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 김수홍(61)‧노분옥 (63) 씨 내외와 큰아들 김대현(40) ‧김수정(33) 씨 부부, 손녀 민아(4)‧ 민희(2) 3대가 거실에 둘러앉았다.

▲ 힐링투게더로 봉술을 하는 김수홍 경기국학기공협회장(오른쪽)과 딸을 올렸다 내렸다하면 단련하는 큰아들 대현씨.

대현 씨가 딸 민아를 번쩍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자 동생 민희도 두 팔을 벌려 아빠에 매달린다. 대현 씨가 두 팔로 민아와 민희를 안아 올린다. 할아버지 김수홍 씨는 노란색 힐링투게더로 봉술을 한다. 노분옥 씨는 임신한 며느리 수정 씨의 등과 어깨를 손으로 주물러 풀어준다.

전날 안양시청에서 열린 ‘대한체육회장기 전국 국학기공대회’를 치른 경기국학기공협회 김수홍 회장과 이 대회에서 음악감독을 맡았던 대현 씨는 어제 행사를 화제 삼았다. 경남 진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대현 씨는 토요일이지만 휴가를 내어 대회에 참가했다.

“6월 초 생활체육대축전 전국 국학기공대회에 연이은 전국대회였네요. 주최지역이 경기도라 준비하느라 고생하셨어요. 아버지.”

“너도 수고했다. 지역마다 자체적으로 대회를 준비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야 하는데 베테랑 음악감독은 양성하기가 쉽지 않아.”

“저야 영광이죠. 그래도 후배를 많이 양성할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국학기공대회에서는 출전 선수단의 공연과 음악이 서로 잘 맞아야 한다. 꼼꼼하게 준비하고 대처능력이 뛰어난 대현 씨가 매년 중요 대회 때마다 음악을 담당한다.

▲ 할아버지와 아빠가 하는 체조를 함께 하고 싶어하는 큰 손녀 민아양.

김수홍 회장과 대현 씨는 힐링투게더 2개로 서로 밀고 당기며 피로가 쌓인 몸을 풀었다.

“풍차돌리기 한 번 해보자.” 김 회장의 제안으로 풍차돌리기 체조를 하며 온 몸의 관절과 근육을 긴장시켰다 풀며 단련했다.

“힐링투게더로는 무궁무진한 동작을 만들 수 있네요. 가슴부터 등까지, 머리부터 허리, 다리까지 다 시원하네요.”

이때 아빠바라기인 큰딸 민아가 할아버지와 아빠가 서로 당기고 있는 힐링투게더에 매달렸다. 같이 놀아달라는 것이다. 언니 따라쟁이 둘째 민희도 함께 매달리자 두 아이를 받쳐 그네를 태워주는 두 사람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직접 몸을 부딪치며 놀아주는 가운데 아이들은 해맑고 쾌활했다. 하지만 손님이 오면 현관까지 달려가 두 손을 배꼽에 모으고 인사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 아들 대현 씨와 함께 두 손녀를 그네 태우며 흐뭇해 하는 김수홍 회장.

셋째 아이를 임신한 수정 씨의 등과 어깨를 풀며 노분옥 씨가 물었다.

“아이를 가지면 등과 어깨도 굳고 고관절도 아프지?”

“맞아요. 허벅지도 아파요. 평소에 배꼽힐링기로 어깨랑 고관절, 다리를 수시로 문질러주는데 등은 역시 어머니가 해주는 게 제일 시원해요.”

며느리와 한 집에서 산지도 1년 반이 되었다. 큰 아들이 진주에서 근무하면서 주말부부가 된 수정 씨가 혼자 두 아이를 키우는 게 분옥 씨는 걱정되었다. 그때 아들이 함께 살고 싶다고 제안했다. 대현 씨는 “저도 어렸을 때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결혼하면 함께 살았으면 했어요.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다 젊지만 언젠가는 모셨으면 했죠.”라고 이유를 밝혔다.

분옥 씨가 며느리에게 ‘들어올래?’ 넌지시 묻자, 수정 씨는 망설임 없이 ‘네’라고 했다.

“아들만 셋이어서 딸이 꼭 있었으면 했는데, 딸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은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다’며 꿈을 깨라고 했지만 꼭 그렇게 하고 싶었다.”

