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경희 국제뇌교육대학원대학교 국학과 교수

《삼국유사》 연오랑ㆍ세오녀와 비슷한 이야기가 동해 바다를 건너 일본 역사 기록에도 등장하니, 그 주인공이 바로 신라왕자 천일창(天日槍, 아메노히보코)과 그 아내 ‘赤玉女(아카루히메, 阿加流比賣, 赤留比賣)’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일본서기》와 《고사기》를 비롯하여 일본의 향토 기록인 《번마국풍토기(播磨國風土記)》, 《비전국풍토기(肥前國風土記)》, 《섭진국풍토기(攝津國風土記)》, 《축자국풍토기(筑紫國風土記)》 일문(逸文)과 《고어습유(古語拾遺)》,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에도 나온다. 먼저 《일본서기》에 기록된 천일창 기록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스인(垂仁) 천황(11대 천황, 《일본서기》에 나타난 재위기간: 기원전 29~기원후 70) 3년 춘3월에 신라왕자 아메노히보코(天日槍)가 내귀(來歸)했다. 가지고 온 물건은 하후토(羽太)의 옥(玉) 1개, 아시타카(足高)의 옥 1개, 우카카(鵜鹿鹿)의 적석옥(赤石玉) 1개, 이즈시(出石)의 작은 칼(小刀) 1구, 이즈시(出石)의 창(牟) 1개, 해거울(日鏡) 1면, 구마노히모로기(熊神籬) 1구(一具), 도합 7개였다. 그것을 다지마국(但馬國)에 수납하여 신물(神物)로 삼았다. [일설에 의하면 그가 배를 타고 와서 하리마국(播磨國)에 정박, 시사하메읍(宍粟邑)에 있었다. 천황이 미와노키미(三輪君)의 할아버지인 오오토모누시(大友主)와 야마토오아타이(倭直)의 할아버지인 나가오치(長尾市)를 파견하여 출신국을 물었다. 아메노히보코는 ‘신라국 왕자로 일본국에 성황(聖皇)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내 나라를 아우 치고(知古)에게 주고 귀화하였다’고 답했다. 그가 받친 물품은 하보소노타마(葉細珠)・아시타카노타마(足高珠)・우카카노아카시타마(鵜鹿鹿赤石珠)・이즈시노카타나(出石刀子)・이즈시노야리(出石槍)・히노카가미(日鏡)・구마노히모로기(熊神籬)・이사사노타치(膽狹淺大刀) 도합 8가지였다.〕(축역)

이 기록에 이어지고 있는 천일창 왕자의 도래 경로를 정리해보면 대체로 ‘신라→ 북큐슈 → 세도나이해→ 하리마국(播磨國) 시사하메읍(宍粟邑) → 아와지노섬(淡路島)→ 요도가와(淀川)·우지가와(宇治川) → 오우미국(近江國) → 아나노읍(吾名邑)→ 와카사국(若狹國) → 다지마국(但馬國)’이며 최종 다지마국(但馬國) 이즈시(出石) 지역에 정착하여 이곳 이즈시신사(出石神社)의 신이 되었다고 했다.


흥미롭게도 일본 고대사속의 천일창 관련 흔적은 한결같이 이러한 도래 루트를 따라서 나타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하게 남은 곳은 동해 바닷가 산인(山陰) 및 호쿠리쿠(北陸) 일대, 곧 고대 에치젠국(越前國), 와카사국(若狹國), 다지마국(但馬國) 일대이다. 그의 마지막 정착지이자 영지로서 후손들이 크게 번성하였던 곳이 바로 이 일대이다. 이 일대에는 천일창을 모시는 양대 신사가 자리잡고 있다. 에치첸국(越前國) 쓰누가(敦賀) 지역(또는 게히 지역)에 자리한 게히(氣比) 신궁, 또 다지마국 이즈시 지역에 자리한 이즈시(出石)신사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쓰누가 지역은 동해 바닷가를 접하여 고대의 주요 항구 게히포구 일대로서 이곳에 도착하여 비와호(琵琶湖)를 거치면 수월하게 기나이(畿內)로 진출할 수 있다. 한반도 도래세력의 입장에서 보자면 수많은 세력들이 할거하고 있는 북큐슈나 세도나이해 지역을 통과하는 것보다 이 지역으로 출입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유리하여 많은 도래세력, 또 기나이세력이 이곳을 중시하고 이곳을 장악하고자 했다.  죠몬·야요이시대 이래 수많은 한반도 도래인들이 이곳을 통하였지만 일본측 기록에는 특히 고구려·발해계 사신들과의 교류에 관한 기록, 또 그들을 위해 나라에서 객관을 운영하였다는 기록 위주로 나타난다. 


고대 한반도와 통하는 교통의 요로, 게히 포구 입구에 자리한 게히(氣比)신궁은 천일창 전승의 중심지이다.  과거 게히 포구가 가졌던 위상이나 게히 포구 입구에 세워진 게히신궁이 에치젠국(越前國)의 이치노미야(一宮, 구니(國)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신사)였음을 생각하면, 이곳 제신으로 모신 천일창이 고대 한반도와의 교류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였는지, 또 후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와의 교류를 상징하는 인물로서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쓰누가 지역의 동쪽에 위치한 산인(山陰) 이즈시 지역은 천일창이 치수·개간한 드넓은 평야지대로서 이 일대를 영지로 거느린 천일창의 당당한 위세가 느껴지는 곳이다. 이즈시 지역의 넓은 평야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안온한 터전에 자리잡은 이즈시신사는 다지마국의 이치노미야(一宮)로서 천일창 전승의 또 다른 중심지이다.
이렇듯 천일창은 동해안가 에치첸국, 와카사국, 다지마국 일대에서 막강한 세력을 지닌 왕급 호족세력으로 지위를 누렸으며, 특히 그의 후손들은 천황가와도 좋은 관계를 맺어 후대 천황가의 일원으로 편입되어 들어갔다. 곧 그의 5대손으로 진구(신공)황후가 있는데, 게히신궁에는 천일창을 수위로 하여 진구황후, 또 진구황후의 남편인 추아이(仲哀)천황, 진구황후의 아들인 오우진(應神)천황, 추아이천황의 아버지인 야마토다케루(日本武尊) 등 4세기 야마토조정의 인물들이 함께 모셔져 있다.


