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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노오의 한반도 출자에 얽힌 문제[국학 학술기획]일본으로 건너간 연오랑·세오녀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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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25  11:06:41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  k-spirit@naver.com
   
▲ 정경희 국제뇌교육대학원대학교 교수

앞서 이즈모 일대의 야요이 유적·유물 분석을 통해 스사노오에 의한 초기 문명 개척 과정, 또  B.C. 3세기 이후 기나이세력에 흡수·통합되는 과정 등을 살펴 보았다.  여기에서 다시 하나 중요한 문제가 생겨난다. 스사노오의 출자가 신라 소시모리 지방이라고 하였는데 이때는 신라가 건국되기 이전 시대, 곧 단군조선시대이기에 소시모리 지방이 신라땅이 될 수 없는 문제이다. 


필자는 스사노오가 단군조선인이며, 후대에 그의 출자지인 소시모리 지역이 신라지역으로 편입되면서 신라인으로 분류된 것으로 본다.  스사노오의 본향으로서 일본 야요이문명을 선도할 정도로 대단한 문명의 고장, 또 후대에는 신라 영토가 되었던 소시모리라는 곳은 과연 어느 지역인가? 
기·기 신화에 의하면 스사노오는 다카마가하라(高天原)에 추방되자 아들 이소타케루노카미(五十猛尊)을 데리고 시라기(新羅)국에 내려와 소시모리(曾尸茂梨)라는 곳에 머물렀다가 얼마 있지 않아 ‘이 땅에서 살고 싶지 않다’며 진흙으로 만든 배를 타고 동쪽으로 이동해 이즈모국 히노가와(斐之川) 상류에 있는 도리카미(鳥上) 봉으로 갔고  여기에서 오로치로 상징되는 토착세력을 정복한 후 나무를 심고 궁전과 배 등을 만드는 등 문명을 개척하였다고 했다.


기왕에 많은 학자들은 소시모리를 ‘소의 머리’, 곧 ‘우두(牛頭)’로 이해, 한반도의 소시모리, 또는 우두라는 지명을 추적해왔다.  이외에 소시모리의 어원을 ‘소후루 혹은 소푸루(徐伐, 徐那伐, 徐羅伐, 徐耶伐), 곧 ‘서울’로 바라보는 경우도 있지만 후대에 스사노오를 ‘고즈텐노(우두천왕, 牛頭天王)’로 부르고 머리 또는 이마에 양 뿔을 두른 형태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을 볼 때 ‘서울’ 보다는 ‘소머리’의 의미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실제로 한반도에는 ‘牛頭’ 또는 ‘牛首’라 적고 ‘소머리’로 읽는 지명이 여러 군데 있었다.  가장 많은 사람들에 의해 주목된 지역은 신라 중고기 행정구역중 하나인 삭주(朔州), 또는 우두주(牛頭州)였던 춘천 지방이다.  춘천 시내에는 지금까지도 우두산이라는 작은 산이 남아 있다. 이외에도 황해도 김천에 우두산성이 있고, 경상도 합천·거창·예천에도 각각 우두산이 있다.  경상도 합천·거창 등지의 우두산을 스사노오의 출자지로 보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이들 여러 후보지 중에서도 춘천 지역에 주목해 보게 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스사노오가 일본에 도래하여 이즈모 지역을 개척한 문명 수준은 일본 열도 내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이 무렵 한반도의 문명 수준은 만주 일대에 자리하고 있었던 단군조선의 후기 중심지(최근 연구에서는 요녕성 심양 일대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음)를 기준으로 하여 한반도 남부로 내려오면서 문화의 수준이 점차 떨어지는 형국이었다.  이들 후보지 중에서도 한반도 남부 경상도 지역의 후보지들에 비해 춘천 지역, 당시의 맥국(貊國) 문화는 요서·요동이나 압록강·백두산 일대 문화와 같은 계열로서 한반도 남부에 비해 수준이 현저히 높았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는 춘천을 옛 맥국의 땅으로 기록하고 있다. 맥국은 고조선시대 여러 소국 중 하나로 2014년 중도(中島) 유적 발굴을 통해 그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1980년대 이래 춘천 일대에서는 신석기 이래 초기철기에 이르기까지 의미있는 유적·유물들이 지속적으로 발굴되어왔는데, 2014년 중도 유적에 이르러 수준높은 청동기시대 유적·유물이 집중적으로 발굴됨으로써 그간의 발굴 성과를 집성해 바라보게 하였다. 
2014년 그동안 발굴되지 못하고 남아있던 24만㎡에 대한 발굴 결과 둘레 400m의 환호(環濠)를 비롯해 주거지 917기, 고상가옥 9기, 저장 수혈 355기, 고인돌무덤 101기, 농경유적 등 청동기시대 유적·유물이 발굴되었다. 1000기에 달하는 대량의 주거지와 100기가 넘는 고인돌무덤이 발견된 것은 세계 고고학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사례이다. 또한 고조선의 표지  유물인 비파형동검과 선형동부(扇形銅斧, 부채모양 청동도끼), 옥착(玉鑿)·옥부(玉斧) 등 옥기, 미송리형토기, 팽이형토기, 점토대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비파형동검도 그렇지만 청동도끼는 남한에서 두번째로 발굴된 경우이며 다섯줄 띠를 두른 형태는 남한에서 처음 발굴된 것이었다.
또한 이들 청동 유물은 중도와 가까운 천전리에서 발굴된 거친줄무늬 청동거울, 잔줄무늬 청동거울, 청동방울 등과 3종신기의 세트 조합을 맞출 수 있었다. 제천 의기 또는 권력자의 권장류로 사용된 청동제품들이 이 일대에서 골고루 출토된 것이다.  또한 고인돌 묘제의 경우 화장후 매장하는 방식으로 이는 전형적인 고조선의 장례 풍습이었다.


