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기·기 신화를 통해 일본 야요이문명 최초의 개척 세력이 스사노오 세력이었을 것으로 바라보았다. 이에는 이즈모 일대에서 출토되는 유적·유물의 성격과 편년 문제에 대한 고찰이 함께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즈모 일대의 야요이 유적으로는 동검·동탁 등 청동제기가 쏟아져 나온 고진다니(荒神谷) 유적과 가모이와쿠라(加茂岩倉) 유적, 니시다니(西谷) 고분군이 유명하다. 이중에서도 고진다니와 가모이와쿠라 청동제기 유적은 야요이시대 이즈모의 위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다. 

1984년 8월 시마네현 도로공사 중 히카와(斐川)군 간바(神庭) 구릉 고진다니(荒神谷)에서 동검(銅劍) 358개, 동모(銅鉾·銅矛, 청동제 창) 16개, 동탁(銅鐸, 청동제 종) 6개가 출토되었다. 무덤의 껴묻거리가 아닌 독자적 매장 방식으로 질서정연하게 매장된 모습이었다.
이중에서도 가장 이목을 끈 것은 동검이다. 그때까지 일본 전역에서 출토된 동검이 대략 300개였는데 전체 일본에서 발견된 것보다 고진다니 유적에서 나온 동검이 더 많았다. 전국 출토 동검의 과반수를 넘어서는  60%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한반도에서 전해진 동검·동모·동과(銅戈) 등은 애초 실용무기로 전해졌지만 일본에 이르러 편평하고 대형화된 의례 용기로 변화, 일반적으로 ‘무기형 제기’로 불리운다. 동탁 역시 한반도에서 전해질 때는 작은 형태였으나 일본화하면서 애초의 기능성을 상실하고 대형화하였으며 장식성까지 더해져 일본 야요이문화를 대표하는 기물이자 제기가 되었다. 


대체로 북큐슈지역의 제기는 동모·동과, 기나이 지역은 동탁이 중심이 되는 경향이었는데, 이즈모의 경우 이들과 함께 동검이 위주가 되는 특징을 보였다. 다른 청동기에 비해 동검은 한반도 청동기의 대표성을 띠는 기물일 뿐아니라, 특히 한반도의 선도(仙道) 제천문화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 제천 의기인 삼종신기(동경·곡옥·동검)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성격의 동검을 제기의 중심으로 삼았던 이즈모의 제천 문화는 일본열도 중에서도 한반도 제천문화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었던 경우로 바라보게 된다. 


 1996년에는 고진다니 유적에서 3㎞ 떨어진 가모이와쿠라(加茂岩倉)에서 동탁 39개 발굴되었는데, 역시 무덤 껴묻거리가 아닌 독자적 매장 방식이었다.  대형 동탁 14組(28개) 안에 작은 동탁이 들어간 형태로 역시 질서정연한 형태였다.  가모이와쿠라 유적의 발견 이전에 일본 전역에서 640여개의 동탁이 발견된 바 있는데, 가모이와쿠라의 동탁은 동탁에 관한 한 단일지역에서 출토된 가장 많은 양이었다.


이로써 이즈모 일대의 제천문화에서는 동검 뿐아니라 동탁도 널리 제기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는데, 특히 이즈모 동탁은 양·질의 면에서 탁월한 모습을 보여 기왕의 ‘동탁 기나이 중심설’에 대해서도 많은 반성점과 시사점을 던져 주었다.   이처럼 이즈모 지역에서는 유물이 한번 출토되기만 하면 일본 열도의 순위를 바꾸어 놓는다고 할 정도였으니 이즈모 지역이 초기 야요이문화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주었다.
이즈모 청동기의 원료에 대한 분석 또한 흥미롭다. 야요이시대 청동기에는 동이나 아연 등과 함께 납이 주성분으로 포함되어 있었는데, 현재 이 납을 분석하여 그 청동기가 어느 지역의 원자재를 사용해서 제작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분석 결과에 의하면 야요이 초기에는 한반도산 재료가 쓰이고 중기에는 중국 화북산(華北産) 재료가, 후기에는 중국 화북산의 획일적인 재료가 쓰여졌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는 애초 이즈모지역의 주된 교역 루트가 한반도였다가 서서히 후한이나 한사군 등 중국과의 관계 중심으로 바뀌어가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동탁 출토지 부근의 지명에 ‘가무’라는 이름이 많이 사용되고 있음은 이들 청동 제기의 용도와 관련해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가무’는 우리말 ‘곰(熊)’의 일본식 표현으로 ‘고마, 가미’ 등으로도 표현되었다.  ‘신(神), 천(天)’이라는 의미이다.  배달국의 개창세력인 천신족 환웅족은 웅족(熊族)을 동맹세력으로 연합하여 ‘홍익인간(弘益人間)·재세이화(在世理化)’의 방식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천손문화(선도문화, 선도 제천문화)로써 나라를 다스렸다는 의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웅족은 서서히 천신족으로 화하였고 배달국과 단군조선의 주족이 되었다.  애초 ‘곰(웅)’은 단순히 종족을 상징하는 족휘(族徽)였을 뿐이었지만 점차 ‘신, 천’의 의미로 달라져가게 되었다.

