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담이 서늘해지는 순간이 있다. 사자, 호랑이, 곰...야수와의 만남이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다. 공포를 담당하는 뇌 속 변연계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사람 살려!’라고 줄행랑을 칠 수 있다. 그런데 동물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있다. 눈과 코, 입을 가진 사람이다. 어느 날 욕설을 퍼붓고 동족을 때리며 짐승으로 돌변할 때가 있지 않은가? 단순히 감정 조절의 문제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감정을 넘어서 성격까지 바뀐 경우다. 완전히 다른 사람과 마주하는 공포는 어느 정도일까?

 
이에 관해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신작 '23 아이덴티티(Split, 2016)'를 만나보자. 식스센스(The Sixth Sense, 1999) 이후 18년 만에 3주 연속 미국 박스오피스 1위로 흥행을 거둔 작품이다. ‘23 아이덴티티’의 원제는 ‘갈라지다’, ‘분열하다’는 뜻하는 ‘Split’이다. 한국 관객이 이해하기 쉽도록 ‘23 아이덴티티’라는 제목을 사용했다. 다중인격 장애를 전면으로 내걸었다.
 
▲ 영화 '23 아이덴티티' 스틸컷
 
케빈(제임스 맥어보이)은 지금까지 등장한 적이 없는 24번째 인격의 지시로 10대 소녀 3명을 납치한다. 어렸을 적 학대의 경험이 있는 케빈,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난 배리, 강박증을 가진 데니스, 9세 소년 헤드윅 등이 수시로 나와서 소녀들을 만난다. 케빈 뇌 속에는 수많은 인격이 동거하고 있는 셈이다. 주도권을 쥔 인격이 케빈의 몸을 이끌어간다고 보면 된다. 
 
다중인격 장애란 해리성 정체성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라고 불리는 정신질환이다. 한 사람이 둘 이상의 인격을 가지게 되는 질환을 말한다. 해리성이란 정상적인 의식상에서 벗어나 기억을 잃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다.
 
도망치려는 클레어(헤일리 루 리차드슨)와 마르샤(제시카 술라)와는 달리 케빈의 다중인격을 파악한 케이시(안야 테일러 조이)가 극적 반전을 이끈다. 또 케빈이 유일하게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정신과박사 플레처(베티 버클리)가 다리 역할을 한다. 두 여자의 진단과 처방이 케빈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아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그렇다면 다중인격장애의 원인은 무엇일까? 대체로 어린 시절에 상처를 입은 경험이 크게 작용한다. 연구에 따르면 다중인격장애 환자 86%가 성적인 학대를 받았고 75%는 신체적 학대를 반복적으로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45%는 아동기에 폭력적인 죽음을 목격하기도 했다. 때문에 정신과의사들은 학대나 외상으로부터 받은 충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또는 대면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피하고자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주목할 것은 다중인격장애자의 뇌 활동 또한 일반인과 다르다는 점이다. 영상으로 촬영해보면 한쪽 자아의 행동이 사라지고 다른 쪽이 등장할 때 뇌의 뉴런 패턴 또한 바뀐 자아의 태도에 조응하여 변화했다. 47세 여성은 한 인격에서 다른 인격으로 전환할 때 뇌에서는 기억을 처리하는 부분이 일시적으로 움직임을 멈추었다고 한다. 다중인격은 행동만 다른 것이 아니라 뇌가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이 전혀 달랐던 점이다. 다중인격을 연기하는 사람의 뇌와 다른 이유다.
 
▲ 영화 '23 아이덴티티' 스틸컷
 
‘23 아이덴티티’에서 소녀들의 납치와 탈출 그리고 비스트의 출현. 쫓고 쫓기는 공포가 압도적이다. 그렇다고 ‘식스센스’와 같은 반전을 기대했다면 실망이다. 오히려 전혀 다른 캐릭터를 소름끼치도록 연기한 배우 제임스 맥어보이에 주목하라.  
 
이제 스크린에서 나와서 현실을 돌아보자. 가수 조성모가 리메이크한 노래 '가시나무'에서 '내 속에 내가 너무 많다'라는 가사처럼 자신도 모르는 ‘나’가 존재한다. 내가 그렇다면 하나의 성격으로만 다른 사람을 평가해서도 안 된다. 
 
인디언 체로키족 추장은 “우리 마음속에 착한 늑대와 나쁜 늑대가 살고 있다”라고 말하자 누가 이기냐? 라는 손녀의 질문에 추장은 이렇게 답했다. “네가 먹이를 더 많이 주는 늑대가 이기게 된다”고. 이러한 관점이라면 정보의 질과 양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다. 원래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은 없다.
 
다중인격장애자의 뇌는 주인을 잃었다. 수많은 정보가 주인노릇을 하게 됐고 결국엔 몸과 마음도 정보의 노예가 된 것이 아닐까? 컴퓨터가 운영시스템(OS)를 바꿔야하듯이 사람의 뇌도 운영시스템(Brain Operating System)이 바뀌어야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중인격자는 아무 죄책감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 즉 소시오패스(Sociopath)로 돌변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을 만드는 가정과 사회는 아닌지도 영화를 통해 돌아볼 일이다.
 
읽어보면 도움이 되는 책
 
리타 카터, 김명남 옮김 ‘다중인격의 심리학’(교양인2008)
정재승,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어크로스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