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문라이트’ 스틸컷

올해 아카데미 수상작 ‘문라이트 (Moonlight, 2016)’는 미국 마이애미에 사는 흑인 소년 ‘샤이론(알렉스 히버트)’의 성장을 그렸다. 이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단순히 성장 스토리에 머물지 않고 흑인, 동성애 등 소수자의 삶을 다뤘기 때문이다. 제목 그대로 밤하늘의 달빛이 흑인들을 은은하게 비춘다. 

 
어릴 적에는 키가 작아서 ‘리틀’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소년의 유일한 엄마(나오미 해리스)는 마약중독으로 정서가 불안하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다.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도망치던 중에 마약상 ‘후안(마허샬라 알리)’을 만난다. 후안과 그의 여자친구 ‘테레사(자넬 모네)’가 소년을 가족처럼 돌봐준다. 
 
특히 후안은 소년의 아버지이자 멘토와 같은 존재다.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나도 엄마가 싫었지. 하지만 지금은 미칠 듯이 그리워” 라는 말을 통해 소년을 위로하고 격려한다. 
 
키가 커버린 ‘샤이론’은 더 이상 ‘리틀’이 아니다. 그럼에도 친구들의 따돌림은 계속된다. 그를 유일하게 인정해준 친구 ‘케빈’을 만난 뒤로 자신의 성 정체성에 눈을 뜬다. 그런데 원치 않은 학원 폭력사태에 휘말리면서 샤이론은 학교를 중도에 그만둔다.
 
이제는 근육질 남자로 성장한 샤이론은 후안과 마찬가지로 마약상으로 살아간다. 어느 날 친구 ‘케빈’의 전화를 받고 재회한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친구의 용서와 샤이론의 고백이다. 그의 몸은 커졌지만 마음속에는 누군가 자신의 손을 잡아주길 바라는 외로운 소년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 가족이 아니라 친구와 이웃이 소년의 버팀목이었다.
 
배리 젠킨스 감독은 관객이 기대하는 어떤 극적인 반전이나 성공을 보여주지 않는다. 약물중독 엄마와 헤어진 후 백인 가정과의 만남으로 미식축구에 성공한 흑인 '마이클 오어'와 같은 경우는 극히 일부이다.(블라인드 사이드(The Blind Side, 2009) 감독이 택한 것은 흑인과 성 소수자의 삶이지 성공 판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 인생사의 햇빛이 아니라 달빛을 택한 것이 큰 울림으로 남는다. 또한 소년 샤일론이 백인이라는 주류 사회에서 비주류인 블랙(Black)으로 당당히 걸어가라는 주문처럼 들린다. 덕분에 우리는 소수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됐고 ‘다양성’에도 눈을 뜰 수 있게 됐다. 
 
▲ 영화 ‘눈길’ 스틸컷
 
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국내 최초로 '위안부' 피해를 증언하기 전까지 ‘위안부’ 피해자는 소수자에 불과했다. 남성 중심의 주류 사회에서 대일항쟁기 독립운동가의 삶은 조명됐지만 ‘위안부’ 피해자는 철저하게 묻혔기 때문이다. 김 할머니의 증언 이후 많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매주 수요 집회가 열린 지도 25년이 넘는다.
 
이제는 주류의 목소리로 전 세계의 여성 인권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의 삶을 담은 영화 ‘눈길(Snowy Road, 2015)’이 삼일절에 개봉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지난해 ‘위안부’의 한 맺힌 삶을 보여준 ‘귀향(Spirits' Homecoming, 2015)’의 성공과 전국 ‘위안부’ 소녀상 건립운동에 동참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된다.
 
1944년 말, 같은 마을에 사는 가난한 집 딸 ‘종분’(김향기)과 부잣집 막내 ‘영애’(김새론)가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간다. ‘귀향’에서 소녀들의 폭력과 아픔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과 달리 ‘눈길’은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소녀들의 모습을 주로 담았다. 
 
