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천손문화학술대회를 주최한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홍윤기 석좌교수.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이하 UBE)와 국학원은 지난 10월 4일 ‘단군개국신화는 일본개국신화의 모태(母胎)’라는 주제로 한·일천손문화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우에다 마사아키 교수는 한·일천손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방광암 진단을 받고도 다음날 학술대회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학술대회 이후 발표 논문들이 일본에 알려지면서 일본 언론과 네티즌에게 반향을 일으켰다. 네티즌의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어찌하면 이런 거짓말이 계속하여 나오는 것인가? 이렇듯 지나친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자존심을 지킬 수 없는 한국인이야말로 참으로 잔인한 민족”이라거나 심지어 일본인이 가장 존경한다는 천황에 대해서도 “단군을 죽도록 존경하여 그의 자손이라고 생각하는 히로히토는 조선에서 단군 서적을 훔쳐왔다. 너희는 한반도의 노예다.”라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이 학술대회 개최를 주관했던 UBE 한일천손문화연구소장 홍윤기 석좌교수를 만나보자.

10월 4일 한·일천손문화 학술회의를 마친 소감은
40여 년간 한국과 일본의 문화전파관계 연구를 했던 결과를 증명하는 자리여서 보람도 있었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사명감을 느낀다. 우리 스스로 신화로 묻어 버린 한국 상고사를 밝히는 데 한 걸음 내디딘 것이다. 고대 한·일 관계를 분명히 함으로써 철천지원수로 굳어진 지금의 한일관계를 해결할 하나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일천손문화연구내용 중 “일본인구의 80%가 한국도래계”라는 학설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데 일본강점기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우리나라 학자들은 지금까지 흔히들 일선동조론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언어표현이다. 가장 악랄한 주장을 편 것은 ‘일선양민족동원론(日鮮兩民族同源論, 1921년)’이다. 저자인 키다 사타키치(喜田貞吉, 1987~1939, 교토대 교수)는 아전인수 격으로 일본을 우월하게 다루면서 위선적으로 한일동족설을 주장했다. 고고학, 민속학, 고대사학 등을 하며 한때 일본 문부성 관리로서 ‘국정교과서’ 편찬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일선동조론(1929년)’은 카나자와 쇼사브로(金澤庄三郞)가 지은 것으로 한국과 일본을 역사적으로 비교적 동등하며 온건하게 다루면서 특히 한국어가 일본어에 미친 영향 등 언어학자로서의 입장을 다룬 저서이다.
일본제국주의 지도부는 오랫동안 연구되어 온 한국도래문화연구를 역으로 이용했다. 적극적으로 제국주의 정당화에 앞장선 이마니시 류(今西龍)와 같은 자도 있고 일선동조론계의 학자 중 일부는 제국주의에 영합해 자신의 학설을 바꾼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학자적 양심을 걸고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은 구메 구니다케 같은 학자들이 계보를 잇고 있다.

한․일천손문화에 대해 왜곡된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학자들은 누구인지
에도시대(1603~1867) 초 중기 소위 국학자, 미도학파(水戶學派)로 불리는 이들이 ‘신국일본(神國日本)’과 ‘만세일계(萬歲一係)의 천황 존엄성을 역설했다. 대표적 국학자 가모 마부치(賀茂眞淵, 1697~1769)를 비롯해 그의 애제자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 아라키다 히사오이(荒木田久老, 1746~1804), 히라다 아쓰타네(平田篤胤, 1776~1843) 등 수많은 학자가 황국사관(皇國史觀)으로 일본 역사 조작 작업 가담자들이었다.

이들이 “신의 나라 일본은 서기 전 660년에 신의 아들 진무(神武)천황에 의해 처음으로 나라를 세웠다.”고 일본역사를 늘여놓은 자들이다. 조선의 삼국시대 개국보다 600년을 앞섰다고 하기 위해 없던 역사를 만들어 자국의 역사를 조작한 것이다. 그 당시 고증학자 토테이칸이 “일본 언어는 그중 십중팔구가 상고 시대 한국 음(音)과 한국어 또는 서녘의 음에서 건너왔다.”고 발표하자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그를 ‘쇠사슬을 목에 맨 미치광이’라고 비난했다. 도쿄대 사학과 마에다 카즈요시(前田一良) 교수도 이들 미도학파의 주장들이 “뒷날 메이지유신을 실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웃 나라 학문에 대한 배척이며 또 하나는 국학의 문헌학적 성격”이라고 했다.

일본의 역사 왜곡으로 인한 최대 피해는 무엇인가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켜서 주변국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우리나라도 강제동원, 위안부 등 인적 물적 피해를 봤지만 가장 심한 희생을 겪은 것은 일본 국민 자신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고 일본 국민은 전쟁물자 조달로 인해 극빈한 삶을 견뎌야 했다. 단적인 예가 16~17세 소년들이 동원된 가미가제 특공대이다. 아이들이 모두 어머니에게 유서 한 장 남기고 천황에게 하사받은 ‘은혜의 담배’ 한 모금 피우고 돌아올 연료도 없이 태평양을 날아가 미군함에 돌격해 목숨을 잃었다. 지도부가 제국주의 야욕을 위해 국민의 역사인식을 바꾸고 전쟁개시의 정당성을 부여한 것에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랐나 돌아볼 일이다.

<국학신문 11월호 전면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