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원로회는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을 초청하여 8일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제18차 한민족미래포럼을 개최했다.
이덕일 소장은 ‘신채호의 역사관과 식민사관’이라는 제하에 ‘다시 찾은 한국사의 원형’이라는 주제로 일본의 역사왜곡에 맞선 신채호 선생의 투쟁을 조명했다.

▲ 한민족원로회는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을 초청하여 8일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제18차 한민족미래포럼을 개최했다. <사진=정유철 기자>

이 소장은 일제강점기는 빼앗긴 강토를 되찾기 위한 영토전쟁의 시기인 동시에 일제와 역사해석권을 두고 싸운 역사전쟁의 시기였다며 이 역사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던 학자이자 독립운동가가 단재 신채호라고 강조했다. 일제는 조선총독부 직속으로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서 한국사를 조직적으로 왜곡했다.
신채호 선생은 일제의 한글 말살에 맞서 싸웠는데, 실제 일제는 우리 국어와 국사를 말살하려고 노력했다. 신채호 선생은 일제의 식민지 국어, 국사 교육에 강하게 비판했다.

이 소장에 따르면 일제의 국어 말살작업은 1912년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을 제정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창제 때 제시했던 표기법을 크게 왜곡시켰다.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은 우리말을 일본말 비슷한 것으로 만드는데 큰 목적이 있었다. ‘훈민정음해례본’은 영어발음 중 r과l, p와 f, b와 ㅍ를 구분해서 표기하고 발음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은 이를 구분할 수 없도록 했으며 현행 ‘한글맞춤법 통일안’은 여기에 두음법칙정도를 추가한 것으로서 일제가 왜곡한 한글정책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껏 일제 식민언어학자들이 만든 ‘언문철자법’의 테두리에 갇혀 있다고 이 소장은 비판했다.

▲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이덕일 소장은 신채호 선생은 일제가 왜곡한 한국사 복원에 힘을 기울였는데, 그 중에서도 상고사 복원에 특히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일제는 1916년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이후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식민사학을 조직적으로 유포시켰다. 단군을 신화로 격하하여 단군 조선을 부인하는 한편 위만조선의 강역을 평양을 중심으로 한 평안남도 일대로 축소시켰다. 그래서 한나라의 식민통치기구였다는 한사군(낙랑 진번 임둔 현도)의 위치도 낭랑군이 평양에 있었던 것을 비롯해 모두 한강 이북에 있었다고 강변했다.

일제는 한국사를 모두 반도사의 테두리 내에 가두는 반도사관을 주창해서 한국인의 대륙성과 해양성을 삭제했다. 단재는 한국사를 모두 반도사의 테두리 내에 가두는 반도사관, 한사군 등 일제가 왜곡한 한국사 복원에 힘을 기울였는데, 국내에 부족한 사료를 중국사 곳곳에 남아있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이 소장은 광개토대왕비문 가운데 ‘천제의 아들(天帝之子)’을 보이며 고구려에는 천손(天孫)사상이 있었고 이는 고조선의 문화를 계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국유사》 왕력편 고구려동명왕조에 고구려 시조인 동명왕은 “성은 고(高)씨이고, 이름은 주몽(朱蒙)이다. 추모(鄒蒙)라고도 한다. 단군(壇君)의 아들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 소장은 “유교가 들어오면서 나라가 나약해졌고, 이러한 천손의 후예라는 것을 우리는 잊었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특히 이러한 신채호 선생의 연구를 강단사학이 인정하지 않고 일본학자들의 주장을 추종하고 있으며, 이것이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독도도발에 이용되고 있다고 이덕일 소장은 지적했다. 이덕일 소장은 현재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모든 원인이 일제가 심어놓은 ‘노예의 역사관’이 주류가 되어있기 때문이라며 하루빨리 ‘주인의 역사관’으로 개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제19차 한민족미래포럼은 11월11일 열릴 예정이다. 이날 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이 ‘지도자와 선비정신’을 주제로 강연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