청동기문화 지층 위로는 고구려계 석곽묘와 함께 금제 ‘심엽형(心葉形) 태환이식’ 부분 두 점도 발굴되었다. 그간 춘천 일대 만천리, 신매리, 방동리 등에서 발견된 고구려계 석곽묘와 같은 계열로서 삼국시대에는 이 지역이 고구려문화권이었음을 보여주었다. 


이상 춘천 일대의 발굴 성과를 통해 맥국이 만주나 압록강·백두산 일원의 고조선계 국가임이 드러났다. 나라 이름인 ‘맥’ 또한 압록강·백두산 일원의 단군조선-고구려계 민족명인 대수맥(大水貊)·소수맥(小水貊)과 같아 압록강·백두산 일원의 맥족이 한반도 중부로 이동해 세운 나라임을 알게 하였다.  이처럼 단군조선-고구려계 국가인 맥국의 수준높은 문화가 스사노오를 통해 이즈모로 전해졌던 것이다.


둘째, 이즈모지역의 독특한 묘제인 사우돌출형분구묘가 압록강 일대 맥족계 묘제를 원류로 하는 단군조선-고구려계 묘제였다는 점도 상기한 바 첫번째 논의와 상통한다. 압록강 중류 자강도 초산군 봉무리와 운평리의 돌무지무덤 중에 사우돌출형 분구묘가 나타나는데 대체로 기원전 3세기~기원전 2세기 무렵 압록강·백두산 일대 고조선계 세력의 무덤 양식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양식이 동해 바다를 건너 이즈모 지역으로 전파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우돌출형 분구묘는 일본 열도 중에서도 유독 동해 해안가에 위치한 산인(山陰)이나 호쿠리쿠(北陸) 지방에만 나타나며 3세기 무렵을 끝으로 사라지고 이후에는 고분시대를 대표하는 묘제인 전방후원분이 나타나게 된다.  여기에서 이즈모지역은 애초 단군조선-고구려계 세력이 바다를 건너 터전을 마련한 곳이며 수많은 도래 세력들 중에서도 스사노오는 특히 이즈모지역에 크게 문명을 개척한 그 혁혁한 공로로 인해 기록에 남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셋째, 춘천 지역 맥국의 우두산은 삼국시대 저명한 제천의 명소로서 스사노오와 긴밀히 연결되고 있었던 점이다. 『삼국사기』 중에는 300년(기림이사금 3) 3월 신라의 제15대왕이자 석씨족인 기림이사금(基臨尼師今, 재위 298~310)이 우두주(牛頭州)에 이르러 태백산을 향해 망제(望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신라초기 왕족인 박씨족은 태백산을 중시하여 일성왕(逸聖王)의 경우 태백산에 친히 올라 제천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기림이사금은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되 우두주와 태백산을 연동해서 제천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천에서 망제를 지내는 장소는 망제 대상인 제천산과 마찬가지로 신성한 곳임이 분명한데, 우두주의 성지라면 당연히 우두산이다.
지금도 춘천 시내 우두동에는 자그마한 언덕과 같은 우두산이 남아 있다.  우두산 정상은 ‘솟을 뫼’로 불리어 왔는데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이곳을 무덤이 아닌 제천단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곳의 유래에 대한 다양한 전승 중에는 이곳이 스사노오의 제단 또는 무덤이라는 전승도 있다. 

