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를 지나 이제 막 어른이 되는 아들과 엄마가 서로를 알아가는 진지한 대화의 기회를 잡았다. 장숙희(52) 씨는 독립하려는 아들 진석원(20, 대학 1년) 군과 ‘생활도 불규칙한 네가 무슨 독립이냐’며 역정을 낸 아버지가 심하게 부딪힌 다음날, 마음 상한 아들을 위로할 겸 노란색 힐링투게더를 꺼내들고 배꼽힐링 건강법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 아들을 힐링하면서 아들의 꿈을 듣고 흔쾌히 인정해주는 장숙희 씨.

엄마는 아들의 굳은 어깨를 풀어주며 어릴 적 이야기를 꺼냈다. “네가 6살 때부터 엄마가 일을 열심히 하느라 혼자 둔 게 15년이나 됐더라. 초등학생인데 파주에서 덕양까지 버스를 두세 번씩 타고 다니면서도 힘들다 하지도 않고. 참 미안하고 고마웠어. 항상 엄마 생각해서 ‘괜찮다’고 의연하게 말해 준 게 생각나.” 당시 큰 딸의 모세기관지염과 경제여건 때문에 공기 좋은 헤이리 마을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석원이는 “나 진짜 별로 힘들지 않았어.”라고 쑥스러운 듯 답하며, 힐링투게더로 등과 척추를 문질러 주는 엄마의 손길에 “아~! 조금 아픈데 엄청 시원해”라고 했다.

장숙희 씨가 “엄마가 널 가졌을 때 뱃속에서 굉장히 조용했어. 막상 날 때는 굉장히 미적거렸는데 나와서는 병원 한번 안가고 건강하게 자랐어”라고 하자 석원 군은 “그럼 누나는 낳았을 때랑 나 낳았을 때 달랐어?”라고 물었다.

그러자 숙희 씨는 “넌 꼭 누나랑 비교하더라. 어렸을 때 집에 누나이름으로 ‘가을이네’라고 문패를 붙이니, ‘내 집은?’이라고 했잖아.”라며 큰소리로 웃었다. “누나가 나올 때는 한꺼번에 쏟아지듯 나오는데 환희심이 물밀 듯 밀려오더라. 넌 그런 느낌은 없었지만 이후에 늘 엄마에겐 네가 믿음직했어”라고 했다.

▲ 엄마와 아들이 서로의 배꼽을 힐링투게더로 연결하고, 태아일때 탯줄로 연결되어 뱃속에서 놀던 모습을 상상하며 하는 명상시간.

장숙희 씨는 아들을 가졌을 때 이야기를 꺼낸 김에 힐링투게더로 특별한 배꼽힐링 명상을 제안했다. “배꼽은 어릴 적 너와 내가 탯줄로 연결된 고리였어. 옛날 선조들은 탯줄을 보관했다가 정말 죽을 듯 숨이 넘어갈 때 비상약으로도 썼대.” 그는 아들과 힐링투게더로 배꼽과 배꼽을 연결한 상태에서 눈을 살짝 감고 석원이가 태아로 배속에서 양수에 동동 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깊은 호흡을 하고 서로 밀고 당겼다.

“양수 속에서 웃기도 하고 찡그리기도 했지. 조금 리듬을 줘 볼께”라며 서로 힘을 주고 빼며 어느새 편안한 조화를 이뤘다. 두 사람은 다양하게 동작을 바꾸었다. 가슴을 풀면서 석원이는 “아플 줄 알았는데 뭔가 쑤욱 편안하게 들어오는데. 답답한 느낌이 사라지고”라고 했다.

석원이는 “엄마 나이에 보통 갱년기가 오잖아. 우울해진다는데 엄마는 어때? 힘들지 않아”라고 걱정을 했다. 숙희 씨는 “폐경이란 단어를 들으면 약간 슬프더라. 완성된다는 의미로 '완경'이라 쓰는 것이 더 좋더라구. 중요한 몸의 변화인데 준비 없이 맞았더니 기분이 오르내리기도 하고 작은 일에 섭섭함도 올라왔지.(하하) 예전보다 개운치 않았어. 그래도 엄마는 뇌교육 명상을 했으니까 정도가 덜했지. 나는 준비하지 못했지만 갱년기를 앞둔 사람들에게 몸이나 마음을 준비하고 건강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목표가 생겼어.”라고 했다.

