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20일 만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기자회견을 지켜보면서 당혹한 것은 비단 반기문 캠프 관계자만은 아닐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후 이 나라의 다음 대통령 자리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후보들이 날뛰는 상황에서 반 총장의 결단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요?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한국명 이만열) 경희대 교수의 경향신문 기고문(1월 27일)을 주목합니다. 그는 반 총장이 대통령보다 유엔사무총장의 자산을 충분히 활용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지역 국가를 한데 모으고 동아시아 군사적 긴장 고조에 대응할 때 유엔의 도움을 끌어올 적임자라고 본 것이지요.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등 이른바 4강 ‘스트롱맨(Strong Man)’에 둘러싸인 우리나라 외교 상황에서 그의 제안은 탁월하다고 봅니다. 
 
특히 임마누엘 교수는 인도의 시인 타고르의 ‘빛나던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라는 메시지를 통해 한국이 평화의 나라로서 주어진 운명을 실현하라고 전했습니다. 비단 반 총장뿐만이 아니라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운명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자리를 탐하는 정치인들은 한둘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나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지시 등 국민세금으로 운영하는 국가예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 영화 '더킹'과 '7년-그들이 없는 언론' 포스터
 
이러한 정부를 감시하는 기자들은 ‘세월호 오보’ 이후 기레기(기자+쓰레기)로 전락했습니다. MBC <PD수첩>에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보도 이후 해직된 최승호 전 MBC PD(현 뉴스타파 PD)는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Seven Years-Journalism without Journalist, 2016)’에서 세월호 보도의 실상을 이렇게 말하더군요.
 
목포MBC에서 사실보도를 했지만 데스크에서 전원구조로 보도했다고. 최 PD는 “그 사람들이 왜 그랬을까요? 그게 편했기 때문이죠”라고 일갈합니다. 권력에 빌붙는 언론인은 감시견이 아니라 정부의 애완견에 지나지 않습니다.
 
최근 영화 <더 킹(The King, 2016)> 또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싶어 하는 검사 박태수(조인성)의 욕망을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자동차처럼 그렸습니다. 오로지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그의 본능이 양심에 눈을 감은 이후 종국엔 파국을 맞게 되지요. 
 
물론 영화의 마지막엔 박태수의 반전도 담았지만, 중요한 것은 돈과 권력에 취한 대한민국의 민낯입니다. 얼이 빠진 것이죠. 영화 <내부자들> 이후 우리나라를 좀먹는 정치인과 검사, 언론인들이 주인공이 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반기문 총장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2월 2일)에서 불출마를 결심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직도 정치가 한국을 너무 지배하고 있고 정치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치인들은 전부 다 자기 계산이 있더라. 말은 대의라고 하면서도 정작 대의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할 준비가 안 돼 있는 사람이 많더라.” 
 
물론 그의 불출마가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겠지만, 선거를 앞두고 표를 구걸하는 정치인의 민낯은 이렇게 이해타산적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뽑는 국민의 의식을 개혁하지 않는 한 정치개혁 또한 요원합니다. 
 
결국, 국민이 권력인 대한민국이 되어야 합니다. 국민이 주인노릇을 제대로 할 때 정치인 또한 머슴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정치 환경이 갖춰질 때 오로지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 탄생하지 않을까요? 그만큼 국민이 어떠한 정신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초원을 달려 언덕에 올라가면 말머리를 돌려 자신이 달려온 초원을 돌아봅니다. 말을 쉬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했을까 봐 영혼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죠. 
 
이 일화를 좋아하는 고故 신영복 선생은 “영혼이 우리말로 뭐죠? 얼입니다. 우리가 왜 공부합니까? 아름다운 얼을 만들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왜냐면 얼굴이란 뜻이 '얼골'에서 나왔거든요. 그 사람이 키우고 있는 영혼의 모습이 가장 정직하게 나타나는 분위가 얼굴”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정치인들의 얼굴에 얼이 제대로 박혔는지 살피기 전에 우리 국민의 얼부터 찾아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