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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로의 삼신에 대한 믿음과 한글수호한글운동과 국학 인물열전 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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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07  10:45:22
조남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교수  |  nokto@ube.ac.kr

경제학 박사의 지위를 버리고 한글운동에 ‘헌신’
독립한 날이 올 것을 한얼님의 이치로 여겨

 
   
▲ 이극로(1893-1978, 사진=대종교)
이극로(1893-1978)는 자신의 호를 우리나라 사람이 골고루 잘 살아야 하겠다고 해서 고루라고 했고, 조국 광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고 해서 물불이라고 했다. 
 
그는 1893년 경남 의령에서 출생하여, 1910년 마산 창신학교를 거쳐, 1912년 망명길에 올라 서간도 동창학교 교사, 1914년 백산학교 교원을 역임하였고, 1916년 상해 동제대학에 입학하였다.
 
1921년 이동휘가 모스크바 코민테른 집행위에 참석하러 갈 때 동행하였다가, 1922년 베를린대학에 입학, 1924년 《한국의 독립운동과 일본의 침략정책》이란 책을 발간하여,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기반으로 하여 항일투쟁사를 밝히고 일본의 침략정책을 고발하였다. 
 
1927년 〈중국의 생사공업〉으로 박사학위 취득한다. 당시 중국의 비단을 만드는 명주실 기술은 세계적인 상품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의 경제적 의의를 고찰한 논문이다. 그 뒤 영국 런던대학 경제학부에도 입학하였다가, 1929년 귀국하여 조선어학회를 주도하였다. 
 
해방 뒤에는 좌우익 합작에 노력하였다. 1948년 남북연석회의 참석차 평양으로 갔다가 잔류하였고, 1970년 조국평화통일 위원회 위원장, 과학원 및 사회과학원 원사가 되었고, 1978년 사망하여 평양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었다.
 
이극로의 한글과의 인연은 1912년 동창학교에서 주시경의 제자인 김진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이후 계속 한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1923년 베를린 대학에서 조선어과 강사를 3년간 하였고 1928년 베를린 대학과 파리대학에서 음성학을 연구하고 조선어 음성실험에 참여하였다. 
 
1929년 귀국하여 조선어학회에 참여하였다. 그는 경제학 박사라는 지위를 버리고 한글운동에 헌신하여 조선어학회를 꾸려나갔다. 
 
그는 50여 명의 학자들의 조직인 조선어학회의 재정과 행정을 책임지면서 한글을 지켰던 것이다. 1942년에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체포되어 함흥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해방이 되어 풀려났다. 북으로 넘어간 이후에도 북한의 한글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이극로는 서간도 동창학교에 교원으로 근무했는데 윤세복이 교장, 박은식과 신채호가 교원으로 있었다. 그는 이때 민족의식을 일깨웠다. 
 
1915년 백두산을 구경하면서, “백두산 백두산 백두산이라 하늘 위냐 하늘 아래냐, 하늘에 오르는 사닥다리로구나, 진세의 더러운 기운 발밑인들 어찌 미치리, 그는 세상을 내려 살피고 세상은 그를 우러러 본다. 세상은 만민이요, 그는 제왕이로다.…우뚝 선 보탑이로다. 영원히 조선 겨레의 보탑이로다”라고 하면서 백두산이 가지는 의의를 설명하고, “앞서서 오랑캐를 섬멸해 평정한 뒤, 세계를 휩쓸고서 개선가 부르며 돌아오리”라는 한시를 지어서 일본 제국주의를 섬멸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1946년에 대종교 전강, 참의를 역임하였다. 이극로는 1942년 대종교의 찬송가로 일컬을 만한 한얼노래를 지었다. 이 노래는 윤세복의 의뢰를 받아 총 37곡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가운데 27곡을 이극로가 지었다. 그 노래 중에서 삼신에 관한 내용 둘을 살펴보자. 
 
삼신의 거룩함, 이극로 작사
 
1. 거룩하신 한임님은 우주를- 창조하시니 
영원무궁 일월성-신 빛난-세계 이루었-네 
 
2. 거룩하신 한웅님은 인간을- 가르치시니 
총명하고 착하여-서 온갖-복을 받고있-네 
 
3. 거룩하신 한검님은 만민을- 다스리시니 
이세상의 모든질-서 한결-같이 어김없-네 
 
후렴. 그 은혜가 하 크구나 노래-불러- 감사하세 
그 사랑이 참 크구나 노래-불러- 감사하세 
 
이극로는 한임-조화주, 한웅-교화주, 한검-치화주의 삼신일체를 주장한다.
 
삼신만 믿음, 이극로 작사
 
1. 흩어진 우리 정신 한 점에 모여 들-어 
외길로 파고 가면 진리를 뚫어 낸-다 
 
2. 흩어진 가는 햇살 렌즈를 통과하-여 
한 점에 모여 들면 타도록 불이 난-다 
 
3. 흩어진 남북극이 꼭 같은 방향으-로 
다 같이 정돈되면 쇠마다 자력 난-다 
 
후렴. 한길로 마음 모아 삼신만 꼭 믿으면 
신령이 통하여서 크나큰 힘이 난-다 
 
이극로는 이 노래에서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이라는 고사성어를 삼신의 믿음이 가지는 효과로 설명하고 있다. 대종교가 지닌 불굴의 독립과 희생정신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는 개인적으로 매일 아침 10분씩 수행을 하였으며, 옥중에서도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였다.
 
