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이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고 평균수명도 80세를 훌쩍 넘어 노인복지와 건강한 삶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와 밝은 미소로 단아한 인상을 주는 국학기공강사 김은희(61) 씨가 노인들에게 선도명상수련을 지도한 지 이제 10년이 되었다.
 처음 그녀가 수련을 시작한 것은 1992년. 고혈압으로 몸 오른쪽이 마비증세를 보여 남편의 권유로 시작해 건강을 찾고 수련법을 익혔다.
 그녀가 노인복지에 특히 관심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혈압이 높아 중풍으로 누워 15년간 지내셨던 친정어머니 때문일 것이다. “제가 무남독녀로 38세 때부터 병수발을 했어요. 말씀도 못하셨는데 저하고는 의사가 잘 통하셨죠”
 처음 국학기공강사로 공원과 산에서 수련지도를 시작할 때는 떨리고 목소리가 작아 개미 소리같다는 말을듣기도 했다. 지금은 아랫배 단전에서 울려나오는 우렁찬 목소리에 충북대 명예교수인 그녀의 남편도 “제일 많이 변한 건 목소리”라고 놀릴 정도다. 공원과 동사무소에서 수련지도를 하고 있던 그녀에게 2000년 청주복지관이 개관을 하면서 단전호흡반을 맡아 달라고 제의가 들어와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현재는 청주복지관을 비롯해 청원군 복지관, 조치원 여성회관, 모충동 노인정 등 그녀가 맡고 있는 수련생이 100여 명을 넘는다. 주로 70대 노인들이 참여하지만 90세가 넘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수련지도를 할 때 그녀는 항상 지나치게 무리하지 않고 ‘내 몸에 맞게’하도록 강조한다. “작은 목표를 갖고 수련하시도록 하죠. 유연하지 못해 안 되던 동작을 하나하나 하게 될 때마다 너무 너무 기뻐하세요” 그럴 때마다 그녀도 보람을 찾는다.
 3년 전부터는 수련생들과 함께 국학기공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출전 한달 전부터 공연할 기공 종목을 정해 연습을 하는데 그 자체가 노인들에게 큰 활력이 되고 있다. 처음에는 동작을 잘 따라하지 못하고 미안해하지만 조금씩 익숙해져 하나로 마음을 맞춰가며 기쁨을 나눈다.
 올해만도 천안 백석대에서 열린 전국국학기공 대회와 울산의 생활체육대축전에 참가했다. 그녀는 “좋은 상을 받는 것보다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큽니다. 어르신들이 ‘우리가 언제 이런 무대에 서 보겠느냐?’며 무척 설레어 합니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선물을 보여줬다. 정년퇴임 한 교장선생님이었던 수련생이 몇 년 전 스승의 날을 맞아 그녀의 이름 ‘김은희 선생님’으로 6행시를 적고 코팅한 것을 주었다. 한 줄 한 줄에 정성과 감사한 마음이 묻어나는 글이었다.



청주복지관에서 국학기공수련을 받는 수련생들과  기공대회에 참석해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국학기공대회 참가로 큰 활력 얻어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은 맡은 일은 성실하게 꾸준히 한다는 것. 4~5년 전 집안일로 무리해서 몸이 힘든 상황에서도 기다리는 수련생들을 위해 강단에 서서 낭랑한 목소리로 지도했다. 청주복지관의 사회교육프로그램이 많지만 첫해부터 지금까지 계속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서 복지관 개관 5주년 행사 때 그녀는 특별상을 받았다.
 또한 그녀는 가족인성 트레이너교육을 받고 첫 번째 교육에 딸과 사위, 손녀를 참석시켰고 이번 8월에는 웃음치료사 과정을 마쳤다.
 “친구들이 약속 한번 잡기가 어렵다고 불평을 하지만 일을 갖고 바쁘게 사는 모습이 무척 부럽다고 하더군요”라며 그녀는 웃었다.
 노인들이 건강할 뿐만 아니라 후손에게는 국학을 전하는 교사가 되게 하고자 그녀는 건강법을 알려주는 것과 함께 국학을 전하고 있다. 그녀는 “저는 민족혼 교육을 두 번 받았어요.
처음에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철학에 대해 새롭게 접해서 좋았는데 두 번째는 가슴으로 전해지는 더 큰 감동이 밀려 왔어요.
 우리 국학을 우리가 찾지 않으면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고 했다.
 그녀는 틈틈이 홍익철학을 전하고 중국, 일본의 역사침탈을 전했다. 작년에는 수련생들과 함께 국학원을 찾아 직접 우리 상고사, 고구려 전시관을 안내하기도 했다. 그녀가 동북공정 저지 서명운동을 했을 때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서명을 받아주시는 분들도 많고 국학에 관심을 가진 분들도 많다.
 그녀는 앞으로도 꾸준히 노인복지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노인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계속 활동할 겁니다. 또 한 가지는 이분들이 다음 세대에게 우리의 역사와 홍익철학을 가르치는 ‘어른’으로 서 실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