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래혁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뇌교육융합학부 교수.

밥에 나물·고기·고명·양념 등을 넣어 참기름으로 섞은 비빔밥. 외국인들에게 김치, 불고기와 더불어 외국 항공사에서도 기내식으로 제공할 만큼 인기가 높은 한류 대표 음식이다. 재료와 빛깔, 요리 형태도 특별한 비빔밥은 뇌의 ‘창의성Creativity’ 발현 과정과 비슷한 요소가 많다. 생활 속에서 흔히 접하는 브레인 푸드, 비빔밥에 담긴 뇌의 특성을 살펴보자.

#1 백화요란百花燎亂, 시각적 유희가 뇌를 자극한다

비빔밥이 갖는 첫 번째 뇌의 특징은 바로 ‘시각적 자극’이 대단히 높은 음식이라는 점이다. 비빔밥은 원래 골동반骨同飯 혹은 화반花飯으로 불렸다. 골동반은 ‘어지럽게 섞는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고, 화반은 ‘꽃밥’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뇌는 기본적으로 오감을 통해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이 중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시각’이다. 무려 80~90%를 시각정보가 담당한다. 오색찬란한 색깔과 형태를 갖춘 비빔밥의 요소는 망막을 통해 여러 전달 경로를 거쳐 뇌의 시각 영역에 해당하는 후두엽Occipital Lobes에 도착한 후, 뇌 속에서 전체적인 이미지로 재구성된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뇌로 비빔밥을 ‘본다’라는 표현이 과학적으로는 보다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 비빔밥에는 뇌의 창의성을 발현과 관련한 5가지 비밀이 담겨있다.

결국 선명하고도 강렬한 시각적 요소를 가진 비빔밥은 입에 넣기도 전에 이미 우리의 뇌에 충분한 시각적 유희를 불러일으키는 셈이다. 음식에 있어 시각적 요소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비빔밥은 분명 남다른 구석이 있다. 음식 재료들이 발산하는 빛깔이 선명하고 다양하게 어우러져, 비빔밥은 실제로는 더 화려해서 백화요란百花燎亂, 즉 ‘온갖 꽃이 불타오르듯이 찬란하게 핀다’고 표현하기도 할 정도이니 말이다.

#2 플라세보 효과, 긍정 심리 효과 일으키는 특별한 요리 과정

여기에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비빔밥의 특징 중 하나가 완성품을 내오는 대부분의 음식과 달리, 먹을 사람이 ‘직접’ 일정 시간 동안 최종 요리 과정에 참여한다는데 있다. 여기에서 이른바 마음에 의한 뇌의 긍정적 변화를 가져오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가 일어난다.

‘플라세보 효과’는 간단히 말하면 약물 효과가 없는 가짜 약으로 얻는 치료 효과를 일컫는다. 실제 가짜 약으로도 약 30%의 효과를 얻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에는 심리적 반응으로만 여겼던 이 플라세보 효과가 실제 뇌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올 만큼 긍정적 마음이 신체에 미치는 심신의학의 대표적 현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비빔밥을 비비는 과정에서 입에 침이 도는 것은 잠시 후에 입안으로 넘어갈 결과에 대한 ‘상상’이라는 뇌 현상이 인체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 상상에 대한 생생함과 구체성, 몰입도가 ‘플라세보 효과’의 강도에 차이를 가져오리라는 생각도 쉽게 이해된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비비는 음식이 맛이 없을 거라는 생각은 일반적으로 하지 않으니 비빔밥의 요리 과정이 무의식적으로 긍정적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3 정보의 통합과 융합, 섞고 비비다

다음으로 비빔밥은 국적 음식문화의 원리와 특징이 잘 드러나는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데, 전 세계에 우리나라처럼 섞고, 비비고, 끊이는 음식 문화가 발달한 나라도 드물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섞고 비비는 비빔밥의 요리 특성을 뇌과학 차원에서 한번 들여다보자.

인간의 뇌는 간단히 말하면 외부로부터 정보를 입력받고 처리하고 출력하는 ‘정보 처리 기관’이라 할 수 있는데, 이 관점에서 보자면 ‘창의성’이란 고차적원 뇌 기능은 뇌에 저장된 수많은 정보의 축적을 바탕으로 결과적으로 새로운 정보의 발현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보의 축적이 이루어졌다고 가정할 때 창조의 과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통합’과 ‘융합’인데, 비빔밥에 바로 이 핵심적 발현 과정이 깃들어 있다.

비빔밥은 서로 다른 이질적 음식 재료들이 고추장, 참기름과 함께 버무려지면서 하나의 새로운 음식으로 재탄생한다. 이질적 정보들이 물리적으로 섞여 이후에 원래의 정보들이 가졌던 속성이 유지되는 경우가 ‘통합’이고, 그 정보들이 새로운 형태 혹은 속성으로 변화되는 화학적 결합 과정을 ‘융합’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비빔밥은 통합일까, 융합일까?

