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8월 전남 신안 증도 앞바다에서 그물을 걷어올리던 어부는 깜짝 놀랐다. 그물에 걸려 올라온 것은 고기가 아니었다. 바다에서 건지기 어려운 도자기였다. 그것도 6개나 되었다.

어부는 초등학교 교사인 동생에게 이 도자기를 보여주었다. 동생은 이듬해 1976년 '청자 꽃병' 한 점을 신안군청에 신고하였다. 도자기는 원(元, 1271-1368) 나라 때에 운영했던 용천요(龍泉窯)라는 가마에서 만든 청자였다. 이어서 나머지 5점도 신고하였다. 650여 년이 지나도, 잘 보존된 원대 도자기의 존재가 알려지며 국내외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신안 앞바다에서는 도자기를 몰래 건져 올리는 불법 행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 '신안해저선서 찾아낸 것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당시 문화재관리국(지금의 문화재청)은 1976년 10월 27일부터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했다. 그 결과 신안해저선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문화재관리국은  1984년까지 9년여 동안 11차례에 걸쳐 배와 함께 실려 있었던 각종 물품 2만 4천여 점과 동전 28톤 상당의 엄청난 양의 문화재들을 발굴했다.

올해로 신안해저유물 발굴 40년.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영훈)은 신안해저선 발굴 40주년을 맞아 특별전‘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을 개최한다.

▲ 국립중앙박물관은 신안해저선 발굴 40주년을 맞아 특별전‘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을 개최한다.<사진=국립중앙박물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신안해저선에서 발굴된 문화재들을 전시해 왔지만, 종류별로 대표성이 있는 것들만을 골라서 공개한 명품 위주의 전시였다. 2만 4천여 점에 이르는 발굴품 가운데 지금까지 공개된 것은 전체의 5% 정도인 1천여 점에 지나지 않았다. 

▲ 원나라 시대 향 도구 香具.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이번 특별전에서는 신안해저선의 전모를 생생히 실감할 수 있도록, 발굴된 2만 4천여 점의 문화재 가운데 현시점에서 전시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모아 최초로 공개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역사상 가장 많은 수량의 전시이다.

특별전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신안해저선의 문화기호 읽기'에서는 복고풍의 그릇들과 차茶, 향, 꽃꽂이 등과 관련된 완상품들을 소개한다. 이로써 당시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중국적 취향과 그에 따른 일본 상류층이 선호했던 문화생활을 살펴보고, 나아가 고려에 있었던 비슷한 문화적 취향도 알아본다.

▲ 청동 사자 모양 향로 靑銅 獅子形 香爐.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2부 '14세기 최대의 무역선'에서는 신안해저선이 닻을 올렸던 중국 저장성(浙江省)의 닝보(寧波)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역 활동을 소개한다. 신안해저선의 선원과 승객들의 선상 생활도 살펴본다.

제3부 '보물창고가 열리다'는 으뜸 전시공간으로서 신안해저선에 실렸던 '화물'을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도록 도자기, 동전, 자단목, 금속품 및 향신료 등을 '큰 덩어리'로 소개한다. 일부는 당시의 발굴 상황 등을 재현해 전시한다. 이로써 신안해저선의 실체와 함께 중세 동아시아의 문화교류 양상을 보여주고자 한다.

신안해저선의 발굴은 우리나라 수중고고학의 효시가 되었으며, 그 경험과 성과는 이후 수많은 수중문화재 조사의 밑바탕이 되었다. 발굴된 문화재들은 14세기 동아시아의 경제·문화 교류 등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 청동 박산향로靑銅 博山香爐. <사진=국립중앙박물관>

 바닷물 속에 잠겨 있다가 타임캡슐처럼 650여 년 만에 나타난 신안해저선은 우리에게 여전히 많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특별전 연계 학술행사로서 오는9월2일(금)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후에는 전시 내용과 수량을 조정하여 국립광주박물관에서도 10월25일부터 내년 1월30일까지 개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