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라가 좋은 나라인가? 고대 춘추전국 시대에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이 나라의 목표였으니, 이를 유지하는 나라가 좋은 나라였다. 나라가 부유한데 이를 지킬 강한 군대가 있으니 아무 걱정이 없었다. 나라가 부유하고 군대가 강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백성이 많아야 한다. 위(魏)나라 양혜왕(梁惠王)의 고민도 그것이었다.

“과인이 나라에 온 마음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내(河內) 지역에 흉년이 들면 그 지역 백성을 하동(河東)으로 이주시키고 곡식을 하내 지방으로 옮겨가며 하동지방이 흉년이 들면 또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과인처럼 마음을 쓰는 자가 없는데도 이웃나라 백성들이 줄어들지 않으며 과인의 백성들이 많아지지 않음은 어떤 연유인지요?”
양혜왕은 지혜롭다고 하는 맹자(孟子)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맹자는 전쟁을 좋아하는 양혜왕에게 맞춰 전쟁으로 양혜양의 처사를 비유했다.

“전투가 벌어졌는데 한 병사가 겁을 먹고 갑옷을 벗어 던지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다 100걸음 쯤 가서 멈추었지요. 다른 병사 하나는 50걸음 쯤 도망을 치다가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는 100걸음을 도망친 자를 보고 비웃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왕이시여!”

혜왕은 말했다. “그건 안 될 말이요. 100보가 안 되어도 이 또한 도망간 것이오.”
“그걸 안다면 왕이시여, 백성이 이웃나라보다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시오.”
흉년이 든 곳에서 풍년이 든 곳으로 백성을 옮기거나, 풍년이 든 곳에서 곡식을 흉년이 든 곳으로 옮기는 것은 진정 백성을 사랑하는 행위가 아니다. 전쟁을 좋아하는 양혜왕이 전쟁을 그만두었더라면 백성이 늘었을 것이다. 가혹한 정치를 하지 않아야 한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공자(孔子)는 말하였다. 이는 현대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오늘날 좋은 정부는 어떤 정부일까. 국민이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정부가 아닐까. 그런 정부는 장 자크 루소의 표현을 따르면 이렇다. “정치적 결합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 구성원의 생명의 보존과 번영이다. 그렇다면 구성원들의 자기 보존과 번영에 대한 가장 확실한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구성원 수, 즉 인구 증가이다. 그러니 그토록 이론(異論)이 분분한 그 특징을 다른 데 가서 찾지 마라. 그 밖의 모든 조건이 같은 경우, 외국의 도움이나 귀화나 식민 등이 아닌 상태에서 시민이 더 많이 살고 더 느는 정부는 확실히 최상의 정부다. 반면, 인민이 줄고 쇠퇴해 가는 정부는 최악의 정부다. 통계학자들이여! 이제 당신들의 일만 남았다. 세어서 산출하고 비교하라.”(『사회계약론』

 루소의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어떠한 정부인가. 젊은이들이 자녀를 낳기는커녕 결혼도 포기하고 연애까지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오래되었다. 그러니 혼인하는 사람이나 아이를 낳은 사람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전체 출생아 수는 40만6천300명으로 사상 최소치를 기록했다. 작년 한 해 혼인은 28만8천400건으로 1974년 통계 집계 이후 가장 적었다.

 그런데 저출산 대책은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미봉책에 그치고 있다. 심지어는 원인을 엉뚱한 곳으로 돌려 여성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얼마 전 보건정책 국책연구 기관인 보건사회연구원의 한 선임연구원은 저출산의 원인이 고학력, 고소득 여성의 하향 선택 결혼이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을 문제로 지적하였다.
 

 다시 루소로 돌아가자면 저출산의 원인은 우리 사회 구성원, 즉 젊은 부부들의 생명의 보존과 번영과 깊은 연관이 있지 않을까? 결혼생활을 할 정도가 못되거나, 결혼을 하여도 아이를 낳아 기를 여건이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여성을 탓하기 전에, 결혼관이나 자녀관의 변화를 탓하지 전에 루소의 지적을 새겨볼 일이다. 지금까지 저출산 대책은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다음 정부는 최상의 정부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젊은이들이 연애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많이 낳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