“도를 얻으면 저절로 사는 것이니 이것이 참답게 사는 것이다”
 
이극로는 1942년 발해의 동경성의 천진궁을 건립하기 위해서 ‘널리 펴는 말’을 지었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가 지금은 지배하고 있지만 반드시 우리가 독립할 날이 올 것임을 한얼님의 이치라고 보고 있다. 
 
“천운은 빙빙 돌아가는 것이라. 한번 가고 다시 아니 오는 법이 없다. 날마다 낮이 가면 밤이 오고 밤이 가면 낮이 오며, 또 춘하추동 사철은 해마다 돌아온다. 이와 같이 영원토록 돌아가고 돌아오는 법이 곧 한얼님의 떳떳한 이치다. 이런 순환하는 천리(天理)에서 인간사회의 변천도 끊임없이 생긴다. 부자가 가난하여지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며 귀한 사람이 천하여지고 천한 사람이 귀하여진다.” 
 
여기서 대종교가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어 만주 조선 등에 덕화를 끼치었다고 한다.  
 
“동방에는 밝은 빛이 비치었다. 이는 곧 대종교가 다시 밝아진 것이다. 한동안 밤이 되어 지나던 대종교가 먼동이 튼 지도 삼십(三十)여년이 되었다. 아침 햇빛이 땅 위를 비추어 어둠을 물리치는 것과 같이 대종의 큰 빛이 캄캄한 우리의 앞길을 비치어 준다. 어리석은 뭇사람은 제가 행하고도 모르며 또 모르고도 행한다. 직접으로는 만주대륙과 조선반도를 중심하여 여러 천만 사람이 대종교의 신앙을 저도 모르는 가운데 아니 믿는 사람이 없고, 간접으로는 이웃 겨레들도 이 종교의 덕화를 받지 아니한 이가 없다.” 
 
대종교의 한임 한웅 한검의 삼신일체는 시간적으로 현재의 민속에 남아 있고, 공간적으로 삼신의 사당과 유적은 구월산, 평양, 마니산에 있다. 삼신에 대한 믿음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계속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삼신이 점지하시므로 아이가 나며 삼신이 도우시므로 아이가 자란다고 믿고 비는 일이 조선의 풍속으로 어디나 같다. 이 삼신(三神)은 곧 한임 한웅 한검이시다. 황해도 구월산에는 삼성사가 있고, 평양에는 숭령전이 있고, 강화도 마니산에는 제천단이 있다. 발해시대에는 태백산에 보본단을 쌓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었다. 이와 같이 삼신(三神)을 믿고 받들어 섬기는 마음은 여러 천 년 동안에 깊이 굳어졌다. 시대와 곳을 따라 종교의 이름은 바뀌었으나 한얼님을 섬기고 근본을 갚아 사람의 도리를 지키는 교리만은 다름이 없고 변함이 없다.”
 
그러나 삼신에 대한 믿음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교회란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삼신을 모시는 사당과 교회당, 그리고 학원을 지어서 다가올 세상을 준비해야 한다.
 
“종교는 믿는 마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형식을 갖추어야 되며 또 형식은 존엄을 보전할 만한 체면을 잃지 아니하여야 된다. 사람의 이상은 소극적으로 지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데 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체면을 유지할 만한 천전과 교당도 가지지 못하였으며 또는 교회의 일꾼을 길러낼 만한 교육기관도 없다. 이는 우리에게 그만한 힘이 없는 것도 아니요 성력이 아주 부족한 것도 아니다. 그동안에 모든 사정이 우리의 정성과 힘을 다 발휘할 기회를 열지 못하였던 까닭이다. 그런데 이제는 때가 왔다. 우리는 모든 힘을 발휘하여 대교의 만년대계를 세우고 나아가야 된다. 이 어찌 우연이랴. 오는 복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것도 큰 죄가 되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된다. 만나기 어려운 광명의 세계는 왔다. 반석 위에 천전과 교당을 짓자! 기름진 만주벌판에 대종학원을 세워서 억센 일꾼을 길러내자!”
 
그런데 “우리에게는 오직 희망과 광명이 있을 뿐이다. 일어나라 움직이라! 한배검이 도우신다.”는 구호를 일제는 “봉기하자 폭동하자”로 일본어로 번역하여 대종교를 탄압하였고 그것이 대종교를 박해하는 임오교변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대종교는 국외적으로는 청산리 전투를 하였고, 국내적으로는 한글 운동을 하였다. 한글 운동을 주도한 조선어학회와 만주의 대종교를 연결한 고리로 이극로가 있었던 것이다. 이극로의 일제 강점기에는 한임 한웅 한검 삼신은 하나이고 그러한 믿음에서 나오는 정신력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였고, 해방되어서는 삼천리가 한나라가 되기만을 바라는 통일운동을 하였다.
 
 
 
▲ 조남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교수
 
조남호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동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법학연구단 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교수 겸 국학연구원장이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이황과 이이'(김영사 2014), 역서로는 '강설 황제내경1,2'(청홍 2011), 논문으로는 '주시경과 제자들의 단군에 대한 이해' , '선조의 주역과 참동계연구 그리고 동의보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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