재료들의 속성과 형태가 변하지는 않으니 통합형 음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래의 속성은 변하지 않았으나 ‘섞고 비비는’ 과정을 통해 맛은 전혀 다른 속성을 가진 것으로 바뀌었다. 요리를 끝낸 음식을 먹어보면 그 변화된 속성을 ‘느낌’으로 자각할 수 있다. 요리할 때는 통합, 먹을 때는 융합의 특성을 가진 비빔밥은 어찌 됐든, 다양한 정보의 통합과 융합이라는 창의성 발현 과정을 고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4 기존 정보의 승화, 촉매 역할의 고추장과 참기름

여기에 비빔밥이 갖는 창의적 요소가 또 하나 있다. 기본적으로 비빔밥이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이유 중 하나가 음식학자들이 보편적으로 얘기하는 건강음식이라는 점이다. 보통 채소와 고기의 비율이 8 대 2면 건강식이라는데 비빔밥은 거의 근접하거나, 오히려 더 뛰어난 재료와 구성비를 가졌다. 하지만 여기에 더 중요한 것이 비빔밥은 바로 최고의 건강식 재료가 단순히 섞이는 데 있지 않다는 점이다.

▲ 우리의 비빔밥은 식재료들이 발산하는 빛깔이 선명하고 다양하여 백화요란, 즉 '온갖 꽃이 불타오르듯이 찬란하게 핀다'고 표현한다.

바로 고추장과 참기름의 역할인데, 섞고 비비는 과정을 통해 음식이 고유의 맛을 잃는다면 그 의미가 퇴색될 것이다. 창의성이란 다양한 정보의 통합과 융합 과정을 통해, 기존에 가진 정보들의 내재적 속성보다 한 단계 나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빔밥은 특별하다. 다양한 건강식 재료가 고추장, 참기름과 만나면서 새로운 차원의 ‘맛’을 낸다. 섞고 비비는 정보의 통합 과정을 좀 더 밀도 깊게 할 뿐만 아니라 기존 정보를 뛰어넘는 새로운 정보를 창출하는 셈이다. 비빔밥 맛의 비밀이자, 기존 정보의 통합과 융합 과정을 넘은 ‘승화’의 단계라 할 만하다.

#5 기존 질서의 파괴와 창조, 창의성의 조건

마지막으로 비빔밥에 담긴 창의적 요소 중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바로 기존 질서의 파괴와 창조이다. 비빔밥은 식재료들이 발산하는 빛깔이 선명하고 다양하게 어우러진 음식으로 유명하다. 실제로는 더 화려해서 앞서 표현한 대로 백화요란百花燎亂 즉, 온갖 꽃이 불타오르듯이 찬란하게 핀다’라고 표현하기도 할 정도이다. 뇌에 주는 시각적 자극이 그만큼 충만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특이한 것은 꽃이 만발한 것처럼 예쁜 이 수려한 음식을 먹기 위해선 반드시 그 아름다움을 ‘파괴’해야 한다는 점이다. 스스로가 넣은 고추장으로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는 셈이다. 하지만 그 파괴는 단순한 무너뜨림이 아니라 새로운 승화된 ‘맛’을 내기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창의성 발현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가 기존의 사고 패턴, 행동 양식 등 기존 질서를 벗어나는 의식과 행동에 기초한다고 보면, 그 빛깔이 주는 아름다움을 과감하게 무너뜨리고 새로운 변화를 위한 선택 과정 그리고 승화된 맛에 담긴 의미는 더욱 남다르다. 미래의 나의 모습이 현재의 나보다 성장하길 바라는 것이 ‘희망’이라면, 보다 나은 ‘변화’를 위해 때로는 기존의 것을 과감히 내려놓거나 새롭게 바라보는 용기와 사고의 전환을 가져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비빔밥에 담긴 두뇌의 비밀 뿐 아니라 젓가락을 사용하는 동아시아 3국 중에서도 유일하게 쇠 젓가락을 사용하는 남다른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다. 또한 ‘도리도리, 곤지곤지, 지암지암(잼잼)’ 등 한민족 전통의 두뇌육아법으로 알려진 ‘단동십훈’ 등 선조들의 오랜 생활문화 속에는 두뇌 친화적 요소가 남다르게 발견된다. 21세기 뇌융합시대를 맞이해, 인간 뇌의 올바른 활용과 계발을 위한 뇌교육이 한국에서 가장 앞서 정립된 역사 문화적 배경을 엿볼 수 있지는 않을까. 흔히 먹을 수 있는 비빔밥을 섞으면서 말이다.

글. 장래혁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뇌교육융합학부 교수, <브레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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