한민족의 오랜 역사를 함축해 담고 있는 이러한 용어가 도래인들을 통해 일본열도로도 그대로 전파, ‘가무, 가미, 고무’ 등으로 사용되었다.  동검·동모나 동탁 등은 제천 의기류였기에 이들이 묻힌 곳은 신성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가무’라 불리게 된 것이었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제천을 담당했던 종족이었던 이즈모의 가무씨(加茂氏)가 야요이시대 기나이 야마토 지역의 가장 오랜 제천산인 미와(三輪)산의 제천을 담당하는 종족인 오미와씨(大三輪氏)나 모노노베씨(物部氏)와 관계가 있고 이즈모신화에 나오는 대국주신의 자손으로 칭해지고 있는 점이다.  이는 이즈모세력이 기나이지역으로 이주해들어갔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하나의 증거이다.


고진다니의 동검이나 동탁도 그렇지만 일본 열도 각처에서 발견된 동탁은 산복(山腹) 등지에 몰래 표시나지 않게 매장되었던 특징이 있었다.  그 이유로는 ‘동탁은 제사 용도로 사용되었기에 이를 사용하는 씨족이 타자에게 정복되면 이를 땅속에 묻었다’고 하는 가설이 널리 주창되어왔다.  실제로 중국 요서지역에서도 산록에 청동기를 정연하게 또는 급하게 매장한 구덩이, 이른 바 ‘교장갱(窖藏坑)’이 널리 발견되었는데 동일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제사를 극히 중시했던 고대사회에서 제기는 씨족을 상징하는 성물(聖物)이었기에 이 주장은 매우 타당성이 있다. 

이즈모 일대의 교장갱과 관련하여 특히 의미심장한 것 이 유적이  조성된 시기를 살펴보면 이즈모지역이 기나이지역에 최종적으로 복속된 연대를  추정해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이즈모 청동기 매장 유적이 조성된 시기는 대체로 A.D. 1~2세기 무렵으로 추정되었다. 가무암창 유적의 경우는 이러한 시기보다 1세기 정도 빠르게 보는 시각, 곧 기원 전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중요한 것은 스사노오에서 시작된 이즈모문명이 A.D. 1~2세기 무렵 제사권=정치권을 상실하고 기나이세력에 복속된 시점을 시사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고진다니 유적이나 가모이와쿠라 유적과 함께 한가지 더 주목해 볼 유적으로 니시다니(西谷) 고분군이 있다.  서곡 고분군은 고진다니나 가모이와쿠라와 멀지 않은 지역에 자리하여 이 일대 전체가 이즈모세력의 선조들의 무덤이 조성되고 여기에서 제천 및 선조에 제사를 올린 신성지역이었음을 알게 한다. 

니시다니 고분군에서는 고분시대 전방후원분 이전의 특이한 무덤 양식으로 알려진 ‘사우돌출형(四隅突出形) 분구묘(墳丘墓)’ 6기가 발굴되었다.  사우돌출형 분구묘는 네 귀퉁이(四隅)를 길게 돌출시킨 특이한 양식으로 큰 무덤은 돌출부까지 포함해 전체 길이가 50m가량 된다. 분구를 조성한 후에도 분구 위에 4개의 나무 기둥(솟대)을 세웠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이즈모 지역의 청동기를 매장한 세력의 수장급 무덤으로 추정되며 조성 시기는 대체로 A.D. 1~3세기로 이해된다.  또한 사우돌출형 분구묘는 이즈모가 자리한 동해안가를 따라서 산인(山陰)지역이나 호쿠리쿠(北陸) 지방까지 퍼져있는 무덤 양식이다. 무덤내 출토된 토기 면에서 양 지역의 토기가 공유되어 양 지역이 하나의 문화권이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이즈모세력의 통치권 또는 문화권을 이 일대로 설정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3세기 초반 기나이 일대에 전방후원분이 새로운 묘제로서 등장하여 일본 열도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이즈모의 특징적인 묘제인 사우돌출형 분구묘는 사라지게 된다. 


이상 청동제기 매장 유적의 매장 시기 및 사우돌출형 분구묘의 조성 하한을 통해 A.D. 1~3세기에 걸쳐 이즈모세력이 기나이세력에게 밀려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3세기로 접어들면서 기나이 일대에서는 거대한 전방후원분이 나타나는 등 기나이 세력의 정치적 위상이 급격하게 상승하게 되었지만, 그 이전의 시기 이즈모지역의 청동기문화의 수준은 일본열도에서 가장 앞섰다.  야요이 초기 문화의 중심은 무엇보다도 스사노오의 문화권이었던 이즈모문화였다고 할 수 있고 이는 기·기 신화의 내용과도 온전히 합치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