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리 청년의 목소리는 맑고 고왔다. 올해 스물한 살 캐빈이라는 청년은 동아시아에서 온 명상여행자 30여 명 앞에서 정성을 다했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청년이 부르는 마오리 어 노래를 들었다. 마오리 청년의 노래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와이포우아 숲(Waipoua Forest)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오리의 전통에 따라 그는 노래 부른 것이다. 뉴질랜드 마오리는 이 와이포우아 숲으로 들어가기 전에 숲을 관장하는 신에게 이를 알리는 의식으로 노래한다. 뜻은 몰랐지만, 청년의 모습과 노래에서 경건함이 묻어났다. 깊은 속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로 부르는 마오리 청년의 노래가 긴 여운을 남겼다. 청년은 신발을 닦고 소독하고 숲으로 들어섰다. 우리도 청년의 뒤를 따라 신발을 닦고 소독하였다. 마치 속세의 묵은 때를 씻고 정토(淨土)로 들어가는 듯했다. 지난 6월 2일 오후 와이포우아 숲 명상은 이렇게 시작됐다. 오전에 제법 쏟아지던 비로 숲은 물기를 머금었다.

▲ 한 나무에서 나와 함께 자란 네 자매 카우리 나무.

 

숲속은 나무 데크 길로만 가야 한다. 카우리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이 다니는 길을 나무 데크로 만들었다. 카우리가 그냥 나무가 아니라 생명임이 실감났다. 우리보다 훨씬 이전부터 있는 생명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길옆으로 카우리 나무가 나타날 때마다 절로 감탄했다. 우람한 것도 놀라웠지만, 하늘을 찌를 듯이 쭉쭉 뻗어 상상을 초월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한 커다란 카우리 나무가 신기했다. 이 나무들은 몇 년이나 되었을까?

▲ 명상여행자들이 카우리 나무와 마오리식 인사 '홍이'로 교감하고 있다.

 

“캐빈에게 어느 나무가 더 오래되었는지 물어보지 마세요. 모든 카우리 이 나무가 다 소중한데 비교하면 싫어한답니다.”

 

명상여행자를 안내하는 조해리 명상트레이너가 미리 당부했다. 갈수록 나무가 빽빽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숲에서 나는 솔향이 없다. 그 대신 새들의 노래가 끊이질 않는다.

앞서 숲으로 들어갔던 뉴질랜드 사람들이 되돌아 나오면서 우리를 지나쳐갔다.

 

“키아오라(안녕하세요?)”

 

줄지어가던 우리가 쭉 이어서 ‘키아오라’ 인사를 건넸다. 그들도 ‘키아오라’라고 하며 웃었다.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큰소리로 현지어 인사를 하니 신기했을 것이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지구시민, 반갑습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마오리 청년 캐빈이 발을 멈추고 우리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Four sisters’라는 표기가 보였다. 네 자매라니? 카우리 나무 네 그루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왜 네 자매인가?

 

“큰 카우리 나무는 주위에 영양분을 다 흡수하기 때문에 옆에 작은 나무가 자라기 힘들어요. 이렇게 큰 나무 네 그루가 함께 자란 것은 같은 나무에서 나온 것이니까 가능합니다. 그래서 ‘포 시스터스’라고 합니다.”

 

캐빈의 설명이었다. 우리가 포 시스터스 주변을 둘러싸자 캐빈이 ‘포 시스터스’를 위한 노래를 불렀다. 깊은 카우리 숲에서 그의 노래는 한층 청량하게 들렸다. 잠시 눈을 감고 함께 의지하며 살아가는 카우리 네 자매와 마음으로 교류했다. 넉넉한 마음이 느껴졌다.

 

“이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카우리 나무를 만나러 갑니다. ‘숲의 아버지(Father of the Forest)’라고 하는 나무입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카우리 나무라고 설명하는데 아무도 묻지 않는다. 가장 큰 카우리 나무는 어디에 있나? 비교하는 마음, 분별심이 사라진 것이다.

‘숲의 아버지’에게로 가는 길에 마오리 청년은 ‘홍이’라는 마오리식 인사를 카우리 나무와 해보라고 했다. 카우리 나무에 이마와 코를 대는 순간 카우리와 나는 하나로 연결되었다. 이런 느낌이 왔다. 나무와 인간, 하나의 생명이구나. 자연인이 인간이고, 인간이 자연이구나.

 

‘숲의 아버지’가 가까워지자 캐빈이 다시 노래를 불렀다.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는 것을 알리는 노래라고 했다.  2~3분 더 걸어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모두 아! 하고는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눈앞에 ‘숲의 아버지’가 있다! 그 모습은 태어나 지금까지 본 모든 나무 중에서 가장 거대했다. 이게 살아있는 나무란 말인가?

카우리 나무는 다 자라면 높이가 60m, 몸통이 5m를 넘는다. 자라는 속도가 느려 수령이 2,000년이 된 나무도 있다고 한다.

▲ '숲의 아버지' 테 마투아 나헤레.

