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그레이트 월’ 스틸컷
 
최근 할리우드의 SF영화를 보면 무대가 중국으로 옮겨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공격하던 외계인도 이제는 중국을 택한다. <트랜스포머(Transformers)>는 외계에서 온 변신로봇이 중국을 누빈다. <컨택트(Arrival, 2016)>는 스토리의 반전이 미국이 아니라 중국인의 선택으로 진행된다. 이처럼 영화 스토리도 중국이 우월해지고 있다.
 
최근 ‘그레이트 월(The Great Wall, 2016)’은 미국과 중국이 합작한 SF액션영화로 순제작비만 1,800억 원이 투입됐다. 장이머우 감독(張藝謀)이 메가폰을 잡고 할리우드 유명 배우 맷 데이먼(Matt Damon)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영화 포스터 전면을 차지하는 맷 데이먼을 보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인물로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왕 역 유덕화(劉德華)와 린메이 사령관 경첨(景甛) 등 중국 배우들의 활약이 더 뛰어나다. 맷 데이먼은 고대 중국의 화약을 구하러 나선 유럽 전사 윌리엄처럼 용병에 불과하다. 
 
▲ 영화 ‘그레이트 월’ 스틸컷
 
영화는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유명한 만리장성의 전설로 시작된다. 역사와 달리 외계에서 온 괴수들이 60년마다 출몰해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것. 검은 가루(화약)를 찾아 미지의 땅으로 떠난 전사 ‘윌리엄’과 ‘페로(페드로 파스칼)’ 일행은 중국 북부를 떠돌다 산적들에게 공격당해서 쫓기는 신세가 된다. 이들은 도망치던 중 만리장성을 지키는 중국 부대에 붙잡힌다. 포로신세가 된 ‘윌리엄’은 괴수와의 전쟁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용병’으로 거듭난다. 그동안 먹고 살기 위해 싸웠던 ‘윌리엄’은 집단의 승리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중국인들에게 감동을 받는다. 이를 ‘신뢰(信賴)’라고 전한다. 
 
신뢰가 중요하다는 것은 2,500년 전 중국의 공자가 제자 자공에게 전한 말에서도 찾을 수가 있다.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제자의 질문을 받고 공자는 물질적 안정인 족식(足食)과 군사적인 힘인 족병(足兵), 백성들의 신뢰인 민신지의(民信之矣)를 꼽았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는 것. 신뢰가 있으면 물질과 군대도 해결된다는 뜻이다.
 
영화는 물량공세라고 보면 된다. 혹자는 <월드워 Z>에서 이스라엘 성벽을 기어오르던 좀비의 장관이 <그레이트 월>과 오버랩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에서 성을 두고 괴수랑 싸우는 모습이 더 가깝다. 세계적인 시각효과업체인 할리우드 ILM과 뉴질랜드 웨타가 컴퓨터그래픽(CG)으로 표현한 괴수와 전투 장면들이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과연 6.25 한국전쟁에서 인해전술을 펼친 중공군처럼 괴수들의 거침없는 돌진이 만리장성을 넘어설 기세다.
 
▲ 영화 ‘그레이트 월’ 스틸컷
 
하지만 고대 중국인이 마치 인류를 대표해서 괴수를 물리친다는 발상 자체가 중화주의(中華主義)처럼 비친다. 만리장성은 흉노족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진시황제가 쌓은 장성이다. 중국은 이들을 오랑캐라고 규정했으니 영화만 보면 이들 민족이 괴수의 은유가 되는 셈이다. 
 
현재 만리장성의 모습은 고대가 아니라 명나라에서 와서야 지어진 것이다. 또 얼마나 많은 중국인이 성을 쌓기 위해 죽었는지 모른다. 중국이 만리장성의 끝을 평양성까지 그려서 우리 국민을 분노케 한 것도 사실이다. 이웃 나라는 열등하고 중국만 우월하다는 ‘중화주의’의 민낯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2008년 제29회 베이징올림픽 개·폐막식을 통해 인류평화보다 ‘중화주의’를 내건 장이머우 감독의 또 다른 버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