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풍경 속에서 우리는 문득 시간을 품은 공간을 마주하곤 한다. 그 공간에서 우리는 시공을 초월한 역사성을 인지하게 된다. 예를 들면 연인들이 즐겨 찾는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만나는 덕수궁 내에 존재하는 지극히 이질적인 건물, 덕수궁 미술관과 석조전이 그것이다. 국권상실의 또 다른 흔적인 덕수궁 미술관과 대한제국 황제의 역사를 머금고 있는 석조전, 둘은 공히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우리가 역사적인 존재라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우리 역사가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이고 우리 역사가 가르치지 않았던 것은 무엇인지를 냉철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 민성욱 박사

 인류 역사에서 많은 위대한 성인들이 존재했다. 특히 그 중에서 부처가 끼친 영향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부처가 세상에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회자되는 부처가 세상에 나온 이유와 연꽃이 흙탕물에서 꽃을 피우는 이유가 같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어떻게 알 수 있는지는 바로 앞서 말한 역사성에 기인한다. 연꽃이 흙탕물에 물들지 않고 흙탕물을 정화시켜 스스로 꽃을 피워 흙탕물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연꽃이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는 그냥 주어지지 않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학습이 되어 있다. 백조가 평화롭게 물 위를 유유히 떠 있기 위해서는 쉴 틈 없이 물 밑에서 물갈퀴질을 해야 된다. 즉 못생긴 오리도, 우아한 백조도 물밑 물갈퀴질은 해야 된다. 이것은 역사성이 아니라 어쩌면 자연법칙에 가깝다.

종교를 말할 때 단지 믿음의 대상이지 거기에는 질문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물었어야 했다. 왜 믿어야 되는지? 무엇을 믿어야 되는지를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역사도 물었어야 했다. 역사의 존재 이유를 말이다. 역사를 영어로 하면 History 이다. 요즈음은 Herstory 라고도 한다. 그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녀의 이야기가 역사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불완전하다. 그래서 나온 말이 Human story이다. 즉 그의 역사와 그녀의 역사가 합쳐져 인간의 역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역사는 역사성에 기인한다. 그래서 그러한 역사성이 어디서 비롯되었고 어떠한 특성을 갖고 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이것을 우선 거시적으로 접근해 보면 그러한 인간의 역사도 우주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주의 시ㆍ공간, 그리고 별과 지구는 어떻게 탄생하였을까? 지금으로부터 138억 년 전 빅뱅과 함께 시ㆍ공간이 시작되었다. 시ㆍ공간 속에서 별들이 태어났고, 별들이 모여 은하를 이루었다. 은하들은 우주의 끝까지 펼쳐진 거대 구조를 이루고 있다. 어떤 별들은 초신성으로 폭발하여 생을 마감하고 새로운 별의 탄생을 위해 우주로 흩어진다. 이런 성간물질(항성과 항성 사이에 존재하는 우주 공간의 여러 물질) 속에서 46억 년 전 우리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행성 지구와 달이 만들어 졌다.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에는 ‘해비터블 존(Habitable Zone)’, 즉 별 주위에 생명체가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생명체가 거주 가능한 영역은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수 있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최근 화성에서 흐르는 물의 증거가 발견된 이후 외계 생명체의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과연 지구 밖의 다른 천체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곳이 있을까? 그리고 그곳에는 정말 우리가 모르는 외계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이러한 관심도 역사성에 기인한다. 왜냐하면 우리 인류는 어느 날 갑자기 지구라는 행성에 나타난 것이 아니고 우주의 생성 및 소멸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구를 이루는 물질들, 지구 위의 생명체들은 이 우주에 포함되어 있는 보편적인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다. 외계에는 없고 지구에만 있는 특별한 원소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와 지구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인류사도 크게 보면 우주의 역사라는 범주에 들어간다.
 

태양계의 경우 해비터블 존을 넓게 잡을 경우 태양으로부터 지구까지 거리의 0.75~3배까지로 본다. 이 영역에 속하는 것은 금성과 지구, 달, 화성, 그리고 여러 소행성들이다. 해비터블 존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 중에 ‘골디락스 존(Goldilocks Zone)’이라는 것도 있다. 영국의 동화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에 나오는 금발머리 소녀의 이름이 바로 골디락스이다.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고, 딱딱하지도 무르지도 않고, 뜨겁지도 춥지도 않는 가장 적당한 곳을 가리켜 골디락스 존이라고 부른다.
 

