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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저장소는 잊어라, 기억은 미래 계획을 돕는 유능한 조수[신간] 한나 모니어ㆍ마르틴 게스한 지음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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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0  16:09:50
정유철 기자  |  k-spirit@naver.com

 기억을 우리가 배우고 경험한 것을 저장한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이미 낡았다. 뇌과학의 발달로 기억의 비밀이 밝혀낸 덕분이다. ‘기억은 과거를 향한다’라는 시각을 정반대로 돌려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로 바꾸어야 한다. 경험을 그저 서랍 속에 넣어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험을 항상 새롭게 재처리하여 미래를 위해 유용하게 만들기 위해서 존재한다. 이제 우리는 기억에 관한 이해를 철저히 뒤집어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 기억의 주요 과제는 계획 수립이라는 점, 따라서 계획 수립만큼 복잡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리고 최종 목표는 어떻게 잡다한 과거 경험으로부터 추구할 만한 미래의 전망이 발생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 표지 . <사진=문예출판사>

한나 모니어·마르틴 게스만이 함께 펴낸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전대호 옮김, 문예출판사)은 기억에 관한 연구를 종합하면서 기억의 가치를 새롭게 평가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억은 이제껏 과소평가되었으며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기억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다. 과학과 철학, 각자의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두 사람은 뇌과학에 관한 최신 이론과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기억’이 얼마나 놀라운 작용을 하는지 밝혀준다. 뇌과학자와 철학자가 만나는 접점이 ‘기억’이다.

 

기억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상식적으로 기억은 시간과 직결된다. 철학에서는 시간보다 큰 주제는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기억을 논한다는 것은 시간을 논한다는 것, 그리하여 거의 모든 것을 논한다는 것이다. 특히 ‘사람다움’이 무엇인지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시간과 기억을 이해하는 작업에 가장 많은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이 책은 기억이라는 뇌 기능을 단서로 붙들고 곧장 ‘사람다움’의 의미를 찾아간다. 이 책의 첫머리에 두 저자는 철학자와 신경생물학자의 협업을 새와 물고기의 동거에 비유한다. 당연히 어려운 결합이지만, 이 책은 이러한 결합이 의미 있었음을 드러내는 훌륭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기억 연구에서 나온 어떤 새로운 통찰들이 그런 사고의 전환을 촉구하는가라는 매우 근본적인 질문을 탐구한다.

 

이 책은 어떻게 잡다한 과거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추구할 미래 전망을 만들어내는지 밝히는 것이다. 이러한 탐구를 위해 이 책은 여러 가지 문제를 설정하고 해답을 모색한다. ‘기억 연구에서 나온 새로운 통찰들을 무엇을 의미할까?’ ‘기억의 작동 방식은 삶에 어떤 도움이 될까?’ 그리고 ‘우리가 기억을 다루는 방식에서 특별히 인간적인 측면은 무엇일까?’

 

저자는 노화와 기억의 관계를 검토한 후 망각은 수치가 아니라 진보라고 주장한다. 전반적으로 노화는 기억 능력의 쇠퇴가 아니라 재구성을 일으킨다. 노화한 기억은 우리의 삶을 제약하기는커녕 우리가 당면 과제들을 적절히 처리하고 해결하도록 돕는다. 우리가 노화한 뒤에도 기억은 여전히 우리의 미래를 위한 협력자이다.

 

 “나이를 먹으면 얻는 것도 있고 잃는 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는 이득을 얻는다. 적어도 생물학적 나이의 부정적 효과가 확연히 나타날 때까지 오랫동안 그러하다. 물론 그때가 되면 뇌세포도 결정적이며 회복 불가능한 방식으로 노화한다. 그러나 이 전환기는 85세 즈음으로 여겨질뿐더러, 개인에 따라 이 한계를 쉽게 뛰어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60세 초반까지는 확실한 능력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의 뇌가 사멸한 뒤에도 우리의 기억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와 우리 주위의 모든 타인들은 각자 나름의 기억을 보유하고 있다. 만일 그 다양한 기억들을 연결할 수 있다면 공동의 기억 풀(pool)이 생겨날 테고, 우리 각자의 개인적 기억은 그 풀에 유입될 것이다. 그렇게 풀에 유입된 개인적 기억은 타이들과 공유될 테고 그것의 원천 제공자가 사망한 뒤에도 존속할 것이다.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에 관한 연구는 뇌과학의 새로운 연구 방향 중 하나이다. 한 개인의 기억이 다른 개인의 기억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혹시 개인들의 기억이 하나로 결합되는 것이 아닌지 연구하고, 이러한 결합이 일어난다면, 우리의 개인적인 기억은 한 차원 높은 포괄적 연결망의 한 부분이 될 것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생각의 매혹적은 측면은 우리가 스스로 습득하지 않은 것들이 모종의 방식으로 우리 안에 들어 있을 가능성을 열어놓는다는 점이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집단 기억의 경험이 있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은 당시 사고를 당한 학생들의 고통과 슬픔을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새겨놓았다. 9·11 테러 당시 많은 사람들은 끔찍한 광경과 공포를 공유했다. 이러한 집단 기억은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에 흔적을 남긴다.

 

이러한 집단 기억과 함께, 기술의 발달로 기억 보조 장치들이 등장함에 따라 우리의 기억은 새로운 국면에 도달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식인들은 정교한 이론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방대한 사실들을 학습하기 위해 여러 해 동안 공부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온라인 백과사전을 이용하여 신뢰할 만한 사실 지식을 언제라도 즉시 얻을 수 있다. 위키피디아 시대에 성장한 모든 학생들 (낡은)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더는 외울 필요가 없다. 이러한 기술적 보조장치들 덕분에 지금은 우리의 기억은 많은 부담을 덜어내고 과거에 보유한 적이 없는 여유를 얻었다. 기억의 전통적인 과제인 보존은 외부 저장 시스템으로 이전되었다. 기억의 가치는 다른 분야에서 입증되어야 한다. 이제 기억은 삶을 위한 실천적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온라인 백과사전들 덕분에 지식에 접근하는 새로운 통로를 얻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 앞에 놓인 지식을 해석하는 것이다. 지식의 수집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을 모아놓은 장소로서의 기억이 아니라 해석하는 능력으로서 기억이다. 이제 사실들을 재료로 삼아서 무언가 중요한 행동을 비로소 시작할 필요가 있다. 기억은 우리의 현재 활동이 미래에 어떻게 전기될 수 있을지에 관한 시나리오들을 구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기억은 경험된 과거의 요소들을 재료로 삼아 가능한 미래 예측들을 산출하는 미래 실험실인 셈이다.

 

저자의 긴 여정을 한마디로 요약하자. 우리가 예전처럼 단순히 데이터 저장소를 모형으로 삼아서 기억을 고찰한다면, 우리는 기억을 턱없이 얕잡아 보고 기억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오히려 기억을 다재다능하고 영리한 조수로 간주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미래 계획을 돕는 조수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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