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운장과 운장주

나는 안중근 의사와 함께 광희 황제를 작별하고 대궐 밖으로 나왔다. 우선 춘무산(지금의 남산)으로 가기로 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지체하지 않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먼저 읊은 운장주雲長呪(관운장을 부르는 주문)라 불리는 주문과 나중에 읊은 태을주太乙呪(조이족의 조상신을 부르는 주문)라 불리는 2개의 주문을 외운 것이다.
 
2개의 주문은 다음과 같았다. 
 
雲長呪
 
天下英雄 關雲長!    천하영웅 관운장
依幕處              의막처
*謹請~             근청~ 
天地八位 諸將       천지팔위 제장
六丁六甲 六丙六乙   육정육갑 육병육을
*所率諸將!          소솔제장!
一別 屛營邪鬼!      일벌 병영사귀唵唵喼喼 如律令!    엄엄급급 여율령
娑婆訶!             사바하!
    
太乙呪              태을주
 
 吽哆 吽哆          흠치 흠치
太乙 天上元君!      태을 천상원군
吽哩 哆耶 都來!     흠리 치야 도래
吽哩 喊哩 娑婆訶!   흠리 함리 사바하
 
나는 주문이 가지고 있는 깊은 뜻은 알 수 없었으나, 주문이 가지고 있는 주술성에 의지하여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어떤 음성이 들렸다. 
 
“운장주는 49번을 외우고, 태을주는 15번을 외워야 하느니라.”
 
지극히 장중한 음성이었다. 
 
“제가 말씀하는 분은 누구십니까?”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주문을 출납하는 신이다.”
 
나는 더 물어볼 말이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운장주를 49번 외웠다. 그러고 나서 태을주를 15번 외웠다. 그러자 왕궁 앞에 크게 바람이 일어나더니 은월도銀月刀를 비껴든 관운장의 형상이 나타났다. 나는 한눈에 그가 누구인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관성제군關聖帝君이시군요.”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관성제군은 관운장을 도교의 신명에 올려 호명하는 도교의 신이었다. 나는 도교신도가 아닌데 도교신명이 오시니 내심으로 당황하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운장이 선교仙敎의 신장으로 오셨으면 하는 바람이 일어났다. 관운장은 나의 마음을 알차 차린 듯하였다.
 
“번민하지 않아도 된다. 도교가 선교에서 나온 도이니 그대는 번민하지 마라.”
“번민하지 않겠습니다.”
“태을신께서 나를 보내어 내가 왔으니 나를 부른 연유를 말하도록 하라.”     “이등을 잡아다 광희 황제 앞에 대령하고자 합니다.”
“그자를 잡아오고자 하는 연유가 무엇인가?”
“고종 황제가 나라를 상실하고 얻는 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므로 그 병을 치유하고자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한 이유로 나를 부르다니! 그 정도의 일은 그대들이 스스로 할 수 있지 않은가?”   
“능력만 주신다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능력을 주겠다고 운장주와 태을주를 외우라고 한 것이야.”
“문제는...주문이 제가 조상으로부터 타고난 정체성에 맞지 않는 주문 같아서...”
 
나는 그 점을 확실히 해야 하겠다고 말하였다.
 
“이 사람아, 내가 태어난 곳이 어디인가?”
“탁현涿縣이라는 곳입니다.”
 
▲ 판천阪泉 안에 탁록涿鹿이 있다. 판천은 배달나라시대에 청구국靑丘國의 치우천왕蚩尤天王과 유웅국有熊國의 황제黃帝가 10년 전쟁을 한 곳이고, 탁록은 10년 전쟁에서 치우천왕이 황제에게 패한 곳이다. 이 전쟁을 탁록대전涿鹿大戰 혹은 탁록지전涿鹿之戰이라 하였다.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탁록涿鹿이라는 문자였다. 탁록이라면, 고구려에서 시도 때도 없이 다물多勿을 외쳤던 곳이다. 다물은 ‘되 물리다’는 뜻이다. 진조선이 조선의 제47세 고열가 단군 때 진秦에게 빼앗긴 곳이 탁현이다. 그래서 고구려는 이곳을 되찾고자 다물정책을 시행하였다. 다물정책은 잃어버린 국토수복정책이다. 
 
관운장이 탁록의 후신인 탁현 출신이므로 치우천왕의 후예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우천왕은 전쟁을 할 때, 운사와 우사를 부려 전쟁을 하였다고 했는데, 관운장의 운장이 우사雨師의 장자長子로 해석이 가능한 이름임으로 치우천왕의 막하幕下에서 종군從軍했던 우사의 후예로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치우천왕과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의 맥을 이을 수 있는 동질성이었다. 나는 관운장이 나의 동질성을 확보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관운장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이 말은 관운장을 내세우는 운장주의 주술성을 인정한다는 말이다. 
 
