도 제천의 신격인 하느님·삼신의 신도적 표현은 기·기 신화에 등장하는 조화삼신(造化三神)에 다름아니다. 비록 후대의 신도가 선도 제천의 출발점을 잊어버리고, 팔백만 신들을 담아내는 다신교로 바뀌어갔지만 그 출발점에는 하느님·삼신 또는 조화삼신이라는 분명한 기준점이  있었던 것이다.


 야마토조정의 중심 제천산인 삼신산(미와산, 미모로산)에 천일창이 가져온 삼신하느님의 신주를 모셨다는 점에서 그가 야마토조정에서 차지한 비중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야마토조정의 신기원을 연 스진왕조와 같은 계열의 도래인으로 스진천황 이후 막 기반을 마련해가고 있던 스이닌천황을 도와 스진왕조를 적극 부호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스진왕조의 사상·종교 정책, 또는 고신도문화의 원형 정립에 천일창 왕자가 기여한 부분이 매우 컸기에 후대의 학자들도 그 의미를 강조하게 되었다. 가령 도데이칸(藤貞幹,  1732∼1797)과 같은 인물은 그의 저서 『충구발(衝口發)』(1781)에서 ‘히모로기(神籬)는 후세의 신사(神社)이다’고 지적, 구마노히모로기가 후세 신사제도의 원류가 되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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