 《고사기》 오우진(應神)천황조에도 천일창의 도래 기사가 실려 있는데 이는 《일본서기》의 기록과 달리 천일창 도래의 다른 측면을 보여주기에 의미가 있다. 《일본서기》에 스이닌 천황 3년에 도래한 것으로 기록된 것이 《고사기》에 오우진천황조에 나타나는 것은 오우진천황의 어머니인 진구(神功)황후의 모계 선조가 천일창왕자이기 때문에 오우진천황의 가계에 관한 설명의 일환으로 삽입된 것이다.

 옛날 신라국 아메노히노보코(天日之矛)라는 왕자가 도래했다. 신라국에 아구누마(阿具奴摩)라는 늪(沼)이 있었다. 이 연못 근처에서 한 천한 여자가 낮잠을 잤는데, 어느 날 무지개 같은 햇빛이 음부를 가리키자 그 후 임신해서 붉은 옥(赤玉)을 낳았다. 마침 이를 지켜보고 있던 천한 남자가 이를 얻어 항상 허리에 차고 다녔다.  어느 날 그가 사람들과 같이 소에 짐을 싣고 산으로 들어가다가 아메노히보코를 만나게 되었다. 그가 소를 잡아먹으려 하는 것으로 아메노히보코가 의심하여 옥에 가두려 하자 그 남자는허리에 찬 옥을 풀어 왕자에게 받치고 풀려났다. 왕자가 옥을 가지고 돌아와 방에 두니 아름다운 소녀로 변했다. 왕자는 그 여인과 혼인하였다. 여인은 늘 진미를 차려 올렸지만 왕자가 오만해져 폭언을 하니 마침내 자기나라로 돌아가겠다며 몰래 작은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도망가 난바(難波)에 머물렀다. 아메노히보코는 아내가 도망간 것을 듣고 뒤쫓아 난바에 가려하였는데 난바의 도신(渡神)이 가로막았다. 그래서 다지마쿠니(但馬國)에 머물면서 그 나라 마타오(侯尾)의 딸, 마에쯔미(前津見)을 아내로 맞았다. 아메노히보코가 가지고 온 것을 다마쓰타카라(玉津寶)라 하는데, 구슬 두 줄(珠二貫), 나미후루히레(振浪比禮)ㆍ나미키루히레(切浪比禮)ㆍ카제후루히레(振風比禮)ㆍ카제키루히레(切風比禮), 오키쓰 거울(奧津鏡)ㆍ헤쓰 거울(邊津鏡) 도합 8종으로 이즈시(伊豆志: 이즈시(出石)신사)에 모셔진 ‘야마에대신(八前大神)’이다.(축역)

이러한 기록과 함께 천일창의 부인으로 나타나는 적옥녀(赤玉女, 아카루히메)는 북큐슈, 세도나이해, 오사카 일대 수많은 신사의 제신으로 모시고 있어 천일창 왕자의 부인으로 손색없는 귀한 신분의 여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특히 직조의 여신으로 숭상되고 있다. 아카루히메를 모신 신사로는 먼저 큐슈 오이타현 우사신궁에서 동쪽으로 50여km 거리인 구니사키(國東) 반도 앞 히메지마(姬島)섬에 있는 히메코소신사(比賣語曾神社)가 있다. 섬 이름 자체가 여신인 점에서 이 여신의 높은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신라계 도래세력이자 천일창과도 깊이 연계된 고대의 저명 씨족 하타씨(秦氏)의 수호신으로도  알려졌다. 이밖에도 히로시마현 구레시의 가메야마신사, 오사카 니시요도가와구의 히메지마신사(姬島神社), 히가시스미요시구의 히메코소신사(比賣許曾神社) 및 다데하라신사(楯原神社), 미나미구의 다카쓰신사 등이 있다.
 
 이상 천일창·적옥녀 전승은 연오랑·세오녀 전승과 닮은 점이 많다. 양 전승의 유사점을 지적해 보자면, 출신국이 공히 신라로 알려진 점, 모두 귀한 신분 출신으로 신라의 왕자와 왕자비(천일창 전승) 또는 일본 왕과 왕비의 신분이었던 점(연오랑 전승), 먼저 떠나간 아내를 쫓아(천일창 전승) 또는 남편을 쫓아(연오랑 전승) 한쌍의 부부가 도일하였던 점, 제천의 신기를 지니고 도일하거나(천일창 전승) 제천을 하는 주관하는 신분이었던 점(연오랑 전승), 아내가 제천의 신물인 베를 짜는 역할을 하거나(천일창 전승) 직조의 신으로 숭상되었던 점(연오랑 전승) 등이다. 이러한 점들로 인해 학계 일각에서는 양 전승을 동일 전승의 이형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