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려의 서북 국경이 《고려사》의 오기(誤記)라는 주장이 나왔다.

윤한택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 연구 교수는 지난 11일 서울시청 시민청 바스락홀에서 열린 제168차 국민강좌에서 "당대 고려의 서북 국경은 요(遼, 거란)∙금(金)∙원(元) 세 나라가 인정한 기록이 있다. 그럼에도 고려의 서북 국경이 현재 압록강에서 동으로 함경도 원산만이라는 것이 정설로 여겨왔다"고 비판했다. 

이날 그는 '고려가 중시한 평양은 서경이 아니다'를 주제로 일제가 왜곡한 《고려사》에 실린 영토 문제를 재조명했다.

▲ 제168차 국민강좌가 지난 11일 서울시청 시민청 바스락홀에서 열렸다.이날 윤한택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 연구 교수가 강사로 나섰다.

고려의 국경이 이렇게 굳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윤 교수는 "그 일차적인 전거는 조선 초 성리학자들이 편찬한 《고려사》였고, 근대에 들어 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조선 후기 사대·모화주의 학자들 일부와 훗날 조선총독부 주관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가 기정사실로 했다. 중국의 동북공정도 일제가 왜곡한 한국사가 바탕이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과거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발언 또한 마찬가지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고려사》에 표기된 고려 서북 국경은 푸를록 綠 자를 써 압록(鴨綠)이라고 되어 있다. 현재 압록강에서 원산만 이남 지역만 고려의 땅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당시 고려와 국경을 맞댄 요나라의 역사책인 요사(遼史)에 따르면 이는 현재의 압록강이 아니라 압록강(鴨淥江) 즉, 현 랴오허(遼河, 요하) 강의 지류다. 

윤 교수는 "요사뿐 아니라 원사(元史), 금사(金史), 민간기록 등을 비교하여 논증한 결과에 따르면, 기존 압록강(鴨綠江) 아래쪽으로 정해져 왔던 강동 6주, 북경장성(천리장성), 서경 등이 모두 국경선 압록강(鴨淥江)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 국경선 압록강(鴨淥江)은 현 랴오허의 철령 부근 지류이며, 압록강(鴨綠江)은 북한과 중국 국경선에 있는 강이다. 그러나 요사에서도 후대로 갈수록 압록강을 푸를록자로 기록하면서 역사 왜곡이 진행되어 갔다"고 말했다.

▲ 윤한택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 연구 교수는 "고려의 서북 국경은 현재 압록강이 아닌, 현 랴오허 강의 지류"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윤 교수는 압록강(鴨淥江)으로 추정되는 랴오허강 근처에 천리장성이 있었다는 증거도 확보했다. 그는 "1084년 시점 요 변경 파수병 현황에 따르면 1부(府), 1주(州), 2성(城), 70보(堡), 8영에 2만 2천여 명의 군사가 배치되어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동경(東京)에서 압록강(鴨淥江) 서북봉(西北峰)까지'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동경은 현 랴오량시를 가리킨다."라고 밝혔다.

윤 교수에 따르면, 현 압록강(鴨綠江)은 당시 국경선 영토를 지키기 위한 후방 방어선이었다. 그는 "아마도 고려가 현 랴오허강인 압록강(鴨淥江)변에 보주를 설치하여 요와의 국경으로 삼았고, 현종 6년(1015)년경 요에서 침범하여 선의군절도에 소속시키고 있다가, 예종 12년(1117년) 요가 금에 의해 쫓겨나 다시 고려에 재귀속되면서, 후방 방어거점인 압록강(鴨綠江)변 의주에 축성하여 의주방어사 소속으로 개편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 현재 인식되고 있는 고려 천리장성 위치도(왼쪽)와 사료고증에 의한 고려 천리장성 위치도(오른쪽) <자료제공=윤한택 연구 교수>

윤 교수는 "확실한 것은 고려의 서북 국경이 현 압록강이 아닌, 랴오허의 압록강이라는 것"이라며 "이는 고려 건국 초기인 태조 왕건(太祖 王建)부터 조선 초 태조 이성계(太祖 李成桂)까지 변함없는 부분이었다. 따라서 고려 국경에 관해 왜곡된 부분을 정정하고, 국민들의 인식을 다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 달 제169차 국민강좌는 제72주년 광복절을 기념하여 8월 14일 저녁 7시부터 세종로 공원 야외무대에서 전야제로 시행된다. 이날 강연은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