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사자성어는 ‘군주민수’(君舟民水)’입니다. 전국 교수 611명 가운데 32.4%(198명)가 이 성어를 꼽았다고 합니다.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 君以此思危 則危將焉而不至矣)”는 뜻입니다.  『순자(荀子)』「王制(왕제)」 편에 나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따른 촛불집회와 국회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한두 사람이 배를 뒤집기는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이 동참해야 합니다. 얼마가 필요할까요? 에리카 체노웨스(Erica Chenoweth) 미국 덴버대 정치학 교수는 지난 2013년 세계적인 강연 프로그램 테드(TED)에서 ‘3.5%의 법칙’을 소개했습니다. 
 
1900년부터 2006년까지 모든 형태의 시민저항운동을 분석한 것입니다. 이 이론은 국가의 전체 인구 중 3.5%가 비폭력적 ·평화시위를 적극적·지속적으로 벌인다면 그 정권은 무너진다는 것이죠. 우리나라 인구를 5천만이라고 한다면 3.5%는 175만 명입니다. 
 
그동안 주말 촛불집회 참가자 수와 비폭력 평화 집회라는 조건이 이 법칙에 부합합니다. 물론 그대로 실현될지는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은 영웅이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연대에서 비롯된다는 교훈입니다.
 
올해 개봉한 영화만 보더라도 제작비를 크라우드펀딩으로 조달했습니다. <귀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한 7만5,270명이 마음을 모아 11억6,000여만 원을 마련했죠. 덕분에 3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제작진은 영화의 수익금 2억 원을 ‘위안부’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경기도 나눔의 집에 기부했습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은 4억3,700여만 원(1만7,261명 참여)의 시민 후원금을 모았습니다. 원전 재난을 소재로 한 <판도라> 또한 2주 만에 목표액 7억 원(410명 참여)을 달성했죠. 이처럼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제작한 영화는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국민은 현실을 보는 ‘눈’이 새롭게 떠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상을 바꾸는 것과 함께 자신 또한 바꿔야합니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는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청문회에서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시민들이 국회의원에게 보내준 사진을 제시하자 그제야 인정하는 몰염치한 사람들만 봐도 그렇습니다. 최소한의 양심마저 저버린 모습에서 그런 사람을 등용한 기준은 무엇인가? 물어보게 됩니다.
 
조선시대는 깨끗하고 유능한 관리를 ‘청백리(淸白吏)’라고 했습니다. 청백(淸白)은 원래 ‘청렴결백(淸廉潔白)’이라는 단어에서 온 말이죠. 청렴결백은 ‘마음이 맑고 깨끗하며 재물에 욕심이 없음’을 뜻합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습니다.
 
코스타리카에서 유일하게 대통령을 두 번 지낸 오스카르 아리아스 산체스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민들이 나를 다시 뽑아준 것은 내가 정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두 번째 임기 때는 월급을 받지 않고 모두 기부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코스타리카는 2015년 영국 신경제재단(NEF)이 발표한 지구행복지수(HPI)에서 151개국 중 1위를 차지했고 한국은 60위입니다.
 
국학원은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앞에서 "국민 인성회복으로 복지 대한민국 만들자"라는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개최했습니다. 이날 회견에서 정직, 성실, 책임감을 기반으로 하는 도덕성을 갖춘 홍익지도자를 제시했습니다. 홍익민주시민학교를 운영한다는 계획도 밝혔습니다. 국민의식개혁운동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은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고 말했습니다. 코스타리카는 다섯 살부터 모의투표에 참여합니다. 그만큼 시민교육이 탄탄한 거죠. 올해 촛불광장을 통해 배는 잠시나마 뒤집어졌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선장이 대한민국호를 운항할지는 온전히 국민의 수준에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