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조선 3대 화가인 안견(安堅)의 작품 중에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가 있다. 안평대군이 무릉도원을 노니는 꿈을 꾸고 안견에게 설명하여 그리게 했다. 역시 대가인 안견은 3일 만에 대작을 완성하였다. 그림에는 안평대군의 표제와 발문을 비롯해 신숙주·정인지·박팽년·성삼문 등 당대 최고 문사들의 제찬을 포함해서 모두 23편의 자필 찬시가 곁들여 있다. 현재 이 그림은 일본의 국보급으로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안평대군은 친형 수양대군에게 역적으로 몰려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가 아끼던 장서 1만 권을 보관하고 당대 유명한 선비들과 교류하던 시·서·화의 지상낙원 무계정사 역시 주인을 따라 폐허가 됐다.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이며 서예와 시문·그림·가야금 등에 능하고 당대의 명필로 손꼽힌 안평대군의 무릉도원은 헛된 꿈이 되어 버렸다.

임진왜란 때 홍의장군 곽재우의 삶도 꿈같다. 1592년 4월 14일 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이 도망치듯 피난하자 그는 같은 달 22일 고향인 의령에서 제일 먼저 의병을 일으켰다. 의병의 군세는 2천에 달하였고, 5월에는 함안군을 수복하고 정암진을 도하중인 왜병을 대파하여 곡창인 전라도를 지켜냈다. 10월에는 절충장군으로 승진, 성주목사에 임명되고 또한 1차 진주성전투에 휘하의 병사들을 보내어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을 도왔다. 임진왜란 후 곽재우의 전공을 보고한 초유사 김성일은 곽재우의 집안이 매우 부유했지만 의병모집에 재산을 모두 희사했다고 기록했다. 당시 의병활동에 참가한 양반들은 대부분 막대한 토지와 노비 200~300명을 소유할 정도였으니 곽재우도 비슷한 경제력이었을 것이다.

말년이 되자 솔잎만 먹고 연명하던 직선적인 성격의 곽재우의 삶은 청빈함을 넘어 곤궁한 지경에 이르렀다. 복직을 명한 광해군의 교지를 갖고 찾아갔던 금군은 “인적이 아주 끊어진 영산의 산골에 두어 칸의 초가를 짓고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생계가 아주 초라했고, 병들어 누워서 나오지도 못했다.”고 보고했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가 상경하려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타고 갈 말과 종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단벌옷도 다 해져 날씨가 추우면 길을 떠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젊은 날, 거만금을 소유했던 선비였고 전장에서는 연전연승으로 왜적을 떨게 하였던 홍의장군의 삶도 역시 허망한 꿈이었는가.

▲ 몽유도해도(夢遊渡海圖), 꿈속에서 거센 바다를 필사적으로 건넜네. 건너고 보니 거센 파도 비바람 모두 꿈속의 꿈이었지. 단지 꿈임을 깨우치면 될 일을.<그림= 원암 장영주>

 

1598년 겨울, 추운 관음포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은 몇 마디 유언을 하시고 운명한다. 당시 의병장 안방준의 '은봉야사별록'에는 "나는 도를 다하기 위해 총을 맞은 것이다." 라고 기록한다. 영국의 영웅 넬슨 제독이 포탄에 맞고도 부하들을 불러 그들의 아버지 안부를 묻고, 자신의 애인을 잘 부탁한다는 등 이것저것 장시간 유언한 것과는 달리 우리의 장군은 곧 바로 숨을 거두었다. 꼭 두 달 전인 9월 18일, 장군보다 7년 연상인 일본의 정복자이자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질풍노도의 시간이여, 꿈 속의 꿈이런가?” 라며 죽는다. 그가 꿈도 아닌, 꿈속의 꿈을 꾼 탓에 조선인 약 300만 명이 죽고 다치고, 우리는 약해지다가 멸망하고 분단되어 지금까지 어두운 영향을 주고 있다.

고구려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참전계경 제328사 선안(仙安)에는 신선의 꿈을 그리고 있다.

“선도를 수련하여 편안함을 이룸은 완전한 도를 완성함에 있다. 신선은 명산과 승지를 주로 찾고, 뜻을 숭상함이 높고 크며, 성실함을 이루고 청백함에 힘쓰며, 양생으로 오래 오래 살다가 높은 하늘에 날아오르느니라(仙安者 參佺成度 主名山勝地 尙志高大 徵實務白 養生衍年 飛昇大空). 고구려인들은 생사를 초월하여 수행으로 쌓아가는 완성을 꿈꾸고 현실로 이루기 위한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이제 새 정부가 시작되고 인선이 점차 마무리되고 있다.

꿈을 꾸려면 제대로 꿔야 한다. 현실을 직시하고,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우리의 힘과 여건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늘 노심초사하면서 국가를 경영해야 한다. 더구나 나만 잘 해도 안 되는 지구촌 시대이니 만큼 국제정세에 눈을 크게 뜨고 ‘징실무백(徵實務白)’의 각오로 꿈을 꾸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신선이 되고, 한반도는 진정한 선경(仙境)을 이룰 수 있다.

 

(사)국학원 상임고문, 한민족 원로회의 원로 위원, 화가 원암 장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