석원이는 엄마에게 평소 궁금한 것을 물었다. “엄마는 뇌교육 명상을 왜 시작하게 되었어? 어릴 때 누나랑 뇌교육 수업도 시켜주었잖아.”

숙희 씨는 “엄마가 40대 초반에 ‘척추경화’라고 목부터 다리까지 굳어가며 고생을 많이 했을 때 뇌교육 명상수련을 하면서 많이 좋아졌지. 갑상선 이상일 때도, 마음이 참 힘들 때도 도움이 되었고. 건강도 좋아졌지만 나 자신을 성찰하면서 나의 가치와 살면서 이루고 싶은 꿈을 갖게 해주었어. 그래서 아이들에게 건강한 뇌, 행복한 뇌를 만들고 활용하는 것을 가르치는 뇌교육 선생님이 되었지. 사랑하는 아들, 딸에게는 최고로 좋은 걸 해주고 싶은 게 부모마음이지.” 석원이는 뇌교육을 하면서 아토피도 낫고 손톱을 상처 날 때까지 물어뜯거나 화를 내며 소리 지르는 습관들이 없어졌다고 했다.

▲ 전날 밤을 지새고 수업과제를 한 아들의 등을 풀어주는 모습.

엄마가 아들의 꿈을 물었다. “축구선수도 있었고, 우주비행사, 경영컨설턴트. 여러 번 꿈이 바뀌었는데 꿈을 찾았어?” 석원이는 “박지성 선수보며 축구선수는 그때 남자아이 공통의 꿈이었잖아.(웃음) 태어나서 이거는 꼭 한번 해보자는 꿈은 아직 없어. 어릴 때는 꿈이라면 당연히 직업 같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내 나이 20대 10년 동안 하고 싶은 일들을 다해보고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지 방향을 잡는 시기로 살고 싶어”라고 했다.

숙희 씨는 “어떤 도전을 하면서 방향을 모색하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라고 하자 석원이는 요즘 타투를 배운다고 했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더라구. 그걸 새긴다는 것 자체가 매력적”이라고 했다. 숙희 씨는 “최근에 뉴질랜드 얼스 빌리지를 갔더니, 마오리 족이 자기 조상의 역사를 몸에 남기는 게 타투였다고 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랐어. 네가 타투이스트를 한다는 것도 지지해”라며 시원하게 인정하고, “여행가이드도 해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라고 물었다.

석원이는 “나는 여행을 많이 하고 싶은 거야. 쓱 한번 둘러보고 오는 게 아니라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녹아들어보고 싶은 거야. 그렇게 여행을 하다 자신감이 생기면 여행가이드가 될 거야. 10년 동안은 아빠가 뭐라고 해도 하고 싶은 걸 다하고 싶어. 직업은 살면서 계속 바뀔 수 있는 거라 생각해.”라고 소신을 밝혔다. 엄마는 “아빠나 어른들은 그걸 불안하게 보는 것 같아. 사회 구조가 나를 보증해 줄 뭔가가 필요하다고 하지. 지금 다니는 대안대학에서 충분히 배우고 더 필요해지면 그때 더 배워도 좋고.”라고 지지를 보냈다.

▲ "아들, 등을 쭈욱 펴고"라며 석원 군의 어깨와 등을 힐링투게더로 풀어주는 모습.

석원이는 “엄마 20대 때는 어땠어?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았는지, 어떤 꿈이 있었는지 궁금해”라고 물었다. 숙희 씨는 “ 아주 어릴 땐 외교관이 되고 싶었지. 그러나 대학 들어와서는 점점 그런 꿈들을 버렸고. 내가 대학 다닐 때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80년대였어. 엄마도 관심이 많았어. 잘못된 세상의 사회질서를 바꾸고, 힘없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어”라고 젊은 시절을 이야기했다.


석원이는 “그래서 지금은 지구시민운동에 관심을 갖는 거야?”라고 묻자 숙희 씨는 “결혼하고 너희를 키우며 생활인이 되고 여러 개혁적인 분야에 관심이 많았지. 지구온난화와 관련해 남아공에서 열린 유엔 서미트에도 참여하고. 그런데 뇌교육 명상수련을 하면서 보니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 총장께서 이미 2001년에 엘 고어 전 미국부통령과 함께 지구온난화를 논의하고 지구시민 선언문을 채택했더구나. 나는 지구와 나, 자연과 내가 분리되지 않은 존재라는 선언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어.”라고 했다.