태양계에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개념을 두고 생명체가 살 수 있거나 살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행성이 금성, 지구, 화성 정도이다. 그런데 금성은 강력한 대기와 자기장이 형성되어 있고, 반면에 화성은 대기나 자기장이 거의 상실된 상태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그 중간으로 적정한 대기와 자기장을 갖고 있어 지구에 사는 인류는 태양의 후예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을 역사성에 기인하여 정리해 보면 지구의 과거는 금성이고 지구의 미래는 화성이라는 말이 성립된다.
 

이제 미시적으로 역사성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우리 역사 중 비교적 가까운 시대인 조선시대로 가 보자. 조선시대에는 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현재 사용되는 지폐의 모델들은 모두 조선시대 인물들이다. 세종대왕을 비롯해서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신사임당이 그들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는 모자지간에 지폐 모델이 되는 영광을 얻었다.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는 노론이 득세하면서 정치사상계를 장악했을 때 그들의 원류인 율곡 이이와 그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을 우상화하기 시작해서 거의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시대가 바뀌어도 새롭게 그 가치가 재창조되어 왔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모두 송시열이라는 한 인물로부터 비롯되었다. 조선은 유학의 나라고 성리학적 세계관을 갖고 있는 선비의 나라였다. 그 선비가 나라를 망치기도 하였고 나라가 망하자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지키고자 하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조선이후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을 들라고 하면 정도전과 송시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조선이 멸망하고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의식과 문화에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며 그 후예들은 아직도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정도전과 송시열이 차이가 있다면 정도전은 태종 이방원에게 제거된 이후에 오랜 시간 공개적으로 언급이 회피되어온 사람이나 우리 역사에 끼친 영향은 가히 긍정적인 측면이 적지 않고 역설적이지만 조선왕조가 500년이라는 세계사에서 드문 장수 왕조를 유지할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한 인물이다.
 

한편 송시열은 당대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고, 사후에는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공자, 맹자, 주자와 함께 송자로 추존되어 성균관 문묘에 배향되었으며,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인물로 조선후기 사림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어떤 왕이나 인물보다도 많은 3천 번이나 언급되는 인물이 바로 송시열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평가하면 조선후기 이후 나라를 망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강릉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역사적인 인물로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 그리고 허균과 허난설헌이 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 영광을 이어가는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이 있었다면 당시 뛰어난 여류 문인이었지만 27세 이른 나이에 요절한 허난설헌과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능지처참되고 마는 그녀의 남동생인 허균이 있었다. 여기서 그들의 역사성은 무엇이었을까? 비슷한 시기에 살았지만 그 삶의 형태는 너무나 달랐다.

글과 그림에 재능이 뛰어 났던 조선의 두 여인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은 신사임당이며, 또 한 사람은 허난설헌이었다. 허난설헌, 본명은 초희이다. 허균의 누나이기도 하고 중국의 문인들로부터 추앙을 받았던 여자임에도 시대를 잘못 타고나 기구한 삶을 살다가 일찍 가버렸다. 허난설헌은 그녀의 인생을 통해 남성중심 사회의 폐단을 단적으로 보여 주었다.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조선은 그 전부터 내려오던 한국의 결혼풍습을 오랑캐의 습속으로 보고 없애려고 노력했다. 태조 이성계 이래로 사대부의 결혼 풍습을 '장가간다'에서 ‘시집간다’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렇듯 장가와 시집의 차이로 사람의 삶을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조선을 설계하고 조선을 있게 한 장본인이 정도전이며, 송시열은 그를 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조선을 망쳤다. 그 이후에도 정도전과 송시열의 후예들이 나왔고 조선을 이어 갔지만 그 끝은 좋지 않았다. 지금도 우리나라 지식인 지도층과 고급 관료들은 정도전과 송시열의 후예로서 그 전통을 면면히 이어 가고 있다. 송시열은 정도전의 이념을 계승하여 왕권을 억제하는데 앞장섰고, 예송 논쟁으로 국력을 낭비했으며, 붕당정치가 당파싸움으로 변질되게 만들었다. 이러한 붕당정치의 폐단을 마치 역사성이 그러하고 국민성이 그러하다는 이유로 역사를 왜곡하고 피해의식을 심어주었던 것이 일본의 식민주의 사관이었다.

역사의 후예가 있다면 우리는 누구의 후예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모두 태양의 후예이기도 하고 단군의 후예임에는 틀림없다. 역사 인물의 단순 일대기가 아니라 그것이 역사성을 갖게 하려면 그 인물이 살았던 시대상이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이 현재의 삶과 비교될 때 역사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우리 역사, 무엇을 가르쳐야 되고, 무엇을 가르치지 않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 역사성, 즉 역사적인 성격을 재규정하여 우리 역사를 새롭게 창조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