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1545년 음력 3월 8일)은 이순신 장군의 탄신이다.

파도가 울고 도는 울돌목 명량의 험한 바다 한가운데서 왜군 133척을 불과 13척으로 물리쳐 나라를 구한 분이 서울 중구 마른내에서 태어났다. 《난중일기》에는 명량해전의 급박함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동트기 전 어란진을 떠난 왜군의 대함대가 광포한 물결을 타고 쏜살처럼 짓쳐들어오니 조선 수군은 싸우기도 전에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조선 수군은 목숨으로 지켜야 함에도 주장(主將)의 기함 한 척만을 명량의 물목에 두고 두 마장(4~8㎞)이나 뒤에서 머뭇거렸다. 장군은 배를 돌려 비겁한 부하들을 먼저 응징하고도 싶었으나, 그 틈새로 적들이 돌파할 것이기에 진퇴불능이 되었다.

▲ 지켜야 산다. <그림=원암 장영주>.

 
급히 초요기를 세우니 주저하던 중군장 김응함과 거제현령 안위의 배가 다가왔다. 장군은 뱃전에서 안위를 꾸짖는다. “안위야 너는 군법으로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 안위가 황급히 적선 속으로 돌입하였다. 이어 도착한 김응함을 꾸짖고 달랜다. “너는 중군으로서 멀리 피하여 대장을 구원하지 않으니 죄를 어찌 피할 것이냐, 당장에 처형할 것이로되 적세가 또한 급하니 우선 공을 세우게 하리라.”

두 배가 적진을 향해 나가자 적의 배들이 일시에 개미가 붙듯이 서로 먼저 올라가려 하니 곧 안위의 배가 위태로워졌다. 이순신은 뱃머리를 돌려 바로 쫓아 들어가 포와 화살을 빗발치듯 마구 쏘아댔다. 적선 3척이 거의 다 엎어지고 쓰러졌을 때 녹도만호 송여종과 평산포 대장 정응두의 배들이 뒤따라 와서 힘을 합해 적을 사살하여 몸을 움직이는 적은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이순신 장군과 수하의 장졸들은 파도와 열세와 두려움을 넘어 목숨으로 울돌목을 지켰다. 바람 앞의 촛불과도 같았던 조선은 되살아났다.

신라는 삼국통일을 위하여 신라, 당(唐)나라 연합으로 백제를 멸망시켰으나 음흉한 당나라는 결국 신라까지 쳐서 자기네 국토로 삼으려고 한다. 이에 김유신 장군은 당의 원정군사령관인 소정방에게 과감하게 맞선다. “개는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그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입니다. 어찌 어려움을 당하여 자신을 구원하지 않겠습니까.” 김유신의 결기에 기가 꺾인 소정방은 귀국하니 아쉬운 당의 고종은 묻는다. “어찌하여 신라마저 정벌하지 아니하였는가?” 소정방은 대답한다. “신라는 그 임금이 어질어 백성을 사랑하고 그 신하는 충의로써 나라를 받들고, 아래 사람들은 그 윗사람을 부형과 같이 섬기므로 비록 나라는 작더라도 가히 도모하기 어려워 정벌하지 못하였습니다.” 요샛말로는 이럴 것이다. “대통령과 정치인과 국민이 단결한 나라이므로 대국의 힘을 믿고서 밀어붙인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김유신은 고구려와의 결전을 위해 출정하는 김흠순, 김인문 두 장군에게 충고한다. “무릇 장수가 된 자는 나라의 방패요, 임금의 어금니로서 승부의 결단을 화살과 돌 가운데서 하는 것이다. 반드시 위로는 천도를 얻고 가운데로는 인심을 얻은 후에라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충절과 신의로써 살아 있고, 백제는 오만으로써 망했고, 고구려는 교만으로써 위태하다. 지금 우리의 곧음으로써 저들의 굽은 곳을 친다면 뜻대로 될 것이다.”

전장에서조차 위대한 이 철학은 고구려의 을파소 선생이 나라의 기둥을 기르는 지침서인 참전계경(參佺戒經)의 ‘제 57사 정직(正直)’ 편과 같다. 지금으로부터 4350년 전의 국조 단군 왕검 시절부터 내려온 민족의 가르침이다.

“바르면 사사로움이 없고 곧으면 굽음이 없다. 무릇 의로움이란 뜻을 바르게 갖고 일을 곧게 처리하여 그 사이에 사사로움과 굽음이 없기 때문에 차라리 일에 실패할지언정 남에게 믿음을 잃지 않는다.”

5월 9일의 대통령 선거에 나라의 모든 것이 걸려 있다. 그런 만큼 각 후보와 당에서는 모든 것을 걸고 국민의 표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밝고 당당한 진실로 믿음을 주기보다는 굽고 어둡고 비열한 거짓이라도 오직 순간만을 모면하려 하고 있다. 그럴수록 국민의 믿음을 잃는다.

국민은, 비록 잠시 자신에게 불리하더라고 거짓으로 국민을 속이지 않는 지도자를 원한다. 진실로써 인성을 지켜가는 양심이 살아 있는 대통령을 갈망한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미국까지 가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은 자신들의 속국이었다.’고 망언을 했다. 동북공정의 흉계가 결과로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사드 배치를 이유로  중국의 엄청난 보복을 받고 있는 중이다. 1400년 전의 당나라와 달라진 것이 무언가? 또 때만 되면 중국과 북한의 눈치를 보면서 먼저 들어 눕는 우리 정치권의 행태는 백제, 고구려, 근세조선의 패망 분위기와 무엇이 다른가? 이에 믿음을 잃어가는 국민의 불안과 울분을 저들은 아는가? 모르는가? 무릇 국민된 자는 그가 누구이든지 필사즉생의 각오로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그럴 때 나와 가족과 나라가 살 수 있다. 나아가 홍익의 철학으로 지구촌까지 살릴 수 있다.그것이 이순신 장군과 김유신 장군과 국조 단군의 비장하고 장엄하고 거룩한 가르침이다.

 

국학원 상임고문, 한민족 원로회의 원로 위원. 화가. 원암 장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