 

‘숲의 아버지’는 마오리 어로 테 마투아 나헤레(Te Matua Ngahere)라 한다. 뉴질랜드 정부 자료에 따르면 테 마투어 나헤레는 2,000살로 추정되며 높이는 29.9m이다. 100년 사는 사람이 20번 왔다 갔을 시간. 테 마투아 나헤레는 2,000년을 한 곳에서 지구를 지켜왔다니, 지구의 진정한 주인을 보는 듯했다. 테 마투아 나헤레 앞에서 인간이 지구환경을 오염시켜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도 캐빈은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두 손을 뻗어 나무와 교감하였다. 인간으로서는 이룰 수 없는 생명 현상. 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과 함께 경외감이 들었다. 인간도 자연임을 느꼈다.

테 마투아 나헤레를 뒤로 하고 카우리 숲을 나오니 세계서 가장 큰 카우리 나무를 보러 간다고 한다. 이번에는 얼마나 큰 나무일까!

잠시 이동하여 다시 신발을 소독하고 나무 데크 길을 걸었다. 캐빈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가까이에 세계에서 가장 큰 카우리 나무가 있음을 알았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니 왼편으로 하늘을 가린 나무가 있다. 하늘로 솟은 나무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 카우리 나무는 ‘숲의 제왕(Lord of the Forest)’라는 타네 마후타(Tane Mahuta)이다.

▲ 숲의 제왕 타네 마후타.

 

타네 마후타 안내판에는 마오리 신화를 적어놓았다. 마오리 우주론에 따르면 타네(Tane)는 천신(天神)인 하늘 아버지 랭기뉴이(랑이라고도 한다)와 지신(地神)인 땅 어머니 파파투아뉴쿠(파파투아라고도 한다)의 아들이다. 타네는 태곳적부터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부모를 떨어지게 하여 공간과 빛, 공기가 생기게 하여 생명이 번성하게 하였다. 마우리의 신과 신화가 깃들어 있는 곳. 그래서일까. 와이포우아 숲은 영적 여행(spiritual journey)를 하는 명소라고 한다.  이런 명소이기에 걸어다니는 중에도 명상이 되는 듯 했다.   

 

 타네는 생명을 주었다. 살아 있는 생물은 모두 그의 자손이다. 하늘 아버지, 땅 어머니라는 글을 보니 우리의 천지인(天地人)이 연상되었다.

 

타네 마후타는 뉴질랜드에서  살아있는 가장 큰 카우리 나무이다. 타네 마후타의 나이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어려우나 2,000년 전 씨앗이 싹터 자랐다고 추정한다. 나무의 총 높이는 51.5m. 다른 자료에는 2,3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47m가 된다고 한다. 자료에 따라서는 테 마투아 나헤레가 더 나이를 먹어 가장 오래된 카우리 나무라고 한다. 어느 나무가 더 오래 됐느냐는 사람들의 분별심 많고 비교하기 좋아하는 버릇에서 나온 것이리라. 두 나무는 무심할 뿐이다. 테 마투아 나헤레는 테 마투아 나헤레라서 좋고, 타네 마후타는 타네 마후타라서 좋다.

 

캐빈은 타네 마후타 앞에서 노래 부를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뉴질랜드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까지 모여들어 캐빈은 조금 떠는 듯했다. 그의 노래가 끝나자 이번에는 우리 모두 손을 잡고 캐빈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조용하게 숲으로 퍼지는 아리랑 노래에 가슴이 뭉클했다. 캐빈은 감동을 한 듯 두 손을 모으고 듣다가 박수를 쳤다.

▲ 타네 마후타 앞에서 명상여행자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캐빈이 없었다면 카우리 숲에서 자연과 교감이나 감동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 덕분에 마오리 노래를 들으며 카우리 나무와 교감을 하고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 인간도 자연임을 깨닫고 우리는 모두 지구인임을 느꼈다. 그래서 그를 위해 아리랑을 불렀다.

 

조해리 명상트레이너가  “우리는 지구시민운동을 하는 얼스시티즌이다. 우리는 한국인이기 전에 지구인이고, 마오리 인이기 전에 지구인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다. 그런 지구인 의식을 깨우는 운동이 지구시민운동이다.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이승헌 총장님이 지구시민운동을 제안하시고, 지금은 이곳 뉴질랜드에서 지구시민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신다.”라고 소개하자, 캐빈은 좋은 운동이라며 자신도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명상여행.
 

몇년 전부터 계획하고 준비한 명상여행이다. 내 경험으로 말하자면 일상을 떠나 삶을 생각하고 새로운 방향을 고려할 때 명상여행이 꼭 필요하다. 이번 뉴질랜드 명상여행에서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을 많이 했다. 익숙한 시공간을 떠나니 더욱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뉴질랜드는 세계적인 명상가인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이 지구시민운동을 펼치고 있는 곳이다. 이승헌 총장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자신감을 갖고 새로운 인생 the way of new life를 계획하도록 안내한다. 뉴질랜드를 찾은 이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인류, 지구를 위한 the way of new life를 고려하고 선택한다. 명상여행을 통해 나 또한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있다.

 

 

 

 

협조 : 명상여행사(http://www.meditationtour.co.kr/, 02-558-17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