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은 《구약성서》의 첫 5권인 모세오경의 제작과정과 저자 문제에 대해서 썼습니다. 에덴신화가 실려 있는 <창세기>는 모세오경의 첫 권입니다. 이번에는 왜 두 다른 창세신화가 함께 <창세기>에 실리게 되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먼저 그 역사적인 배경부터 보겠습니다.

 

솔로몬왕은 예루살렘 성전을 지었을 뿐 아니라, 성전보다 더 큰 자기 왕궁과 이집트 왕비의 신전까지 지었습니다. 과도한 조세부담과 부역에 시달리던 이스라엘은 왕이 죽자 곧바로 남유다왕국과 북이스라엘왕국으로 갈라지게 됩니다(서기전 926년). 솔로몬을 계승한 것은 남유다왕국입니다.

그렇게 갈라져나간 북왕국은 서기전 722년 앗시리아에게 패망하여 백성들은 앗시리아에 끌려가거나 여기저기로 흩어지게 되고, 남은 백성들조차 이민족들과의 혼인으로 민족 자체가 사라질 지경이 됩니다. 남아있던 남유다왕국도 서기전 586년 바빌로니아에 망해 거의 모든 백성들이 바빌로니아로 끌려가 포로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를 ‘바빌론 유수’라고 부릅니다.

북왕국이 망한 후 민족 자체가 거의 없어지는 것을 보았던 남왕국의 제관들은 나라가 망하고 민족이 사라질 위기 속에서 타민족과 차별되는 민족의 정체성이며 구심점인 유일신 신앙을 지켜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관들이 나서서 전해오던 여러 전승들을 정리하고 다시 편집하게 됩니다. 또 새로 만들어 덧붙이기도 했는데. 이렇게 새로 써진 기사 중에 <창세기>의 첫 창조신화가 있습니다.

사실 히브리인들은 현실적인 민족이어서 세상의 시작, 즉 창세와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가 보니 거기에는 거대한 마르둑 신전이 있었고 바빌로니아의 창조신화 ‘에누마 엘리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전해오던 ‘에누마 엘리쉬’ 등의 창조신화에서 차용하여 새로운 창세이야기를 만듭니다.

히브리민족의 신 ‘야훼’는 땅을 약속했었지만 백성들은 나라도 잃고 땅도 잃고 남의 나라에 와서 비참한 포로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마당에 망해버린 성전의 ‘야훼’, 사람 같은 신 ‘야훼’는 더 이상 의지가 되고 희망을 주는 신이 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에 제관들은 새로운 우주창조 신화의 주인공으로 한 때 북이스라엘에서 사용하던 초월적인 신의 이름 ‘엘로힘’을 가져옵니다. 그렇게 엘로힘은 말씀 하나로 우주를 창조하는 막강하고 전능한 신이 됩니다.

그리고 이웃나라들에서 신으로 모시는 해와 달은 엘로힘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일개 피조물로 전락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이웃나라의 신들보다 훨씬 막강한 신이 됩니다. 그렇게 첫 번째 이야기, 신의 우주창조 이야기는 모세오경의 편집 마지막 단계에 만들어져 시간의 흐름상 제일 앞에 덧붙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존에 전해 내려오던 두 번째 이야기와 함께 에덴신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2회에 걸쳐 성서연구로 밝혀진 사실들을 토대로 <창세기>와 모세오경이 만들어진 경위를 간략하게나마 보셨습니다. 성서연구는 성서가 신의 계시를 담은 책이지만 사람에 의해 사람의 언어로 기록된 사람의 책이기도 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밝혀냈습니다. 물론 성서의 글자 하나하나는 신의 영감에 의한 것이라 성서에는 결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반대되는 입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다 완성된 책을 신이 “자! 받아라!” 하고 하늘에서 던져준 책이 아닙니다. 모세5경은 이웃나라의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천년에 걸쳐 반복 필사되며 가필되고 윤색되고 재편집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세계최고의 권위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모세오경에 대해 쓰면서 저는 선도사서仙道史書《징심록》<부도지>와 함께 위서 논란에 서 있는 《환단고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환단고기》 역시 5권이 하나의 책으로 묶어진 것으로, 신라의 고승 안함로(579~640)의 <삼성기전 상편>부터 조선시대 이맥(1455~1528)의 <태백일사>에 이르기까지 거의 천년에 걸쳐 써졌기 때문입니다. 위서라고 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이스라엘 전 교육부장관 요시 사리드는 “이스라엘에는 정식 역사서가 없다. 신화, 전설, 외래의 전승과 뒤섞인 채 역사서로 오인되어온 ‘민족설화집(=구약성서)’이 있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한 유대민족의 민족설화는 100% 역사라 신뢰하면서, 우리 상고사는 신화로 치부하는 우리나라 사람이 꽤 많습니다. 개천절을 맞아 한 여론조사에서 단군을 신화 속 인물로 생각하는 국민들이 더 많았다고 하더군요.

저는 작년에는 요동의 고조선, 부여와 고구려 유적지를, 올해에는 요서의 홍산문화 유적지를 다녀왔습니다. 답사를 다녀오며 왜 많은 분들이 직접 가보지는 않고 몇 가지 흠만 붙들고 앉아서, 있는 역사를 부정하고 신화로 만드는지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이웃나라들은 없는 역사도 조작해 만들어서 우리 역사 뿌리를 통째로 잘라먹고 있는데 말입니다. 혹시 역사가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생각하시는가요?

역사의식은 잃었던 나라를 다시 세우기도 합니다. ‘설화’가 아닌 ‘역사’라 굳건히 믿었던 유대인들은 나라가 없어지고 거의 2천년이 지난 1948년 다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옛 땅에 세웠습니다. 민족의 위기 앞에서 민족을 위한 역사를 정리해 유대민족의 정신적 정체성을 만들어 주었던 제관들은 정말 대단한 일을 했습니다.

저는 이와 반대되는 경우가 조선(1392~1897)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국의 눈높이에 맞춰 전해오던 선도사서들을 모조리 수거해서 우리 역사를 없앴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소중화小中華’라 부르며 사대事大의 극치를 이루더니 드디어는 나라를 잃었습니다.

《환단고기》 <단군세기> 서문에서 저자 행촌 이암(1297~1364)은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혼과 같으니, 형체가 그 혼을 잃고서 보존될 수 있겠는가?”라고 썼습니다. 누구처럼 없는 역사를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있는 역사를 인정해서 우리 혼을 다시 찾자는 것입니다. 내 나라만 잘 살자는 국수주의도 아닙니다. 우리 혼은 더불어 잘 사는 세상,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정신입니다. 그 혼을 되찾는 것만이 이 모든 갈등을 풀어나갈 수 있는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 김윤숙/ 국민인성교육강사, 찬란한 우리역사이야기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