 

      1916년 도리이 류조(鳥居龍藏)가 촬영한 우두산 정상의 제천단(솟을 뫼),  현재의 모습

이렇게 4세기초 우두산이 그 유명한 신라의 제천산 태백산과 함께 연동될 정도로 위상이 높은 제천산이었음을 알게 되는데, 이러한 우두산의 제신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기록도 있다. 곧 7세기 고구려 사신이 우두산에서 모셔진 우두천왕의 신주를 일본 교토로 가져가 사당을 지어 모셨는데 이곳이 현재 스사노오를 모시고 있는 야사카신사(八坂神社)라는 기록이 그러하다. 이는 우두산 제천단의 제신으로 우두천왕이 모셔지고 있었고 그가 스사노오와 동일시되었다는 점을 알려준다.

 

교토 야사카신사는 일본내 스사노오를 모신 주요 신사 중 하나인 야사카신사의 본원으로, 제신은 주존인 스사노오(우두천왕)를 중심으로 스사노오의 비, 자녀 등이다.  야사카신사의 원래 이름은 기온사(祇園寺, 祇園牛頭天王寺, 祇園感神院)로 메이지유신 이후에 야사카(八坂)이라는 지명에 따라 야사카신사로 불리게 되었다. 기온사의 창건에 대한 기록을 보면 ‘656년 한반도에서 온 사신 이리시노오미(伊利之)가 신라 우두산에서 우두천왕의 신주를 모시고 와서 교토에 창건하였다’는 기록,(『八坂鄕鎭座大神之記』) 또 ‘666년 임나가야 사람 옷소안스(乙相 奄鄒)가 고구려 진조대사(進調大使)로 일본에 올 때 우두천왕 사당을 야사카에 세우고 감신원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感神院牛頭天王考』)


656년이나 666년 무렵 고구려 사신이 신라 우두주의 우두천왕 신주를 가지고 도일한 것은 그리 매끄럽게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춘천 지역은 고조선 맥국시대를 지나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그러다가 551년 진흥왕이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공격해 죽령 이북 고현(高峴, 현 철령) 이남 고구려 10군의 땅을 점령하면서 재차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이후  637년(선덕여왕 6) 고구려가 10군중 비열홀(현 안변)을 위시하여 일부 지역을 탈환하게 되자 신라측은 국경선 일대의 통치 체제 개편의 차원에서 춘천 일대에 우수주(또는 삭주)를 설치하고 군주(軍主)를 두었다. 우수주 설치 이후인 656년이나 666년 무렵은 나당연합군에 의한 백제 멸망(660년)이나 고구려 멸망(668년)이 있었던 엄청난 격변기였다. 이러한 시대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신라·고구려의 국경에 위치한 우두주의 위치를 생각해 보면, 고구려 사신이 신라 우두주의 우두천왕 신주를 옮긴 정황이 이해될 수 없는 것도 아닌 듯 하다.

 

이상에서 스사노오의 출자에 관해 단군조선계 국가인 춘천 일대의 맥국 출신의 인물이었을 가능성을 살펴 보았다.  맥국이 삼국시대에 고구려 영토가 되었고 다시 6~7세기가 되면서 신라 영토로 편입되는 상황을 통해 스사노오가 비록 고조선 맥국계 인물로서 도일하였지만 최종적으로 신라신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신라신으로 알려진 스사노오의 신주를 고구려 사신이 가져오는 모습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상의 고찰도 그렇지만 일본측에서도 스사노오의 본향을 춘천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특히 대일항쟁기에는 식민지정책의 일환으로서 ‘스사노오=단군설’이 주창, 스사노오 본향으로 알려진 춘천 지역이 일인들에 의해 크게 주목되었다.  1906·1907년 즈음 일선동조론으로서 ‘스사노오=단군설’이 등장하기 시작한 이래 1918년 춘천 봉의산 자락에 강원신사가 설립, 아마테라스·메이지천황·국혼대신·스사노오가 향사되었다(1938년 춘천신사로 개칭). 1925년 남산 조선신궁 제신 논의에서도 스사노오=단군을 모셔야 한다는 주장이 개진되었다. 춘천지역 향토지에 스사노오가 전면 부각되었고 역사교과서에조차 실릴 정도였다.  기억해야 할 부분은 이때의 스사노오는 한반도 도래인으로서 일본에 문명을 전파한 인물이 아니라 일본에서 한반도로 건너온 정복자로 묘사되었다는 점이다. 식민통치를 위해 기·기 신화에 나타난 명명백백한 내용조차도 왜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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