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4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다음날인 15일은 스승의 날이니 '부처님께서 인류의 스승이 되셨다'는 사실이 인연법처럼 정확하다. 부처는 붓다(Buddha)이시고 우리말로는 '밝은 분'이라는 뜻이고 스님은 스승님의 준말이다. 우리말과 한자에서  'ㅅ'은  '솟다', '소스라치다',  '수승'  '사법부'처럼 높다는 의미가 있다. '스승'은 '먼저 깨달아 혼미한 사람을 인도하는 높은 분'이다.

 

▲ 수행도. <그림=원암 장영주>

긴 고행 끝에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을 외치신 석가모니 부처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 6) 라고 한 예수님. "너 자신을 알라"고 하신 소크라테스처럼 스승들은 먼저 '나'를 알라고 하신다. 이때의 '나'는 육체의 내가 아니라 모두를 감싸고 아우르는 우주마음의 극치로서 '나'이다. 이처럼 석가모니, 공자, 예수, 마호메트 등등 인류의 성인은 모두 "나"를 깨달으시매 성스러운 스승이 되셨다. 시공을 초월하여 수많은 이들이 믿고 의지하는 성인의 증표인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은 개도 안 물어 간다, 깨달으면 축지법을 쓰고 하늘을 날 수 있다, 깨달으면 대자유인이 된다, 한번 크게 죽으면 득도한다. 곧, 대사일번득도(大死一番得道).’ 등등 우리 민족처럼 깨달음을 귀중하고 자연스럽게 여기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깨(져서) (도)달함-이랴? 달걀이 깨져야 병아리가 나오듯이, 중학생의 옷을 벗어야 고등학생의 옷을 입을 수 있듯이, ‘큰 나’로 나가기 위해 ‘작은 나’의 ‘깨짐’이 필요한 것이다.

고구려가 패망한 지 30년. AD 698년에 발해를 건국하신 대조영 황제께서 ‘삼일신고’라는 경전을 복원하였다. 이 책은 단군 이전 시대로부터 전해오던 민족 경전으로 당나라의 침입 때문에 소실되었다. 5훈으로 구성된 간결한 이 경전은 깨달음의 인자가 내 밖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단지 "너의 성품 안에서 구하라. 그러면 이미 너의 머릿골에 내려와 계신다."  즉, '자성구자(自性求子)하라 강재이뇌(降在爾腦)시니라.' 라고 명시되어 있다.

인간을 '반신반수'라고도 한다. 동물처럼 의식이 낮을 수도 있지만 누구나 높은 의식과 고귀한 영혼으로 하나님을 닮아 밝고 거룩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아가 그런 장치가 바로 모든 인간의 뇌 속에 내려와 있다는 것이다. 현대 과학자들은 그곳이 인간의 뇌 속의 신피질, 변연계를 지나 뇌간 깊은 곳에 고이 존재하는 ‘송과체’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깨달음을 거룩하고 고귀하게 여긴 나머지 곱게 포장하여 시렁 위에 얹어 놓고 '이번 생은 다음 생의 깨달음을 위한 인연을 준비하는 생이다.'라고 믿고 가르치기도 한다.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있는 그런 오랜 습관은 이제는 '천동설'처럼 과감하게 벗어버려야 할 진실이다. 깨달음은 신비롭고, 무조건 의지해야 하며, 우상처럼 숭배하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비유컨대 자전거를 타는 것이 깨달음이라면, 탈 수 있게 해달라는 신앙만으로는 자전거를 탈 수는 없다. 몇 번씩 무릎이 깨지면서 자전거 타는 법을 몸으로 터득하면 언제, 어디서나 탈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깨달음'이 '믿음'과 다른 점이다. 깨달음은 뇌를 이용해 도달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이며, 전체를 위하여 몸으로 터득하며 쌓아가는 삶의 경험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은 결코 믿음에 의지하는 신앙이 될 순 없다.

 부처의 자비, 그리스도의 사랑, 선비의 인 등, 모든 성인의 깨달음은 "널리 이롭게 하는 사람 즉 홍익인간(弘益人間)"이 되자는 한민족 선조들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 이 얼마나 위대한 조상들이시며, 우리에게 내재하여 흘러온 거룩한 DNA인가? 우리 선조들의 가르침은 ‘만인은 만인의 늑대’가 아니라, 만인은 만인의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일지니 오직 그것만이 '유일한 나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깨달음은 개인의 깨달음이 집단과 인류의 깨달음으로 확대되어 개인완성을 통해 전체완성을 이룰 때 제대로 그 빛을 비출 수 있다. 바로 소승에서 대승으로 가는 의식 확장이며 이미 존재하는 나의 전체성이다.
깨달음의 모든 것이 선택이며 훈련이다. 나와 민족과 인류를 구원하는 효충도의 길, 그 길의 선택과 실천 여부에 지구인 모두의 미래가 걸려 있다.

 

원암 장영주


(사)국학원 상임고문
전국민족단체 연합 대표회장
한민족역사문화공원 공원장
한민족원로회의위원