출산예정일을 1주일을 앞두고 수정 씨가 이사를 했다. 그날 수정 씨는 둘째 민희를 낳았다.

“네가 ‘통증이 조금 있어요. 잠깐 병원 다녀올게요’ 하고 나가서 30분 만에 아이 낳았다고 해서 얼마나 놀랬는지”

“어머니가 바깥일로 바쁜 데도 조리원에 와서 돌봐주고 미역국 끓여주고 하셔서 얼마나 좋았는데요”

노분옥 씨는 우리 역사‧문화‧철학을 바탕으로 한 국학교육과 행사를 하는 경기국학원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 시어머니 노분옥 씨는 힐링투게더를 활용해 셋째를 임신한 며느리 수정 씨의 등을 풀어주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대화가 이어졌다. “1년 반이 지났는데 함께 살아 보니까 어때. 힘들지?” “처음에는 긴장도 되었는데 워낙 잘해주셨잖아요.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도 많이 받고. 아이들이 얼마나 따르는지 몰라요.”

“나도 시어머니랑 살아봐서 힘든 것, 좋았던 것 거울삼아 잘해주려 했어. 처음에 ‘수정아’ 이름만 불러도 네가 긴장할 때 눈치보고 어려워하는 것 같아 안쓰러웠어.” 그는 시집살이를 할 때 하루 종일 힘들어도 시어머니가 잠들 때까지 꼬박 기다렸다 자곤 했다고 한다.

수정 씨는 “처음에 저도 예의를 지켜야할 것 같고 해서 어려웠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네가 그렇게 긴장하면 어떻게 편하게 함께 하겠냐’고 계속 다독여주셨잖아요. 지금은 ‘어머니, 이건 이렇게 하고 싶고 이건 싫어요’ 라고 제 의견도 낼 만큼 편안해졌어요.”라고 했다.

함께 살면서 서로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제가 살림솜씨가 하도 없어서 음식을 할 때 요리책을 보고 온종일 하는데 맛이 없거나 태우거나 했잖아요. 어머니는 뚝딱 뚝딱 하시는데요.(하하) 지금은 어머님 덕에 살림솜씨도 늘었어요. 따로 살 때는 남편이 일하고 들어와서 아이 봐주느라 피곤해했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아이들을 돌봐주어서 셋째가 생긴 게 아닐까요?(하하)”라는 수정 씨는 웃음이 참 많은 며느리였다. “게다가 아이가 아프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데 어머님은 여유 있게 대처해주셨어요. 많이 알려주시니 안심도 되고 고마웠어요.”

▲ "임신하면 힘든 점이 많지"라고 알아주는 시어머니 노분옥 씨(오른쪽)와 며느리 김수정 씨.

분옥 씨는 “나는 수정이를 통해서 세상 살아가는 눈이 더 크고 깊어진 것 같아. 예전에는 집이 항상 깔끔해야 하고 흐트러지거나 정석대로 안 되어 있으면 예민했지.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면 꼭 그렇게 되지 않잖아. 많이 어질러지고. 수정이랑 함께 살면서 둥글둥글하게 ‘아, 세상이 이건 맞고, 이건 틀리다가 아니라 소통하고 사랑하면서 그냥 살면 되는 구나’ 이런 걸 배운 것 같아”라고 답했다.

분옥 씨는 “나도 시어머니랑 3년 정도 살게 되니, 정도 깊어지고 시댁식구 성향도 알아버리니까 나중에는 시댁 갈 때 서먹서먹하지 않고 친정식구 같더라. 시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실 때까지 모셨는데 후회는 없었어. 몸은 좀 힘들었어도. 함께 살아보지 않으면 그런 정은 생기지 않는 것 같아”라고 했다.

그가 며느리에게 “주말 부부라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수정 씨는 “처음엔 외로웠는데 지금은 오랜만에 한 번씩 보니 애틋해요. 어머니도 주말부부 해보셨잖아요. 어떠셨어요?”라고 되물었다.