지옥 같은 환경에서 영애의 자존심도 무너지고 피임도구를 소독하면서 버티는 나날이 계속된다. 그럼에도 소녀들은 조선의 노래를 부르고 서로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며 연대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하지만 “죽는 게 두렵니? 죽지 못해 사는 게 더 무섭지”라는 대사를 통해 이들의 치유할 수 없는 상처의 깊이를 보여준다. 
 
이와 함께 현재의 ‘종분’(김영옥)은 독거노d인이다. 그의 옆집에 살던 불량소녀 장은수(조수향)는 집세도 내지 못한 채 살아간다. 할머니 ‘종분’이 소녀에게 도움을 준다. “이 세상에 쉬운 게 어디 있겠니. 그래도 살아져”라는 말로 조언해준다. 일제에 빼앗긴 조국에서 겪은 치욕과 폭력을 견딘 종분의 말은 홀로 살아가는 은수에게 큰 힘이 된다. 이처럼 같은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지만 둘의 연대는 ‘위안부’의 해결을 위해 어떠한 마음이어야 하는지 보여준다. 
 
소녀상 지킴이 최혜련 씨(배화여대 영어통번역학과)가 EBS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저라고 생각하고, 저의 문제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여기 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한 것과 같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고통의 삶을 단지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과거의 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다. 
 
▲ 영화 ‘우리손자베스트’ 스틸컷
 
영화 ‘우리 손자 베스트(Great Patrioteers, 2016)’는 극우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와 ‘어버지연합’을 풍자했다. 이들을 대표하는 20대 청년 백수 교환(구교환)과 ‘종북 척결’을 외치는 노인 정수(동방우)의 좌충우돌 스토리를 그렸다. 
 
취업, 연애, 결혼 등 뭐 하나 제대로 하기 어려운 헬조선에 살고 있는 교환은 게임 사운드를 편집해 만든 "차벽 산성 협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경찰과 대치하는 시위대를 희화화 한다. 결국 구속될 위기에 처했지만 가까스로 벗어난다. 그럼에도 너나나나베스트에서 각종 활동을 하면서 헬조선을 비판한다. 
 
어느 날 탑골공원에서 70대 애국노인 정수를 만난다. 정수는 자신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교환에게 "한겨레? 경향? 오마이? 어디 기자냐"고 다그친다. 진보언론은 모두 빨갱이로 보고 있는 것. 그의 애국 활동은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 위해서고 나중에 국가유공자로 국립현충원에 묻히는 것이 소원이다. 
 
이들의 목소리는 세상의 주류를 향하고 있지만, 가정사는 비주류에 불과하다. 교환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엄마, 무관심한 아빠, 무시하는 여동생까지 어느 하나 정서적으로 의지할 만한 혈육이 없다. ‘야동’(야한 동영상)과 인터넷에 빠지면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을 뿐. 정수 또한 아들 내외의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손자의 인정을 받기도 쉽지가 않다. 이처럼 청년백수와 독거노인의 삶은 처량할 뿐이다.
 
단지 그들 또한 세대가 겪는 고민을 온전히 짊어지고 있다는 것. “물에 빠져 죽은 아이들은 10대까지만 지옥을 경험한 것 아니냐. 그게 엄청 부러웠다”라고 말하는 교환은 입시교육의 피해자다. “차에만 타면 사람들이 피한다. 나한테 노인 냄새가 나느냐?”라고 묻는 정수에게서 노인들의 고민을 엿보게 된다.
 
‘빨갱이’ 운운하는 노인과 성인이 돼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배회하는 청년의 삶. 그들 또한 헬조선의 또 다른 약자라는 것. 혼자서 술을 먹는 정수나 서울 광화문 광장을 혼자서 미친 사람처럼 춤추는 교환의 모습에서 ‘아웃사이더’의 소외감을 절절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