다음에 또 내가 해명해야 할 것이 있었다. 그것은 태을주가 나와 어떠한 연관이 있느냐를 해명하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해답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이점을 관운장에게 물어보기로 하였다. 
 
“태을주와 저희와의 관련성을 해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야 해명할 수 있지.”
“그렇다면 해명해 주십시오.”
“태을신은 너의 모계혈족인 조이족의 주신主神이다. 이해가 가느냐?”
“그렇다면 조신鳥神이라는 말씀인가요?”
“그렇다. 봉鳳과 부鳧와 치雉는 우리의 최고 모신母神인 마고대신을 뜻하지.”
“그렇다면 부계혈족의 최고신은 누구입니까?”
“그야 태일신太一神이지.”
“그는 누구입니까?”
“황궁黃穹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궁穹이 하늘을 뜻하는데, 그렇다면 황궁이 우주에 속한 신이 되겠군요.”
“지구에 속한 최고 부계혈족의 최고신을 찾는다면 한인천제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는 누구입니까?”
“그가 지구의 태일신이다. 한 마리의 뱀으로 표현되는 풍이족의 조상이기도 하다. 그분이 하늘에선 북두칠성이야.”
 
나는 태을신을 나의 조상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알겠습니다. 운장주와 태을주를 제가 써야 할 주문으로 받아들이기로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의 시조 마고대신을 밝히는 시조경문을 알려주기로 하겠다.”
 관운장은 시조경문을 알려 주었다. 시조경문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始祖 麻姑始祖
宇宙麻姑 宇宙元尊
當穹始祖 二十八祖
나의始祖 우리始祖
 
“이 시조경문을 외울 때는 ‘천지우주에 고하겠습니다. 저 안중근이 시조경문을 독송했습니다.’ 하고 외우라.”
 
관운장이 말하였다. 나는 관운장이 시키는 대로 운장주를 외웠다. 
 
“됐어. 그렇게 하는 것이야. 이등을 잡을 때까지 이 주문을 외우도록 하라.”
 
관운장은 내 앞에서 사라졌다. 황당하기는 하지만 나는 관운장이 하라는 대로 운장주와 태을주와 시조경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는 주문 외우기를 마치고 안중근 의사를 바라보았다. 
 
▲ 홍산에서 출토된 유물은 뱀은 풍이족의 유물이고 새는 조이족의 유물이다. 풍이족과 조이족은 기묘년己卯年에 풍주風州 배곡倍谷에서 한인천제가 항영姮英과 혼인하면서 인종통합을 이루었다. 이리하여 한국桓國이 탄생하였다.
 
“내가 이등을 찾는다고 광고했더니 제보자들이 나타났어.”
 
안중근 의사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제보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무엇으로 광고하셨습니까?”
“영계통신이지. 세상이 많이 달라졌어.”
“이등을 잡아오는 자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광고하면 아마 잡아오는 자들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럴 수 있겠군.”
“광고를 할까요?”
“해봐.”
 
나는 귀신이 아니라 영계통신을 쓸 능력이 되지 못하니까 모바일 망을 쓰기로 하였다. 나는 모바일 망 3군데에 이등을 잡아오는 자에게 상을 주겠다고 광고하였다. 광고를 하자 반응이 오기 시작하였다. 대한국 군대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이등을 연행하여 나타났다. 상당히 많은 수의 군인들이었다. 
 
“이등을 연행해 왔습니다.”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말했다.
 
“수고 했습니다.”
 
나는 광희 황제의 시종무관의 자격으로 말하였다. 일단의 젊은이들이 자그마한 늙은이를 감싸고 있었다. 그는 연미복을 빕고, 염소처럼 하얀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노적老敵이로구나.”
 
안중근 의사가 말했다. 
 
“일본제국 국민이 이 사람을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명심하시오.”
 
노적이 빳빳하게 말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선 노적으로 생각하니 어쩌겠소.”
 
안중근 의사가 말했다. 
 
“나를 잡아온 이유가 무엇이요?” 
“그대를 죽여서 광희 황제의 한을 풀어드릴 생각이요.”
 
내가 말하였다. 
 
“안중근 당신이 내게 총을 쏘아서 내가 이미 죽은 몸인데 나를 또 죽이겠다는 것이요?”
 