그녀는 대학생 때 농촌봉사활동 갔던 추억을 꺼냈다. “수박밭에서 거름을 주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을 하다 보니 밭 한가운데서 엎드려 잠이 들었어. 아무도 깨우지 않아서 흙과 하나 돼서 곤히 잤어. 따뜻한 흙의 느낌이 살아있었고 마치 자연과 내가 분리되지 않고 어머니 품에서 힐링을 받는 것 같았어. 그런 경험을 뇌교육 지도자과정을 마쳤을 때 다시 느꼈어. 스무 살과 마흔 두 살에 같은 경험을 한 거지.”

▲ 아들 진석원 군은 어머니 장숙희 씨가 이루고 싶은 구체적인 꿈을 듣고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라며 응원했다.

그는 “뉴질랜드에서는 먹는 에너지바의 상표도 ‘마더 어스(mother earth)’라고 붙어있었어. 지구를 어머니라고 여기는 마음이 생활 속에 들어 있었어. 지구와 인류를 위한 행동을 하는 일을 하고 싶어”라고 했다. 그리고 아들에게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주는 스승을 만났는데 너도 네 삶에서 그런 스승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들은 또 물었다. “엄마가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어? 엄마의 꿈이 있어요?” 숙희 씨는 “우리 전통에 서로 돕는 두레, 품앗이라는 게 있었잖아. 나는 사람들이 병원이라는 의료시스템이 아니더라도 평소 생활 속에서 서로 돕는 힐링 품앗이 공간을 만들고 싶어. 어릴 적 외할머니가 마을사람이 다치고 아프면 잘 고쳐주고 도와주셨는데 어린 마음에는 왠지 무섭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자꾸 그런 일을 하고 싶어. 도심 안에서 건강한 음식도 해먹고 체조나 건강법도 나누는 힐링품앗이 공간을 확산하고 싶어. 엄마 친구들은 지금 와서 뭘 해보려니 식당밖에 없다고 자조하는데 함께 일자리도 만들고 아이들도, 세상도 보듬는 그런 일자리 공간을 만들고 싶은 거야. 복싱 좋아하는 너도 클래스를 열고, 누나도 요가 클래스를 하고 하면 좋겠다. 아빠가 정년퇴직까지 4년 정도 남았는데 그 사이 돕고 시작하면 멀지 않은 일이 될 거야”라고 밝혔다.

석원 군은 “어렴풋하게 엄마가 하고 싶어 하는 걸 알았는데 과연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어. 그런데 오늘 들어보니까 멀리 있는 꿈은 아닌 것 같아. 어릴 때부터 엄마를 봐 왔잖아. 힘들 때도 많았고 고생 많이 했잖아. 지구와 세상을 바꾸는 것도 좋은데 우선은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라며 “건강한 먹거리, 환경에 관심 갖는 엄마 덕분에 건강하게 잘 자랐어. 고마워 엄마.”라며 엄마의 꿈을 응원한다고 했다.

숙희 씨는 “엄마도 갱년기를 겪었지만 아빠도 갱년기를 맞이하고 있어. 아빠에게 가부장적이라고 하는 데, 조금씩 약해지고 있어. 평생을 강직하고 열심히 살아온 아빠의 삶도 조금은 이해해주었으면 해”라고 부탁을 했다. 석원 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 서로 힐링하고 함께 배꼽힐링을 하면서 이제 막 성인이 된 아들 석원 군(오른쪽)과 허심탄회한 속내를 나누게 되었다는 장숙희 씨(왼쪽).

끝으로 숙희 씨는 힐링투게더를 가지고 함께 수련을 하면서 아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평소에 ‘이런 일을 할 건데 지원해 줄 거냐?’고 묻고 싶지만 말 꺼내기가 어렵다. 남들에게는 내가 강해보이지만 자식들에게 묻는 게 겁날 때가 있다”며 “혹시 아이의 말에 상처받을까 두렵고, 많이 말하면 튕겨 나갈까봐 망설여지고. 그런데 서로 힐링해주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편안하게 깊은 속내를 말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글=강나리 기자 / 사진 및 정리= 김민석 청년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