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군정신선양회 가평지부 전경이다. 계관산 아래에 있다(사진=윤한주 기자)

지난 18일 서울 상봉역에서 경기도 가평역으로 가는 경춘선 전철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휴가지로 유명한 가평에 가는 그들의 표정은 설레었다. 하지만 가평군은 대학생들의 MT나 휴가지로만 봐서는 안 된다. 

 
1919년 이규봉 선생의 주도로 3천 200여 군민이 삼일항일운동을 벌였다. 일제의 총칼에 가평군민 23명이 희생되고 28명이 붙잡혀 모진 수난을 받았다.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이듬해 중공군이 남하할 때 미국과 캐나다 등 유엔군의 치열한 교전으로 격퇴시킨 곳이다. 그들의 참전을 기리는 기념비가 많은 이유다. 당연히 한국 전사자들도 많았다. 
 
뿌리를 찾아야
 
조영순 단군정신선양회 가평지부장(86)과 함께 가평역 앞 버스와 승용차를 갈아타서 도착한 집은 시골의 한적한 농가에 자리한 듯 했다. 계관산(鷄冠山, 730m) 아래에 있다. 개 두 마리가 낯선 이의 방문을 경계하듯 짖어댔다. 고양이들은 눈치를 보면서 피했다. 안방에는 피태옥 씨(92)가 누워 있었다. 피 씨는 단군성전의 설립자 고(故) 오정 김춘자 선생(吾井 金春子, 1930~2000)과 이종사촌이다. 조 지부장은 김 선생의 올케가 된다. 
 
이들 셋이 한복을 곱게 입고 나란히 촬영한 액자가 눈에 띈다. 한복에는 태극기를 새겼다. 조 지부장은 “항상 나라를 위해서 (김 선생은) 태극기를 그렸다”라고 말했고 피 씨는 “유불도를 공부했지. 고생을 많이 하고 돌아가셨어”라고 회고했다. 
 
두 사람의 말을 종합해보면 김 선생은 서울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남달랐다. 말은 별로 없었지만 영적(靈的)이었다고 한다. 결혼하고 남매를 낳았으나 가정보다 구도를 위해 인생을 바쳤다. 그렇다면 어떻게 국조단군을 세우게 된 것일까? 
 
▲ 단군왕검석상 전경(사진=윤한주 기자)
 
가평지부의 안내판에 따르면 “기미년에 삼일독립운동을 발발시켰던 자리이며 선조들의 애국충절의 요충지로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많은 피를 흘렸던 사연이 많은 이 고장에 국조단군왕검의 석상을 모시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조 지부장은 “당신의 뿌리이니깐 할아버지를 모신거야. 그분을 알고 있는 사람도 (선생이) 나라를 위해 공부했지만 뿌리를 바로 세우기 위해 하신 거라고 했어요”라고 덧붙였다.
 
선양회는 1964년 비영리법인으로 설립됐고 가평지부는 1983년 현 위치에 세워졌다. 김 선생을 따르는 수많은 회원의 성금으로 1988년 음력 1월 15일에 단군석상을 건립했다. 석상의 크기는 1m 25cm이고 단상을 포함하면 2m가 넘는 규모였다. 대종교의 단군영정(표준영정)을 그대로 석상화시켰다고 보면 된다. 
 
무궁화탑, 단군영정, 천부경과 삼일신고 액자가 있었다. 만화로 보는 단군일대기도 있었다.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 박사의 이름이 있었다. 안 박사는 생전에 가평지부를 방문했다. 
 
나라사랑의 일념으로 추모비 세워
 
▲ 고 김춘자 선생과 회원들이 세운 순국선열추모비(사진=윤한주 기자)
 
가평지부는 음력으로 3월 15일 단군이 승하한 어천절과 음력 10월 3일 개천절에 제례를 올린다고 한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 있다. 집 뒤편의 계단을 오르면 제단이 하나 있다. 조 지부장은 “‘터주고사’라고 회원들의 집집마다 편안하라고 올렸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집에서 고사를 안 지낸다”라고 설명했다.
 
성전을 둘러보면 민속신앙과 불교신앙을 모두 볼 수 있다. 지장보살을 모신 사당이 있었고 이곳엔 큰 북이 있다. 집을 공사하면서 나온 돌들을 선방에 모시기도 했다. 정안수를 올리고 기도한다. 태극기와 단군영정이 있다. 산신각은 맞은편 산에 세웠다. 단군부터 불교와 민간신앙을 모두 담은 종교문화의 전시장이 아닌가 싶었다. 그 배경은 김 선생의 구도와 나라사랑이리라. 대표적으로 순국선열추모비다. 주택 오른쪽 오솔길로 오르면 추모비와 김 선생의 표석이 있다. 추모비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를 기리기 위해서다. 회원들의 이름이 비석 뒤에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1960년대부터 일을 하고 있는 조 지부장은 “처음 시작했으니깐 끝을 잘 마쳐야지. 그런 마음으로 하고 있다”라며 “작년부터 지부장을 내놓으려고 했는데 나 다음에 할 사람이 없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누가 와도 나 같은 고통은 겪지 말아야지”라고 최근 법정소송과 관련한 어려움을 하소연했다.
 
▲ 왼쪽부터 피태옥 씨, 고 김춘자 선생, 조영순 지부장이다. 한복에 태극기를 새겼다. 1990년대(사진=가평지부)
 
지난해 경인매일 등 지역매체에 따르면 가평군 북면사무소가 건축물 일부가 공유수면내 구역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철거명령을 내리고 백만 원의 점용룡을 부과했다고 보도했다. 인근 토지개발 허가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는 민원이 발생해서 행정 조치를 취했는 것이 군의 설명이다. 조 씨 또한 관련법을 무시한 부당허가를 취소해 달라고 최소처분청구소송을 냈다. 현재 법정으로 공방 중이다.
 
이 과정에서 아치형 다리가 훼손되는 등 단군성전 주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주민 이 씨는 “2분이 살아있지 않으면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가평지부 계승자가 탄생하지 않는 한 법정 공방과 함께 단군성전의 존속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찾아가는 방법
 
가평역(가평터미널)에서 목동 방면으로 하루 3번 버스가 다닌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161 단군정신선양회 가평지부(바로가기 클릭)
 
편집자 주 - 이번 회를 끝으로 ‘단군문화기획’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