이등이 어처구니없어 하였다.   
“내가 시종무관으로서 차고 있는 칼로 당신의 목을 치면 광희 황제에게 죽는 시늉이나 하여 보여주시오. 당신이 그렇게라도 해야 광희 황제의 한의 일부나마 풀릴 수 있을 것이요.”
“그다음엔 어떻게 할 생각이요?”
“그거 잘 물었소. 당신을 당신과 우리의 공동조상인 마고대신 앞으로 싣고 갈 것이요. 당신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마고대신이 알아서 하시겠지.”
“마고대신이라...그분이 아마데라스 오오미카미(천조대신天照大神)와 같은 분이요?” 
“그렇지 않소. 그분은 태양신이 아니라 우주신이시오.”
“우주신!”
“당신을 괴롭히기 싫으나 나로서는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하시오.”
 
안중근의사가 말하였다.
 
“알았소. 죽여주기나 하시오.”
 
사실 내가 칼을 휘두른다고 해서 그가 죽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죽은 몸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그를 죽인다는 것은 하나의 의식행위일 뿐이었다. 
 
“당신을 죽이기 전에 황제 폐하에게 당신에 대하여 보고해야 하니 당신의 본색이나 밝히시오.”
“나로 말하면...쇼슈우(長洲) 출신일세. 쇼슈우는 명치유신의 공신들을 많이 배출한 고장, 즉 쇼슈우한(藩)일세. 쇼슈우는 역시 명치유신의 공신을 많이 배출한 사쓰마한(薩摩藩)과 함께 일본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거대한 물결이었어. 바로 이 물결이 대한국을 일본의 속국으로 만들었네. 청일전쟁을 일으켜 청국을 굴복시켰고, 러일전쟁을 일으켜 러시아를 굴복시켰네. 이들의 선조는 아득히 추적해 올라가면, 한반도에서 멸망한 가야에 닿게 되네. 이들은 가야족의 후예일세. 그들은 한반도가 선조가 두고 온 땅, 말하자면, 니니기(彌彌藝)가 시조인 삼한 땅일세. 우리는 니니기 이래로 대대손손이 이 땅을 잊은 적이 없었네. 나는 선조의 꿈을 실현하려 하였네. 선조의 꿈을 실현하려 했던 내게 잘못이 있으면 말해 보게.”
 
이등이 교묘한 언사로 변명하고 있었다.
 
“좋소.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이 나라의 백성을 그토록 많이 죽였소?” 
“나는 동근동족同根同族으로서 그 점에 대하여 변명할 말이 없소.”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알았소.”
 
나는 너무나 피곤하여 빨리 일을 끝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등이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할 것으로 생각되는 안중근 의사에게 이등을 감시하라고 부탁하고 함녕전으로 들어갔다. 광희 황제에게 이등을 잡았다고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광희 황제는 준명당浚明堂에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광희황제는 언제나 5대조 고모할머니와 둘이서만 계셨다. 
 
▲ 대한제국을 선포하기 전에 고종 임금은 신료들과 준명당에서 정사를 보았다. 위 사진은 조선왕조의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하여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신등이 이등을 잡았기에 보고 드립니다.”
“이등을 잡았다니 다행이다. 내 생전에 공과 같은 신료가 있었다면 나라에 크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과찬이십니다.”
“아냐,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안중근 의사가 이등을 데리고 준명전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이등의 신상에 대한 기록을 광희 황제에게 바쳤다. 광희 황제가 읽더니 5대조 고모할머니에게 주었다. 
 
“저자의 목을 치고 싶으냐?”
 
광희 황제가 내게 물었다. 
 
“신은 다만 황제 폐하의 결정에 따를 뿐입니다.”
“나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 공의 시대를 대표하는 공의 의사를 듣고 싶다.”
 
황제폐하는 내 5대조 고모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여관의 의견을 말해 보라.”
 
광희 황제는 나의 5대조 고모할머니에게 자문을 구하였다.
 
“살려두는 것이 좋으리라 봅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속죄할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는 생각입니다.”
“속죄라! 새로운 생각이로군. 안중근 장군의 의견은 어떠한가?”   
 
광희 황제가 이번엔 안중근 의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저는 이미 이등을 응징하였습니다. 아무런 사심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관님의 생각에 따르겠습니다.”
“알았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짐의 잔무정리를 돕고 있는 시종무관에게 묻겠네. 공은 짐에게 광인들을 치유한다고 했는데 이등을 죽이면 광인들 치유에 도움이 되겠는가?”  
“도움이 되게 하려면 살려두어 이등 스스로 맺은 고와 살을 풀어내게 하는 것이 방법이 되리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제신의 의견에 따라 이등을 살려두기로 하겠다. 이등으로 하여금 광인을 치유하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하라.”
 
황제 폐하는 칙령을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짐은 약물중독의 여독이 아직도 풀리지 않아 많이 피곤하네. 이제 함녕전에 가서 쉬도록 하겠네. 앞으로 짐을 찾지 말게. 신료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
 
광희 황제는 사라졌다. 나는 어쩐지 광회황제를 앞으로 더 뵙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