노 씨는 “네 시아버지가 결혼해서 초창기에는 혼자 대문 밖도 못 나가게 할 정도로 늘 함께했지. 그러다 나는 경남 창원에서 시어머니랑 살고, 남편만 서울에서 근무하면서 3년 정도 떨어져 있었어. 그 때 외롭고 힘들었어.”라며 “우리 시어머니가 절세미인이셨는데 성격이 좀 많이 까탈스러웠지.(웃음) 그때 뇌교육 명상수련을 했어. 정말 열심히 100일째 수련하고 나니 시어머니가 그렇게 예뻐 보이더구나. 시어머니와 원만하게 지내고 자신감 있게 사는 모습을 보고 네 시아버지도 함께 수련을 시작했지. 주말부부로 힘든 시간이 아니었으면 지금 같지 않았을걸”이라고 했다.

며느리 수정 씨도 직장생활을 할 때 스트레스가 심해 운동을 하려고 들렀던 곳이 단월드였다. 남편 대현 씨와 청년들의 명상캠프에서 만났다. 가족 모두가 명상가족인 셈이다.

지금 분옥 씨에게 며느리가 딸 같을까? 분옥 씨는 “내 딸이다. 이렇게 늘 생각했는데, 지난번 사돈어른이 와 계실 때 너랑 마주 앉아 스스럼없이 이야기 나누는 걸 보니 잠깐 서운하던 걸. 현실은 현실이구나 하고. 이젠 과욕부리지 않고 그냥 사랑하기로 했어”라며 크게 웃었다.

수정 씨는 “어머님이 할머니로 안보이잖아요. 외모도 젊지만 센스가 넘치시죠. 다른 어머니랑 달라서 소통하기가 쉬웠던 것 같아요. 사업하면서 국학기공 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아버님이나 경기국학원에서 바쁘게 대외활동하고 봉사활동하시는 어머님을 보면 ‘아, 우리가 따라갈 수 있나?’ 존경심이 들어요. 다른 건 바랄 게 없고, 두 분 모두 건강하셨으면 해요”라고 했다.

▲ 가슴 위쪽 중부혈자리를 풀면서 노분옥 씨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큰 며느리 김수정 씨(왼쪽).

재작년 말 노분옥 씨가 많이 아팠다. 누구보다 건강하다고 병원에서도 보장 받았는데, 맹장수술, 자궁수술 두 번을 하고나서 당뇨가 왔다. 정말 많이 아프고 힘들어서 의욕조차 없었다. 

김수홍 씨는 “올해가 환갑이다. 이제 새로운 60년을 선택했다. 그동안 해왔던 것을 발판으로 세상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다. 최선의 가치를 삶 속에서 실현할 생각이다. 그러려니 건강도 지켜야겠고”라고 했다.

노분옥 씨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일을 하자는 오랜 꿈이 있었다.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들과 함께 가족홍익봉사단을 만드는 것이다. 아들 셋 내외와 태어난 손자 4명, 그리고 곧 태어날 손자까지 모두 13명이다. 아들들 내외 중 의사, 간호사도 있고, 물리치료사가 두 명이고, 나는 사회복지사 2급, 수정이는 사회복지사 1급이다.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돕고 상담하는 것을 꿈 꿨다. 뉴질랜드 명상여행을 하면서 그 꿈이 확실해졌다. 하나씩 실천하려고 한다. 그러려면 내 건강은 내가 챙길 수 있어야 한다.”며 가족들이 서로 힐링하고 운동하는 시간을 즐긴다고 했다.

아들 대현 씨는 “내년정도에는 민아도 국학기공을 배워서 부모님, 우리 부부, 아이들 3세대가 모두 국학기공 대회 무대에 서자”고 제안했다.

우리나라 가정구조가 핵가족화 되고 점점 1인가구로 변화한다. 학업, 직장 등으로 바쁜 가운데 대화를 하지 않는 게 일상화 되고, 함께 사는 것을 불편해하기도 한다. 알게 모르게 ‘세대 단절’이라는 말이 번진다.

그러나 3세대가 한 집에 살기 때문에 서로 어깨를 보듬고 지혜를 나누며 부족한 점을 메워주는 대가족만의 크나큰 장점이 있다. 정을 쌓고 가까워지기 위해 서로가 힐링하고 함께 운동하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일상의 삶에서 보여주는 부모, 자식 사이에 서로 사랑하고 소통하는 모습이 아이들을 건강하고 바르게 성장하게 할 것이다.

글. 사진  강나리 기자 / 정리. 김영철 청년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