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정촌고분. 2014년 용머리모양의 장식이 부착된 금동신발이 출토되어 큰 주목을 받았던 1,500년 전의 무덤이다. 이 무덤에서 영산강유역 삼국 시대 고분의 새로운 축조기법이 발견됐다. 

▲ 나주 정촌고분. 나주 정촌고분은 산비탈에 독립적으로 축조된 1,500여 년 전 지역 수장의 대형 무덤(24*26*9m)으로 영산강유역 삼국시대 고분들과 입지적 특성에서 차이가 있다.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나주 정촌고분(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13호) 발굴조사에서 영산강유역 삼국 시대 고분의 새로운 축조기법을 확인하였다.

정촌고분은 나주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잠애산(해발 112m)의 비탈면에 단독으로 있다. 그 시기 고분들이 평지에 군집으로 축조된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경사면에 자리한 입지적 취약성을 보완하고자 산비탈을 깎아내어 1,600㎡(약 500평) 규모의 평탄대지를 조성하였고 금동신발이 출토된 1호 석실을 건설하면서 봉분도 동시에 쌓아 올려 안정적인 구조를 선보였다. 외곽으로는 봉분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바깥쪽의 흙을 수평으로 다져 쌓았으며 축대를 설치하여 봉분의 아랫부분도 보강하였다. 봉분 규모는 가로 26m 세로 9m이며, 총 14기의 매장시설(석실 3, 석곽 4, 옹관 6, 목관 1)이 확인되었다. 이처럼 같은 봉분에 여러 매장시설이 들어서는 것은 영산강유역 삼국 시대 고분문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 봉분의 절개 조사에서 드러난 흙쌓기 공법. 정촌보분은 봉분을 쌓기 위해 산비탕을 깎아내어 평탄한 대지를 조성했으며, 봉분이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바깥쪽은 수평으로 다져서 성토했다. <사진=문화재청>

정촌고분은 기존의 고분들과 달리 산비탈에 단독으로 축조하여 이를 보완하기 위한 다양하고 새로운 축조기술을 적용하였으나, 대형옹관을 사용하는 삼국 시대 영산강 유역 고분에서 엿볼 수 있는 장제(葬制) 전통을 철저히 계승하였다고 볼 수 있다.

정촌고분은 국내 최대의 아파트형 고분으로 잘 알려진 복암리 3호분과는 불과 500여m 떨어져 있다. 이번 조사는 고분의 축조기술과 석실의 구조를 규명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 1호 석실 출토 금동신발. 1호 석실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고대 금속공예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용머리 장식이 신발의 앞꿈치에 부착되어 있으며, 도깨비, 연꽃 문양 등 수준 높은 세공기술을 엿볼 수 있다. <사진=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정촌고분의 학술 가치와 역사문화 자료로서의 효용성을 높이기 위해 법의학, 곤충학, 영상공학, 금속공예 분야 등 학제간 융합연구를 추진한다.

▲ 금동신발에 부착되어 발굴된 발뼈와 파리 번데기(빨간 점선). 법의 곤충학 전문가와의 협업으로 시신 처리 과정과 장례풍습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문화재청>

 금동신발에 붙어있던 무덤 주인공의 발목뼈에서 수습된 파리의 번데기 껍질은 당시의 매장환경과 기후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획기적인 자료이다.  법의학 분야와 융합연구를 통해 당시 매장 환경과 기후 정보를 획득하고 시신의 처리 과정과 장례풍습 등을 파악할 예정이다. 또한, 고분의 구조와 봉분의 특성, 주요 유물들은 모두 3차원 입체(3D) 영상으로 기록하여 디지털 콘텐츠 제작에 활용하고, 고대 금속공예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금동신발은 복제품을 제작하여 교육ㆍ연구 자료로 제공할 계획이다.

▲ 1호 석실(4.9*3.8*3m)의 3D 디지털 사진.돌을 쌓아 벽과 청장을 구성한 모습이 잘 확인된다. (상) 석실 내부에서 무덤 출입구를 바라본 모습 (하) 석실의 입단면.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이러한 협업을 통해 호남지역 삼국 시대 고분 연구의 새로운 동력이 확보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오는 7일 오전 11시부터 학술자문회의를 열고, 오후 2시 30분부터 4시까지 발굴조사현장에서 현장설명회를 진행한다. 특히 현장설명회에서는 정촌고분의 구조와 복암리고분군 등의 주변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드론을 이용한 실시간 영상도 제공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